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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통신·수도-활주로 완비된 정석비행장, 공공지원시설-공역 '최하점' 의아

제주 제2공항 사전타당성 용역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정 지역을 배제하기 위해 '의도적인 조작'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된데 이어, 이번엔 평가 기준을 제멋대로 설정했다는 주장이 추가적으로 제기됐다.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는 19일 오후 6시 성산일출봉농협 대회의실에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제2공항 재조사 용역 검토위원회 활동보고회'를 가졌다. 제2공항 검토위원회의 진행경과를 비롯해 제주섬의 관광 수용력과 지속가능성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특히 반대대책위가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제기한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 후보지의 고의적 배제 의혹에 이어 표선면 소재 '정석비행장'을 최종 후보지에서 누락시키기 위해 평가기준을 손질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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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후 6시 성산일출봉농협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공항 재조사 용역 검토위원회 활동보고회'. ⓒ제주의소리
정석비행장은 한진그룹의 계열사인 대한항공 소유로 조종사 양성 및 훈련용으로 만든 활주로다.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유력 후보지 중 하나로 지목해온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은 총 3단계로 진행된 제2공항 입지 선정 과정 중 2단계에서 탈락했다. 공역과 기상조건, 환경성, 공공지원시설 등에 있어 낮은 점수를 받으면서다. 

반대위는 이미 활주로 등의 기반시설이 설치돼 있는 정석비행장의 경우 다른 조건이 다소 불리하더라도 결정적인 하자가 없다면 우선 선정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가를 허물어 주민을 이주시켜야 하는 등의 사회적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석비행장은 일찌기 후보지에서 제외됐다. 이에 대해 반대위는 최초 사전타당성 용역진의 의도적인 평가기준 조정으로 인해 정석비행장의 점수가 낮게 매겨졌다는 의구심을 지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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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후 6시 성산일출봉농협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공항 재조사 용역 검토위원회 활동보고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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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후 6시 성산일출봉농협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공항 재조사 용역 검토위원회 활동보고회'. ⓒ제주의소리

먼저 공역과 관련, 정석비행장은 최저점인 1점을 받았다. 정석비행장 북쪽 4.6km 지점에 위치한 부소오름으로 인해 북측으로의 진입이 곤란하다는 이유다. 문제는 2단계 평가 대상지인 10곳에 대한 공역 평가를 난이도에 따라 '1점'과 '10점' 2가지로만 평가했다는 점이다.

현재 예정지인 서귀포시 성산을 비롯해 난산리, 대정읍 신도리와 하모리, 남원읍 위미리 등은 모두 공역 평가에서 10점을 받았다. 대정읍 인성리와 한경면 두모리, 구좌읍 김녕리 등은 '제주공항과 인접해있어 공역이 겹친다'는 이유로 1점을 받았다.

이미 활주로를 운영하고 있는 정석비행장도 이들과 똑같은 최저점, 1점을 받았다. 그외 모든 평가 항목의 경우 점수를 수준별로 나눈 '등간격 평가'가 이뤄졌다는 점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특히 정석비행장의 활주로를 남쪽으로 이동·확장하거나 보조활주로를 확장해서 주 활주로로 쓸 경우 북측으로의 진입이 용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방안 자체를 검토하지 않았다는 점도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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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제2공항 사전타당성 용역 2단계 후보지 평가 점수표. 정석비행장은 공역, 기상, 공공지원시설, 환경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탈락했다. <제2공항 사전타당성용역 자료 갈무리>
역시 최저점을 받은 '공공지원시설'의 평가 기준은 더욱 의아스럽다.

공공지원 시설이란 후보지에 전력, 급수 ,통신 등을 제공하는 편리성을 의미한다. 공급시설 지원이 가능한 시·읍과의 직선거리를 뜻한다고 보면 무방하다. 정석비행장은 가장 근접한 행정중심지인 남원읍과 12.7km 떨어져 있다며 이 평가항목에서 1점을 받았다.

행정중심지와 후보지간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10km 안팎인 제주에서 이 점수를 평가항목에 넣어야 하는지도 의문일 수 있으나, 더 큰 문제는 정석비행장의 경우 이미 현재 시설을 운영하면서 전력과 급수, 통신시설 등이 완비돼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신설과 확장의 차이가 없는 지역임에도 용역진은 정석 후보지의 점수를 최저점으로 매겼다.

공공지원시설 점수는 정석비행장을 2단계 평가에서 배제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으나, 3단계 평가에서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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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전탑 시설이 설치돼 있는 서귀포시 표선면 정석비행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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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 제반시설이 설치돼 있는 서귀포시 표선면 정석비행장 전경. ⓒ제주의소리
이 밖에도 정석비행장 측에서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적용해 안개일수를 높게 잡았고, 경관·생태계·지하수자원 보전지구를 중첩시키며 새로 공항을 짓는 곳보다 정석비행장의 환경훼손이 더욱 크다고 판단한 문제 등도 제기됐다. 한진그룹 계열의 한국항공대 교수가 제2공항 사전타당성 용역의 책임자였다는 사실도 의심을 키웠다.

반대로 성산 후보지의 경우 과업지시서를 위반하면서까지 점수를 높게 책정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과업지시서에 따라 시행했어야 할 지반·지질 정밀조사를 생략해 용암동굴 등지반조건에 대한 검토를 생략했다는 주장이다. 비슷한 시기 이뤄진 영남권 공항 사전타당성 조사의 경우 지반조사가 충실히 이뤄졌다는 점과 대비된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박찬식 제2공항 사전타당성 용역 검토위원회 부위원장은 "제2공항이 신도리로 가야한다거나 정석비행장으로 가야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제2공항 용역이 최초부터 신뢰성과 객관성,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라며 "평가방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정부가 제2공항 사업을 그대로 밀어부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상빈 제2공항 반대 범도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환경수용력, 오버투어리즘 문제로 제주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제2공항은 사전타당성 용역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당시 유력한 후보지였던 신도리와 정석비행장이 의도적으로 배제된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입지선정 과정에서의 평가항목, 배점 등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반대위는 이날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2공항 사전타당성 용역진이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를 후보지에서 배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치를 옮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단계 검토 과정에서 신도2 후보지의 위치를 변경해 소음피해 지역과 환경성을 도리어 악화시켰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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