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대 제주도지사 전인홍(全仁洪·58세)을 맞은 도민들의 감회는 새로웠다. 제주도민들은 제5대 김충희 지사가 1951년 8월3일자로 퇴임한 이후 8년만에 제주출신 도지사가 부임함으로써 신임 전인홍 지사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임 길성운 지사가 1953년 11월부터 1959년 5월까지 무려 5년7개월동안 장기 재임함에 따라 도정의 새
제주도의 관광개발문제는 그 동안 일부에서 필요성만 거론됐으나 모든 기반이 부족한 지역 실정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길성운 지사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1958년 10월 중순이었다. 그때까지도 관광분야는 초보수준에 머물렀던 제주도에 영국 왕실의 귀빈급 인사 120명이 11월초에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제주도 전체가 술렁
제주도제 폐지안에 대한 도민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있을 때였던 1956년 10월1일 제주대학장을 34개월동안 겸직하고 있는 길성운 지사가 학장직에 물러나고, 후임에 충남 천안 출신으로서 전남지사와 충남지사·문교부차관·국회사무총장·국학대학장을 지낸 박종만(朴鍾萬)이 취임했다. 제주대학은 설립이후 처음으로 전임 학장을 두게 된 것이었다. 이날 저녁 제주대학
길 지사는 이 대통령으로부터 한꺼번에 많은 지시를 받고서도 이 대통령의 제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 해 7월5일에는 서귀면과 대정면·한림면에 대한 邑승격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희소식이 겹쳤다. 3개면이 동시에 읍으로 승격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더구나 한림면은 읍으로 승격되면서 판포리를 경계로 하는 한경면의 분면안(分面案)이 가결
1955년 8월5일에는 제주시제 실시가 정식으로 공포되면서 초대 시장선거에 도민들의 관심이 쏠렸다. 시장 후보에는 현 제주읍장인 김차봉, 김영진 제주적십자사제주지사장, 이인구 상공회의소부회장, 최광식, 김두수 반공통일연맹위원장 등 5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50명의 읍직원들이 야근을 하며 시제실시에 따른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가운데서도 김차봉과 김봉
김 검사장은 귀임 이틀만인 4월21일 아침 제주~목포간 여객선 편으로 급거 상경, 도민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제주사회는 도의회와 검찰의 갈등문제로 온통 술렁거렸으며 길 지사는 이 문제가 점점 장기화되자 제주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고민이 컸다. 4월28일에는 광주고등검찰청 김희주(金喜周) 검사 등이 진상조사차 내려온 데 이어 김 검사
기정사실로 굳어졌던 제주대학의 국립대학 이관은 그로부터 한달 후인 2월25일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좌절되고 말아 도민들의 실망은 대단했다. 그것은 제주읍의 시 승격무산과 함께 도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날 국무회의에는 제주대학과 충남대학의 국립이관안이 동시에 상정됨으로써 정부가 재정부담 가중을 이유로 일단 보류한 것이었다. 즉, 제주대학만 국립으로 이관
길 지사가 동문매일시장의 화재급보를 듣고 급거 귀임한 가운데서도 지역유지들은 길 지사의 출장 성과에 관심이 모아졌다. 길 지사는 이러한 관심을 의식한 듯 제주대학의 4년제 승격은 문교부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제주시의 읍승격은 제주출신 김인선 강창용 강경옥 국회의원과 함께 국회 부의장과 운영위원장을 방문한 결과 이번 본회의에 상정시키겠다는 언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