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무당벌레'에게 사타구니를 허용하다
굴욕(屈辱)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억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입니다. 굴욕하면 처음 떠오르는 역사적 인물은 우선 한신입니다.
독자제위께서도 익히 아시는 것처럼, 한신은 유방 휘하의 명장으로 한나라 3걸 중의 한 사람이자 오늘날 ‘세계의 명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가 젊었을 때 끝까지 굴욕을 참으며 불량배들의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간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불량배들의 사타구니 밑을 기어가면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역사는 전합니다.
‘한순간의 굴욕을 참지 못한다면 어찌 대장부라 할 수 있으며 장차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한군의 대장이 된 그는 전략.전술 면에서 태공망과 비견될 만큼 뛰어나 유방이 천하의 패권을 잡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한신의 굴욕’과 비견되는 굴욕으로 서양에선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 꿇는 사건인 소위 ‘카노사의 굴욕’이 있습니다.
카노사성(城) 밖의 눈 속에서 3일간 서서 교황에게 용서를 구하고 겨우 사면을 받은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4세.
그러나 이 사건은 실리적인 면에서 황제의 정치적 승리를 평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앙하는 이순신 역시 명나라 도독 진란의 갖은 횡포를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심지어 판옥선까지 바치는 수모와 굴욕을 견뎌내기도 했습니다. ‘왜적 섬멸’이라는 궁국의 목적을 위해서 말입니다.
세 인물의 경우를 들었지만 굴욕을 참는 일은 의지를 갖춘 우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이나 곤충의 세계에선 어림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약자가 강자의 사타구니를 기어가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황당한 굴욕’을 목도한 일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강자’인 개미와 ‘약자’라고 할 수 있는 무당벌레입니다.
개미 한 마리를 집중해서 두어 시간 동안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우연찮은 순간에 ‘약자’인 무당이 ‘강지’인 개미의 사타구니 밑을 순식간에 ‘조르르’기어가더군요.
정작 굴욕을 느낀 것은 무당벌레가 아니라 기습적으로 사타구니 밑을 허용한 개미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진 설명으로 이어가겠습니다.
▲ '오늘의 주인공'인 개미(효과음 '두웅!')
(개미 주변의 물은,개미의 '오바이트'가 아니라,이 두 놈의 사진을 찍고 있는 필자의 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