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장애인인권포럼, 사전투표소 43곳 조사…투표소 향하는 길 걸림돌 ‘수두룩’

투표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

“장애인에게 불편함이 없다면 유모차를 끈 부모, 노인 등 이동약자 또한 투표소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제22대 총선을 20일 남짓 앞둔 지난 19일 오전 제주시내 한 주민센터. 지체장애인 이은림씨와 ㈔제주장애인인권포럼 고수희 팀장이 줄자와 각도기를 들고 분주하게 체크리스트를 확인했다. 사전투표소 접근성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장애인 주차 공간 ▲주 출입구 접근로 접근 가능 여부 ▲출입구 시각장애인 안내시설 ▲경사로 기울기 ▲출입구 단차 ▲장애인화장실 접근성을 꼼꼼히 살폈다.

먼저 이씨가 입구 경사로에 줄자를 늘어뜨려 길이를 쟀다. 140㎝가 나왔다. 보통의 휠체어 폭이 80~90㎝인 점을 감안했을 때 이 정도 폭은 합격이라고 했다.

이번엔 고 팀장이 경사로에 각도기를 올려놨다. 약 4도로 측정됐다. 법에서 규정한 최대 기울기 4.8도보다 완만한 수치다. 경사로 손잡이에도 시작과 끝을 알리는 점자 표시가 알맞게 돼 있었다.

지난 19일 오전 지체 장애인 이은림씨와 ㈔제주장애인인권포럼 고수희 팀장이 제주 시내 한 주민센터 경사로 기울기를 재고 있다. ⓒ제주의소리
지난 19일 오전 지체 장애인 이은림씨와 ㈔제주장애인인권포럼 고수희 팀장이 제주 시내 한 주민센터 경사로 기울기를 재고 있다. ⓒ제주의소리
19일 오전 찾은 한 주민센터 입구 점자블록에 발판이 깔려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19일 오전 찾은 한 주민센터 입구 점자블록에 발판이 깔려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하지만 주민센터 안으로 들어가자 미흡한 부분들이 금세 눈에 띄었다.

입구 점자블록에는 발판이 덮여있어 돌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또 다른 점자블록은 각종 배너간판에 가려진 모습이었다.

이씨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시설물은 장애인들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점자블록을 따라가다 장애물과 부딪혀 다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투표소가 설치될 대회의실 입구에는 점자블록이 별도로 설치돼 있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입구는 3.5㎝의 꽤 높은 단차가 있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2㎝가 넘는 단차는 넘기 어려운 장벽으로 다가온다. 턱을 넘어간다 해도 다시 나오는 데 제약이 따른다.

다만 주민센터 관계자는 “투표 당일에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내온 덮개를 덮어 단차를 없앨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의소리
장애인화장실 세면대 옆에 온수기가 설치돼 있어 휠체어 훔직임에 제약 ⓒ제주의소리

필수 시설인 장애인화장실의 문제는 더 심각했다. 자동문, 비상벨이 설치돼 있지 않거나, 청소도구가 적재된 곳이 부지기수였다. 손잡이가 고장난 채로 방치돼 있기도 했으며, 불투명한 유리문을 통해 용무를 보는 실루엣이 밖에서 보이는 곳도 있었다. 기본적인 잠금장치조차 없는 화장실도 있었다.

이날 사전투표소 3곳을 돌며 모니터링에 나선 이씨와 고 팀장은 “평상 시 장애인들의 이용 편의성, 접근성을 높여야만 투표 당일에도 장애인들이 투표소에 나설 용기가 생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장애인을 위한 공약을 내놓아도, 정작 장애인은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며 “투표소로 향하는 길에 걸림돌이 없다면 더 많은 장애인이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계단만 있었던 곳에 경사로가 설치되거나, 평지로 바뀐다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다”며 결코 장애인만을 위한 편의가 아니라는 점을 덧붙였다.

한편, 제주장애인인권포럼은 선거를 앞두고 지난 13일부터 22일까지 장애인 모니터링 단원을 통해 제주도내 사전투표소 43곳을 조사하고 있다. 투표소 접근성과 편의시설을 조사해 장애인 유권자들이 접근하기 편한 투표소를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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