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동안 한 자리서 중국집 운영하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 다정하신 두 분
ⓒ 홍용석
 
보통 중국음식점의 주방장, 혹은 배달원 하면 젊은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신속한 몸놀림으로 주택가 구석구석을 누비는 젊은이. 그런 모습이 흔히 우리들이 생각하는 중국음식 배달원입니다.

그런데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중국음식점 OO반점의 주방장 겸 배달원은 올해 71세이신 할아버지십니다. 그리고 보조원으로 66세의 할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두 분은 부부이십니다.

강충관 할아버지와 윤영자 할머니. 두 분은 고령의 나이에도 아주 건강하십니다. 아마 평생을 성실하게 일해오신 결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직접 음식을 만드시고 또 직접 차를 타고 배달을 하십니다. 예전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셨는데 오토바이 사고를 겪으신 후로는 위험하여 차를 타고 다니신다고 하십니다.

 
▲ 할아버지께서 갓 만들어 내신 자장면
ⓒ 홍용석
 
두 분이 운영하시는 OO반점이 이 자리에 문을 연 것은 26년 전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OO반점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두 분이 26년 동안 이곳에서 같이 일하신 거예요?"

저의 물음에 할아버지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결혼한 지 44년째인데 우린 결혼하고 지금까지 1분 1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어. 중간에 일본에 가서 한 10년 살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 때도 같이 살았어."
"일본엔 무슨 일로 가셨어요?"
"살기가 어려워서, 돈 벌려고…."
"그 때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참 미안해."

 
▲ 자장면을 포장하시는 할머니
ⓒ 홍용석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살기가 어려워 어린 딸 넷을 장모에게 맡겨 두고 할머니와 같이 무작정 일본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거기서도 중국음식점에서 일하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한평생을 중국음식을 만드시면서 살아오셨습니다. 두 분은 거의 맨손으로 시작해서 오늘의 안락함을 일구어낸 그야말로 '자수성가'하신 분들이셨습니다.

"중국요리를 배우시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으십니까?"
"제주 4.3 당시에 밥 못 먹고 살 때 시내에 나와서 중국집 심부름 하면서 기술을 배웠어. 먹고 살려고."

하지만 지금 할아버지가 중국음식점을 운영하시는 이유는 '돈'에 있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자장면을 만드셨지만 지금은 '일'이 좋아서, 놀기 싫어서 자장면을 만드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외상으로 자장면을 먹고 나중에까지 돈을 갚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굳이 받아내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만큼 여유가 생기신 것이겠지요.

할아버지는 오늘의 여유로움을 얻게 된 원인을 한마디로 "참고 또 참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두 분이 같이 일하시니까 좋은 점이 많으시겠네요?"
"늘 같이 있으니까 여러 면에서(?) 한눈 팔 일이 없어."

 
▲ 망중한
ⓒ 홍용석
 

할아버지의 말씀에 할머니께서 빙그레 웃으십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할머니 만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 직업 선택하신다면 이 일을 하시겠느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다시는 이 일 안 해"라고 하십니다. 아마 그동안 고생도 많이 하시고 어려운 점도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냐는 물음에 할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좀 참아야 해. 요즘 젊은이들 참을성이 부족해. 이혼도 쉽게 하고, 일도 쉽게 포기하고."

결혼 후 44년 동안을 항상 같이 지내셨고, 26년간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일해오신 할아버지 할머니. 중국음식점의 배달원으로 시작해서 다섯 자녀를 모두 이 사회의 훌륭한 일꾼으로 키워내신 할아버지 할머니. 오늘날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우리 세대에 좋은 귀감이 되는 두 분을 만나 뵙게 되어서 참 기뻤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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