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제주장애인합동결혼식-2004 사랑의 결혼식 치러

▲ 16일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제7회 제주장애인합동결혼식.ⓒ제주의소리
“부지런함과 게으름, 정직함과 거짓됨, 용기와 비겁함 등 우리에게는 상반되는 두 개의 얼굴이 항상 존재합니다. 어떤 얼굴로 살아가느냐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축복받는 가정을 꾸리기 바랍니다” - 주례사 중

옛 전설에 나오는 비익조(比翼鳥)는 혼자서 날 수 없는 새이다. 태어날 때부터 눈도, 날개도, 다리도 하나씩만을 갖고 나왔다. 그러다 자신의 진정한 반쪽을 만나면 비로소 둘은 하나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다.

▲ 신랑 신부가 결혼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왼쪽). 신랑 박삼숙씨가 신부의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다.ⓒ제주의소리
16일 오전 11시,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서로의 다른 반쪽이 되어 함께 하늘을 훨훨 날 수 있게 된 3쌍의 늦깎이 부부가 탄생했다.

㈔제주도장애인총연합회(회장 김호성)가 주최한 제7회 제주장애인합동결혼식-사랑의 결혼식.

이날 많은 하객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 이들은 지체장애 3급 박삼숙씨와 지체장애 1급 윤명희씨 부부, 지체장애 3급 문덕만씨와 비장애인 한은진씨 부부, 신장장애 2급 강배원씨와 비장애인 고미애씨 부부.

▲ 문덕만·한은진씨 부부가 결혼 예물을 교환하고 있다.ⓒ제주의소리
3쌍의 늦깎이 부부는 모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동안 미뤄오던 결혼식을 오늘에야 치러냈다.

같이 생활한 지 27년만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면사포를 쓴 윤명희씨(52). 지난해에 딸을 먼저 시집보내고 나서 갖는 결혼식이라 감회가 더 새롭다.

“그냥 살다보니 결혼식도 못 올렸다”며 “늦게나마 이렇게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 너무 기쁘다”고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이다.

지난해 결혼한 윤명희씨의 큰딸은 “부모님이 결혼식도 못 올리고 사셨다는 것을 이번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됐다”며 “마음이 아팠지만 이제라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 모습을 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주례는 김영호 제주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장이 맡아 “옛말에 착한 아내를 얻으면 3년이 행복하고 현명한 아내는 30년, 지혜로운 아내는 3대(100년)가 행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착한 며느리와 딸이, 자식에게는 현명한 어머니가,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가 되십시오.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봉사를 한다면 만인의 축복을 받는 선택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세 부부에게 축복의 주례사를 했다.

부모님께 드리는 어느 신부의 편지

   
부모님께

오늘 이 순간을 있게 해주신 아버지,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성치 못한 몸으로 살아가는 게 부모님 잘못이 아니건만, 그 동안 어지간히도 속을 썩여 드렸습니다. 그 모든 고통을 다 감수하시느라, 저보다 몇 갑절 더한 아픔과 한이 아버지, 어머니 가슴을 멍들게 한 것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안고 있는 장애가 멍에라면 차라리 당신이 지고 싶어했던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 세상살이가 분명 힘들긴 했지만 장애가 제게 멍에만은 아니었습니다. 장애를 통해서 희생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힘인지를 알았고, 장애를 통해서 일반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깊고 섬세한 또 하나의 세상을 발견할 수 있어 이렇게 사랑과 믿음으로 만날 수 있었고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 오늘 함께 합동결혼식을 치르는 신랑, 신부와 가족들 모두가 안고 있는 사연일 것입니다. 한없이 설레이고 떨리는 날이긴 하지만 아픔과 고통으로 살아온 세월을 공유하고 있기에 오늘 우리들은 그 동안 우리가 살아온 그 어떤 날들보다 편안하고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혼례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그만 우시고 저희들 걱정은 접으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애태워 드렸던 시간들, 저희들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으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고 평온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합니다!

2004년 12월 16일 당신의 딸 올림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