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때 희생당한 항일운동가 '남로당'몰려 포상 배제
보훈처 "경찰에 4.3행적 의뢰"-경찰 "자료 없다" 부인

경찰이 4.3당시 수집한 자체 '파일'을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4.3 관련자들에 대한 '사상검증'을 계속 해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찰은 특히 이 '파일'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사상검증을 아직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제주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4.3에 관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남로당'으로 몰려 독립유공자 심사에서 번번이 탈락한 것으로 확인돼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 경찰의 4.3과 관련한 사상검증에 걸려 국가로부터 독립유공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왼쪽부터 김시범 배두봉 김두성 한백흥 선생.
'제주의 소리'가 4.3 59주년을 맞아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4.3당시 죽거나 피해를 입은 독립운동가들의 실태를 추적한 결과,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한결같이 국가로부터 '사상검증'을 받았으며, 사상검증의 잣대는 '4.3'이었다고 폭로했다. 또 국가보훈처가 '4.3'을 중요한 사상검증의 잣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공식적인 문건이 입수됐으며, 국가보훈처는 제주도지방경찰청으로부터 자료를 받고 있다고 말해 제주경찰이 '사상검증'의 진원지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1919년 3월 제주에서 벌어진 첫 만세시위인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시범 선생의 후손인 김용욱·용민씨는 김시범 선생이 독립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하는 이유에 대해 "사상검증 때문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으며, 일본 전협과 하귀야학사건 등으로 일제치하에서 옥고를 치른 배두봉 선생 후손 배광흠씨에게 1998년 국가보훈처는 회신을 통해 '독립운동 후 행적이상' 때문에 탈락했다며 사상검증을 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국가보훈처가 제주4.3과 관련한 사상검증을 했다는 사실은 2004년 6월 보훈처가 김우남 의원에게 독립운동가 김두성 선생의 '독립유공자 신청 진행상황' 자료를 송부하면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보훈처는 이 문서에서 "1986년, 1990년 공적심사위원회에 부의했으나 광복 후 4.3사건 당시 남로당 가입행적과 조총련 활동 등 행적에 이상이 있어 보류됐다"라며 처음으로 공식문서에 4.3을 거론했다. 김두성 선생이 4.3과 관련된 '남로당원'이라는 것이다.

▲ 국가보훈처가 1998년 배두봉 선생 후손에게 보낸 문서(왼쪽)에는 '독립운동 후 행적이상'이라고만 밝혔으나 2004년 김두성 선생과 관련해서는 '4.3사건 당시 남로당 가입 행적'이 있다고 밝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4.3과 관련한 사상검증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국가보훈처 김성민 사무관은 제주의 소리와 통화에서 "제주4.3사건은 아주 큰 사건으로 그 당시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가 (국가유공자로 포상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된다"면서 "광복이후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면 포상은 어렵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독립운동을 했는지 여부가 주 심사대상이지만 국가가 수여하는 개인 포상이기 때문에 개인의 전체 행적에 대한 흠결이 없어야 하며, 그 차원에서 독립운동 이후 행적을 조사 한다"면서 "4.3당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도 많지만 사회주의 쪽에서 활동하다 돌아가신 분들도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 활동한) 그런 분들은 포상하지 못한다"며 제주출신 독립운동가들에게 대해 4.3과 관련한 '사상검증'을 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김 사무관은 "1948년 당시의 행적을 어떻게 검증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조사는 경찰에 의뢰한다"고 말했다. "어느 경찰을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제주도지방경찰청에 의뢰 한다"고 말해 제주도지방경찰청이 독립운동가들이 1948년 4.3당시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에 대한 사상검증을 하고 있으며, 경찰의 판단에 따라 독립유공자 인정여부가 결정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국가보훈업무를 맡아오다 지난 2003년 명예 퇴임한 이대수(62) 전 제주보훈지청장도 경찰이 독립운동가들의 사상을 검증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 전 지청장은 "독립운동가들이 어떻게 탈락했는지 제주지청에서는 모르며, 들어서 어렴풋이 알 수 있을 정도"라면서 "국가보훈처에서 경찰에 직접 신원조회를 해서 심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사상검증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전에는 했다"라고 말해 국가보훈처와 경찰의 사상검증을 시인했다. 

이 전 지청장은 "경찰에는 공적인 서류로 만들어진 사상검증 자료, 축적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는 일제당시부터 사상을 조사한 것이 연결돼 내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지방경찰청은 지난 1999년  국정감사 당시 4.3과 관련한 사상검증을 묻는 민주당 추미애 의원 질의에 "4.3당시 자료는 전부 파기됐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또 2004년 4.3관련단체 사상검증 파문과 관련해  "앞으로 사상검증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가 제주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4.3과 연관지어 사상검증을 하고 있으며, 사상검증의 주체는 제주지방경찰청이라는 사실이 국가보훈처에 의해 직접 밝혀지면서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지방경찰청은 독립유공선정과 관련한 신원조회 의뢰는 인정하면서도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4.3관련 사상검증은 부인했다. 

제주지방경찰청 보안과 관계자는 "4.3이 발발한지 몇 십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자료를 보관할리가 있느냐"면서 "경찰에는 그런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독립유공자 선정과 관련한 신원조회 의뢰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김시범 선생에 대한 의뢰는 없었으며, 나머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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