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71) 잡은 꿩 놓아두고 나는 꿩 잡으려 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심은 꿩 : 잡은 꿩
- 놔덩 : 놓아두고
- 나는 꿩 : 날아가는 꿩
- 심젱 헌다 : 잡으려 한다

손에 잡았던 꿩을 놓아두고 파득거리며 날아오르는 꿩을 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순간적인 오판일 테다. / 사진=픽사베이
손에 잡았던 꿩을 놓아두고 파득거리며 날아오르는 꿩을 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순간적인 오판일 테다. / 사진=픽사베이

양 날개를 갖고 있는 날짐승인 조류는 능력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지상에서 일정 높이의 공중을 난다. 정글의 포식자인 사자나 호랑이도 흉내 낼 수 없는 능력이다. 땅 위를 질주한다 해도 허공을 나는 새를 먹이로 노릴 수는 없는 일이다.

새 가운데 가장 낮게 뜨고 느리게 나는 게 꿩일 것이다. 경계심도 강하거니와 빨리 또 멀리 날지도 못한다. 그래서 숲속이나 콩밭에 숨어 적의 공격을 피해 살아간다. 긴 목을 뽑거나 내밀어 외부의 상황을 순간순간 살피며 명을 유지하는 겁 많고 민감한 녀석이 꿩이다.

사람이 꿩을 잡기는 쉽지 않다. 풀잎을 스치는 기척에도 기겁해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날아가는 꿩을 잡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데 몸 통통하게 살 오른 꿩이라고 만만히 여겼을까. 어쩌다 한 마리 잡았음에도 방금 눈에 들어온 꿩이 더 커 보였던지, 손에 잡았던 꿩을 놓아두고 파득거리며 날아오르는 꿩을 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순간적인 오판일 테다. 나는 꿩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낭패가 있는가. 나는 꿩을 욕심냈다가, 그만 손에 잡았던 꿩까지 놓쳤으니….

못잖은 일에 심혈을 쏟다가, 새로 눈에 띈 일거리가 더 좋아 보여 바꿔 하렸더니, 힘이 따라주지 않아 이 일 저 일 다 놓치는 경우가 적잖을 것이다. 

자기의 능력이나 일의 가치 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한 뒤, 선택해야 하는 게 인생사다. 급히 먹은 밥은 체하는 법.

예로부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잖은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