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5. 어리석은 판사, 춘추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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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게 들켜버린 수많은 어리석은 판사들

《어리석은 판사》는 미국 작가 마고 제이크의 그림책입니다. 겉모습만 보면서 판단하는 지독한 편견에다 권위 의식에 가득찬 판사가 무시무시한 괴물을 신고하는 사람들을 죄다 감옥에 가둬버리다, 결국 괴물에 우적우적 씹혀 먹힌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으며 무시무시한 판사가 대통령 같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적어 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은 망할 것이다”라고 적었지만, 그 중에서 몇몇 학생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망할 것인지 논리적으로 잘 썼습니다. 그 중의 한 친구 글입니다. 

"억울한 사람, 죄를 뒤집어쓰는 사람, 돈 받고 죄를 지은 사람, 돈 받고 대신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 등 많은 피해자가 생길 것이다. 또 억울하게 죽은 사람, 뺑소니 사고, 자살, 살인 등 많은 피해가 생길 것이다. 어리석은 판사 같은 사람이 있다면 돈 많은 사람,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때리고 협박하는 등 많은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마치 대한민국을 높은 곳에서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어른으로서 이 글을 보면서 발가벗겨진 느낌이랄까요? 아이의 글은 이 세상에 어리석은 판사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드러냈죠. 부정할 방법도 숨을 곳도 없습니다. 

어리석은 판사 같은 사람이 가장 많았던 시대는 바로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에 대해서 가장 상세하게 기록된 인문고전은 《춘추좌전》입니다. 《춘추좌전》은 춘추시대 노나라를 둘러싼 나라들의 정치 이야기입니다. 전국시대는 통일을 위해 극도의 효율성과 조직학 등이 발달한 반면, 춘추시대는 ‘인간’과 ‘품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당시 백성들은 어디서나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백성은 현금인출기에 불과했습니다. 착취가 심해도 저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귀족들을 견제하는 안전장치라고는 ‘너무 심하면 반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귀족들이 여행이라도 가는 날에는 그들의 동선 일대는 쑥대밭이 됩니다. 땔감 때문에 벌목이 마구 이루어졌고 경작지는 황폐화되었고 집도 파괴되고 식량과 돈도 갈취되었습니다. 뇌물은 일반화되었기에 그 대가는 백성이 고스란히 물어야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평화시가 이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전쟁 시에는 상상하지 못할 고통이 더해집니다. 기원전 594년 노(魯)나라 남서쪽의 조그만 나라 송(宋)나라가 강대국 초(楚)나라의 침공을 당해 포위된 이야기는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처참합니다. 송나라 백성들은 오랫동안 굶주렸기에 각자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패륜(悖倫)이 저질러집니다. 

“과군이 나를 그대에게 보내 송나라의 어려운 사정을 전하게 했소. 과군이 말하기를, ‘폐읍은 역자이식(易子而食 : 서로 자식을 바꿔 잡아먹음)하고 석해이찬(析骸而爨 : 해골을 쪼개 땔감으로 만들어 밥을 지어 먹음)하고 있습니다.” - 《춘추좌전3》, 「노선공 15년」

주(周)나라가 권위를 잃고 제후들의 탐욕이 극에 달해 이웃나라를 정복하고 멸망하기를 밥 먹듯이 했던 춘추시대 말기의 자화상입니다. 

어리석은 판사가 한 명이라면, 지혜롭고 인자한 시민 열 명이 필요하다

세상에 어리석은 판사가 지혜로운 판사보다 많다면 어리석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만약 어리석은 판사가 압도적으로 많다면 어떤 나라가 될까요? 그림책 《어리석은 판사》에서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잡아먹기라도 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들을 견제할 방법이 딱히 많지 않습니다. 

《춘추좌전》에는 가혹한 정치 현실만 나와 있지 않습니다.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힘쓰는 수많은 지혜롭고 어진 인물도 많이 있습니다. 노희공 21년(B.C. 639년) 여름, 노나라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왕이 기우제를 전담하는 여자 무당을 화형시키려고 했어요. 대부 장문중이 이에 반대하며 설득했습니다.


“이는 가뭄에 대한 대비책이 아닙니다. 수성곽(修城郭, 내성과 외성을 수리함)과 폄식(貶食, 음식을 줄임), 생용(省用, 비용을 줄임), 무색(務穡, 농사에 힘씀), 권분(勸分, 서로 나누어 먹도록 권함)에 힘써야 합니다. 무당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그녀를 죽이고자 했다면 애초에 태어나게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한재(旱災)를 내렸다면 그녀를 불에 태워 죽이는 것은 재해를 더욱 키우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 『춘추좌전』, 「노희공」

사람을 사랑하면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에 대해 분노하게 됩니다. 가끔 우리보다 경제나 정치 상황이 훨씬 좋은 나라의 사람들이 절망하는 글을 볼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은 참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군’ 또는 ‘우리 나라에 와서 살아보라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의롭고 따뜻한 사회라고 하더라도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언제나 있는 법입니다. 

“이렇게 경계하여 두려워할 줄 안다면 결코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춘추좌전》 2권, 「노성공 7년」)라는 말처럼 세상의 어두운 곳과 어리석은 판사들이 할퀴어 놓은 상처들을 항상 생각한다면 뒤를 돌아보면서 예전보다 나아진 현실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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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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