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의 책읽기⑤]「플러그를 뽑는 사람들」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은 '플레인'이라는 잡지에 실린 글들을 모아 주제별로 다시 엮은 것이다. 플레인의 기저가 아미수 공동체에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아미쉬 교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대안적 생활 태도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글쓴이들은 '몸을 움직여 먹고사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 사회가 말하는 기계문명의 편리함이 사실은 편리함이 아니라 우리를 옭아매는 구속이라고 여긴다. 시간을 단축시켜 준다는 컴퓨터가 오히려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시간을 더 빼앗고, 자동차와 전철의 등장은 통근 거리를 늘려 놓았다. 아파트 융자금 납부의 올가미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를 망각하게 한다. 그러는 동안 가정을 잃은 아버지와 아이들이 생기고 방황하는 존재들이 늘어난다. 자기의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기계가 만드는 조직(기계 문명을 비롯하여 학교 같은 조직까지) 속에 갇혀서 기계적 생각에 함몰되어 자기를 잃어버린다.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여가선용이나 정보 습득의 순기능을 하는 게 아니라 소비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플러그를 뽑았다.

사실, 플러그를 뽑는 일을 당장 실천한다면 오늘 저녁 나는 밥도 굶고, 글을 읽을 수도 없으며 가족과 연락 두절 상태가 될 것이다. 이미 기계문명의 혜택을 공기처럼 마시고 사는 우리네 삶은 전자제품을 이용하지 않거나 통신을 이용하지 못하면 바로 무인도에 표류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여기에 우리 삶의 맹점이 있지 않을까.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조차도 점점 기계 문명사회의 전문가 집단에게 일임하는 태도로 삶을 몰아간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텔레비전의 유혹하는 광고와 인터넷의 범람하는 정보에 우리를 빠뜨려 놓은 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광고를 만든 건 기업이고 그 기업들은 소비를 부추겨 이윤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을 위해서 삶의 모델을 가르치려 든다. 큰 평수의 번듯한 집, 큰 차를 부리며 타인 위에 군림하는 삶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분수처럼 내뿜는다.

그러므로 학교까지도 이런 기업들의 사고 체계가 흡수되어 아이들은 좋은 대학이라는 딱지를 받으려고 그들의 반짝이는 시간을 죽인다. 알고 싶어서 하는 공부, 자기 삶에 정말 중요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어떤 통과를 위해 머리 속에 쑤셔 넣어야하는 지식의 더미를 떠 안고 청소년기를 보낸다. 요즘의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했어도 시험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바보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교사집단은 아이들의 자율성을 제한한다. 교사조차도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의 논리로 아이들을 대하는 교육의 대리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 이윤추구기업들이 가르쳐 주는 삶의 모델을 잘 따라가는 일로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맹주를 하고 있는 현대의 대중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속담처럼 뛰는 사람은 나는 사람의 급속한 상승을 부러워하며 더욱더 속력을 낸다. 속도는 이 시대의 미덕처럼 보이며 기계의 발전은 기업의 미덕이 되었다. 그러므로 기업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우리를 부추긴다. 빠른 것이 좋은 것이라고.

이 책은 과연 그런가? 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문명과 속도라는 이 시대의 미덕에 아무 생각 없이 편승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글 쓴 이들은 소박한 그들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삶 찾기를 도와 주고 있다. 가끔은 지나칠 정도로 고립되어 사는 게 아닌가 싶은 의문도 있고 이런 삶이 과연 가능하긴 할까 싶은 의구심이 드는 글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관통하는 생각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삶인가'이다. 그들이 사는 방법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일은 우리 삶을 진실되게 하는 데 도움이 줄 것이다. 소박한 삶을 원하는 이에게, 천천히 사는 것을 원하는 이에게, 가족과 이웃과의 정을 중요시하는 이에게 이 책은 공감의 장을 넓혀 준다. 여전히 속도 경쟁의 구조에 함몰되어 자신의 삶이 왜 버거웁고 힘든지 그 원인을 잘 몰랐던 이들에게도 삶을 되짚어 보는 계기를 줄 것이라 믿는다.

책을 덮으니 '단순한 삶'의 풍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 것 같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뉴욕을 떠나 시골로 가 살며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던 스코트 니어링 부부의 자서전이나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란 책과 더불어 이 책은 영혼을 가지런히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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