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육감, 10일 '영욕의 8년' 병상서 마감

떠나는 마당에 그 흔한 박수소리가 없다. 축하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퇴임에 부쳐 드리는 말씀'이란 종이 한장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정작 당사자는 타향의 병상에 쓸쓸히 누워있다. 부질없음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영욕으로 점철된 '8년 권좌'는 이처럼 허무하게 끝이났다.

김태혁교육감이 10일 교육수장직에서 물러났다. 연간 40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5000명에 대한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한도 함께 사라졌다.

지난 96년 교육위원들의 손에 의해 9대(민선2기) 교육수장에 오른 뒤 꼭 8년이 지났다. 접전 끝에 경쟁후보를 간신히 따돌린 그는 4년후인 2000년, 180여명의 학교운영위원장이 뽑은 10대(민선3기) 교육감 선거에서도 내리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민선 2·3기 내리 당선 '기염'…'독단적' 평가 따라붙어

중등 교사로 출발해 일선 학교 교장과 교육연구원장·탐라교육원장 등을 두루 역임한 그는 경력으로만 본다면 교육수장에 오를 충분한 자격을 갖췄으나 재임기간 내내 그에겐 '독단적'이란 평가가 따라다녔다.

교육청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야 어떻든, 말조차 붙이기 어렵고 서슴없이 교직원들 면전에서 핀잔을 주는 등 전례없는 행보로 인해 대면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는 후문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인물평'과 달리 그는 재임 8년을 '외형적'으로는 비교적 순탄하게 보냈다. 자신과 가족, 측근 등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소문으로만 맴돌거나 수면위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한때 악기점을 운영하는 아들의 기자재 납품비리 의혹이 불거져 물의를 빚기도 했으나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다. 인사 비리 역시 번번이 피해 당사자의 문제제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최초 학교급식 100% 실현, 특목고 설립 '족적'도

그런 그에게도 족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국최초로 학교급식을 100% 실현한 것을 비롯해 과학고·외국어고 설립, 학교 신설, 농어촌현대화 시범학교 운영, 외국어학습센터 설립, 교육인터넷 방송국 개국 등은 교육계 일부에서 공적으로 꼽는 것들이다.

김 교육감 역시 '퇴임에 부쳐 드리는 말씀'을 통해 앞서 언급한 것외에 ICT교육문화센터 설립, 교실환경 개선, 다목적강당 건립 등을 공적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스스로도 밝혔듯이 공적의 대부분은 시설개선쪽에 집중돼 너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데 급급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재임기간 열린교실에 350억원, 정보화사업에 500억원, 교실 증개·축에 1200억원을 각각 쏟아부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일부에선 교실증개·축이나 정보화 사업등 시설개선사업 역시 입찰 비리 의혹과 연관시켜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재임초기 목청껏 외쳤던 '열린교육'은 참담한 평가가 내려진지 오래다. 지금은 열린교육이란 단어조차 사라졌다. 교수-학습 방법을 개선해 학생 눈높이에 맞춘 수준별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교육효과를 드높인다는 취지는 사라지고 공간구조 개선에만 집착한 나머지 오히려 학습분위기를 저해하는등 부작용만 양산하고 말았다. 최근 교육감 선거때 후보들이 너나없이 문제점으로 성토하고 나선 것도 열린 교육이었다.

이석문 전교조 제주지부장은 "김태혁 교육감은 8년동안 인사비리로 교육계의 모든 것을 왜곡시켰고, 열린교실 정책을 의견수렴 없이 시행함으로써 나중에 보완하는데 막대한 예산을 낭비했다"며 "특히 그의 독단적 정책 결정과 파행적 인사 행태는 제주 교육계를 근본적으로 구조적으로 뒤틀리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이 지부장은 "전국적 사안이지만 굳이 성과를 꼽으라면 교실증·개축이나 정보화사업 등을 들수 있으나 이 또한 시설비리 의혹과 맞물려 있어 좋은 평가를 내리기 무섭다"고 말했다.

'8년 권좌'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는 '인사비리 의혹'

그의 '8년 권좌'가 결정적으로 침몰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11월에 터진 인사비리의혹. 인터넷에 뜬 제보성 글이 제주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기획관리국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비리연루 공무원이 구속되는가 하면 출근을 저지당한 교육감은 병가로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특히 교육감 집무실과 자택·병원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이뤄지면서 8년간의 족적은 하루아침에 묻혀버렸다.

인사비리 의혹은 또다른 의혹을 물고왔다. '아파트 복층 사건'이 터지고 유독 낚시를 좋아하는 교육감과, 그 측근들의 소위 '낚싯배 모임'의 존재가 드러났으며 아들의 피아노 납품의혹과 '주유소 의혹' 등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그동안 잠복했던 소문들이 인사비리 의혹을 계기로 한꺼번에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교육단체들은 8년동안 곪은대로 곪은 부패 비리가 터진 것이라며 사직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사퇴요구 거부로 결국 '불명예 퇴임' 오명 자초

'김태혁 사단'의 존재가 드러난 것도 이 시기였다. 구속된 H모씨를 비롯해 몇안되는 인사들에 의해 측근인사가 횡행해 결국 인사시스템을 무력화한 정황이 드러났다. '독단적'이란 평가를 받아온 김 교육감이 인사문제 만큼은 측근의 말도 귀담아 들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 교육감은 각종 의혹제기에 침묵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했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말을 번복하면서까지 사퇴요구를 물리쳤다. 지난달 3일 병가신청을 낸 이래 4번이나 그 기간을 연장하면서 퇴임일인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자신도 고백했지만 사퇴 요구를 물리친 그에겐 이제 뭉뚱그려서 '영욕'(榮辱)이란 말보다 '불명예 퇴임'이란 오점이 더 크게 남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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