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헌트' 조성봉 감독이 보내온 사진과 글, 그리고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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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의 육성 <전사2>를 들을 수 있습니다.





죽창가...시 김남주/노래 안치환


설 연휴 동안 한파와 함께 많은 눈이 내렸다.
문득 누군가 보고 싶었다. 24일 해남으로 갔다.


해남 가는 도로 어딘가에 표시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김남주 시인의 생가가 나왔다.


입구엔 고은시인이 쓴 건조한 표지문이 서있다.



시인의 10주기가 2월13일부터 해남, 광주에서 열린다.
광주 망월동  구 묘역, 그의 묘에 진달래 한아름 드리고 싶다.
15일 2시 그의 묘에서 추모제가 있다.



해남과 강진의 국도를 따라 스쳐 지나가는 길 위의 풍경.
물 가운데 나무. 논 가운데 새... 무얼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강진군과 장흥군을 흐르는 탐진강. 강 하구 구강포에 탐라국 왕자가 처음 배를
대었던 곳이라 하여 탐진강이라 부른다.


장흥 사람들과 강진 사람들은 탐진강을 서로 자기네 강이라고 우기는데,
강진 사람들은 '강진탐진강'을 뒤집어도 '강진탐진강'이기에 그렇단다.


오늘도 한국수자원공사는 국가와 민족의 중흥을 위해 열심히 댐을 짓고 있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고 이 지역에 창평이란 지명은 없다.
주인의 고향이 창평일까? 다음엔 꼭 들려 국밥도 먹고.....


거의 10분 간격으로 눈과 햇살이 비추는 요상한 날씨가 계속된다.
근처에 높은 산들이 많은 지형 탓일까?



장흥을 지나 소설<태백산맥>의 무대 벌교읍을 둘러보고 미뤄두었던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조계산을 갔다. 여순봉기 후 일부는 이 산을 따라
섬진강 건너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선암사를 둘러보고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랐다.
이름없이 죽어간 빨치산들....
 소설속의 염상진과 하대치도 이 길을 따라 올라 갔을 것이다.



송광사로 넘어가는 산길을 걸었다.
갑사와 동학사를 잇는 계룡산 길과 비슷한 느낌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돌아오기에는 남은 해가 너무 짧다.
다시 선암사로 내려왔다. 선암사의 승선교는 지금 대수술중이다.
영화 <동승>에서 알려진 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다.
옆에 다른 길이 있음에도....



구례 거쳐 섬진강으로 내려왔다. 곡성을 지나 압록에서 조계산을
흘러온 물줄기를 만나 비로소 섬진강은 강물이 된다.
섬진강 중하류 토지면 피아골 부근이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강은 얼어 있었다.



섬진강 하류인 하동읍 하동포구 부근에 갈대와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강 끝의 노래


                              김 용 택


         섬진강의 끝
         하동에 가 보라
         돌멩이들이 얼마나 많이 굴러야
         저렇게 작은 모래알들처럼
         끝끝내 꺼지지 않고
         빛나는 작은 돌들을 갖게 되는지


         겨울 하동에 가 보라
         물은 또 얼마나 흐르고 모여야
         저렇게 말없는 물이 되어
         마침내 제 몸 안에 지울 수 없는
         청청한 산 그림자를 그려내는지


         강 끝
         하동에 가서 모래 위를 흐르는 물가에 홀로 앉아
         그대 발밑에서 허물어지는 모래를 보라
         바람에 나부끼는 강 건너 갈대들이
         왜 드디어 그대를 부르는 눈부신 손짓이 되어
         그대를 일으켜 세우는지
         왜 사랑은 부르지 않고 내가 가야 하는지


         섬진강 끝 하동
         무너지는 모래밭에 서서
         겨울 하동을 보라


제주에 내린 눈은 20년 만의 폭설이라고 한다.
그동안의 폭설로 인해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었다는 아침 7시 뉴스를 보면서 27일 김해공항으로 갔다.



서귀포로 가는 5.16도로를 따라 한라산을 넘어가다 보면
교래리로 빠지는 도로가 나온다. 삼나무가 숲을 이루는 이 길은
차로 가기엔 미안한 마음이 저절로 드는 곳이다.
몇 일 지나면 길 양 옆엔 하얀 눈을 헤치고 노오란 복수초가 피어나겠지.



다랑쉬오름을 올랐다. 주위로 많은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의 검은 돌담으로 둘러쌓인 무덤들을 안고 있는 용눈이 오름이 보인다.
제주의 360여개의 오름들은 계절과 보는 방향에 따라 제각각의 모습을 보여준다.



< 섬진강 갈대와 한라산 억새 >


1월의 제주는 가을부터 시작된 억새의 물결로 출렁인다.
모진 겨울을 함께한 억새도 봄이 오면
이름 없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다.



바람, 바다, 노을, 억새, 오름, 일출, 분화구, 용암동굴, 현무암돌담,
희고 검은 해안, 검은 무덤, 그리고 한라산.
이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송악산이다.



한라산을 오르는 성판악, 영실, 관음사길이 눈으로 모두 막혔다.
어리목으로 전화를 했다. 힘들다고 한다. 일단 가기로 했다.
산록도로부터 차량은 통제되었다. 보이는 것은 모두 눈이 덮고 있다. 



짙은 안개와 허리까지 내린 눈을 뚫고 무작정 오른다.
윗세오름까지만 가자..윗세까지만
어차피 어리목등산로는 정상까지 갈 수 없는 길이다.



먼저 지나간 사람이 있었다. 사진을 찍는 남자 둘이었다.
포기하고 내려오는 그들을 만났다.
덕분에 그들이 낸 발자욱을 따라 갈 수 있었다.
간간이 붉은 깃발이 슬픈 길에 묵묵히 서 있다.



무거워 보인다. 힘들어 보였다. 제 몸보다 더 많은 눈을 지고 있다.
난 내가 짊어 질 수 있는 무게만큼만 지고 살아가고 싶다.
허우적거리지 않게...


언젠가 내게 지리산이 우는 소리를 들어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난 아직 지리산이 우는 소릴 듣지 못했다.
한라산은 또 어떻게 울까?



울음소리가 났다. 까마귀였다. 모두 흰데 지 혼자 검다.
박노해 시인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오정훈 감독은 제목을 왜 <세 발 까마귀>로 했을까?



10월2일 그날도 백록담 위를 나는 놈은 까마귀밖에 없었다.



두 시간 반을 걸었다. 아니 기었나...갑자기 앞이 확 트였다.
사제비동산(1400m)이라고 적혀 있다.
저 뒤쪽 안개가 잠시 자리를 비우려한다. 뛰었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제주에서 20년간 사진 찍은 김영갑의 표현이다.
그는 지금 루게릭 병을 앓고 있다.
시간 내어 그의 글과 사진을 만나 보시길... www.dumoak.co.kr


"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 년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 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그때는 몰랐었다.
파랑새를 품안에 끌어안고도 나는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달이 보였다. 그런데 뷰 파인더에선 보이질 않는다.
어림잡아 셧트를 눌렀다. 달이 나에게 붙잡혔다.


저 푸르럼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멀리 윗세오름(1700m)이 보인다. 더 갈 수가 없다.
이미 3시가 되버렸다. 드러누워 버렸다.
어떤 시가 떠올랐다.


         누가 한눈에 제주도를 다 봤다고 하는가.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내려가자.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그곳으로.
어리목 입구에서 사제비 동산까지의 산길은 구상나무 숲길이다.
왔던 길을 따라 걸으며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기억에 담는다.


늘 대하는 주위의 눈에 익은 풍경일지라도, 한 순간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늘 다른 모습이다.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느낌도 달라진다.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인 것일 뿐 객관적일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런가...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슴만큼 보인다, 고.



                        들판에 서서


                                                조태일


        들판에 홀로 서서
        땅 한번 굽어보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느닷없이 군자가 되어,


        "땅은 그 두터움을 스스로 말하지 않고
        하늘은 그 높음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세상시름 꼿꼿이 불러 세워놓고
        큰 시름 잠시 잊은 채 중얼거리다보면
        이 한 몸 온통 죄 덩어리여서
        스스로 팍팍한 들판을 지피는 불덩어리가 된다.


        타오르자
        오간 데 없는 님아
        밤낮없이 시름뿐인 이 들판에서
        이 세상과 함께



다음날 산록도로를 따라 제주의 중산간을 훔쳤다.
바람, 눈, 억새, 무덤, 오름과 한라산을 간직한 제주.



김영갑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제주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자 무덤이 보이고
     동자석도 보였다. 바람과 싸우며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그들은 무엇을 꿈꾸는가.


     유배의 땅에서 변방의 고달픈 삶을 극복하기 위해
     토박이들은 '이어도'라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허영선의 <섬, 기억의 바람>에서 인용합니다.


     북서풍이 휘몰아치는 날, 깊어서 더 갈기 사나운 파도가
                   해벽에 갇혀 절망하듯 몸을 뒤튼다.
                         그 파도가 하늘과 대립하며
               거칠게 속울음 내는 날을 나는 사랑한다.



암청빛 한라산과 그것을 둘러싼 잿빛 능선에 휩싸인,
작은 뿌리인 나는 이 땅에 태어난 운명을 사랑한다.


너울너울 살아서 움직이는, 화산재로 뒤덮인,
오름과 오름의 구릉을 나는 사랑한다.



마음 둘 곳 없는 날, 섬 한바퀴를 돌다 보면
기억의 바람을 안고 사는 할머니의 삶을 만난다.
대찬 바람처럼 사는 그들의 용기있는 삶을 나는 사랑한다.


화산의 눈물로 질퍽한 이 섬,
현무암보다 깊은 어둠을 살면서도 생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팽나무와 닮은 그들의 삶을 사랑한다.



이 길은. 이 바다는. 슬픔과 아름다움, 부드러움과 강인함,
혹독한 바람과 야생의 햇볕, 수용과 저항, 고통과 치유의 섬,
제주도는 왜 이리도 모순된 땅인가.


이 섬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이란 결국 상처와 맞부비며,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제주도는 완벽한 자연이다. 비애와 황홀한 땅이다.
정직한 땅, 기억의 땅이다.
내게 있어 이 땅은 고통과 치유의 스승이다.


나는 이 땅처럼 통하는 인간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200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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