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의 도백열전(25)] 제7대 도지사 길성운⑩

제주도의 관광개발문제는 그 동안 일부에서 필요성만 거론됐으나 모든 기반이 부족한 지역 실정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길성운 지사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1958년 10월 중순이었다.

그때까지도 관광분야는 초보수준에 머물렀던 제주도에 영국 왕실의 귀빈급 인사 120명이 11월초에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제주도 전체가 술렁이게 만들었다. 경찰정보에 따르면 영국 왕실협회 회원들은 2~3일간 제주에 머물면서 관광지를 돌아볼 예정이며 정부에서는 이들의 숙박을 위해 제반계획을 수립 중이라는 것이다.

영국 왕실 귀빈급 인사 111명 제주 관광

길 지사는 한편으로는 제주관광개발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곧 고민에 빠졌다. 그것은 제주지방에 120명이라는 많은 숫자의 외국인관광객을 수용할 숙박시설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도지사 관사와 깨끗한 호텔과 여관 등을 물색하여 숙소로 정하고 주민과 공무원들을 동원한 대대적인 환경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영국 왕실 아시아회 관광팀 111명은 그 해 11월8일 오후3시 산지항을 통해 들어왔다.

주한미국대사관과 OEC직원, 미8군 등을 포함하여 남자 41명, 여자 70명으로 구성된 방문단은 주한미국대사관의 1등 서기관 스에즈 베알레와 교통부 관광과장 김세준(金世駿)의 안내로 우리나라 함정을 타고 외항에 입항한 후 해군 경비정과 세관 감시정에 옮겨 타고 동부두에 상륙, 길 지사와 양재철(梁在鐵) 경찰국장, 최수진(崔守眞) 제주시장의 영접을 받았다.

이들은 제주도당국이 마련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동쪽으로 관광을 떠났다. 이들 중 미국대사관의 문정관(文政官) 앤더슨은 "내가 한국에 주재한지 10년이 되고 있는데 동양사를 연구하다 보니 중국에 없는 제주도에 고유한 3성(姓), 高·梁·夫씨가 있는 것을 알고 대단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으며 추사 김정희도 제주에서 유배생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제주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영국 왕실팀은 성산 일출봉을 거쳐 서귀포 일대의 관광지를 둘러본 후 11월11일 역시 해군 함정편으로 제주를 떠났다. 이들은 이도에 앞서 "송당목장의 광활한 평야는 섬이 아니라 대륙이라는 느낌을 받았으며, 성산일출봉과 정방폭포, 천지연은 매우 아름다웠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 왕실팀의 제주방문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정책을 다시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며 한 달 후인 그 해 12월9일에는 미8군 방송반이 미군용기 편으로 들어와 제주도의 관광지와 풍습을 촬영하고 돌아갔다.

필리핀 출국에 앞서 이 대통으로부터 지사 경질 언질 받아

  잇단 관광객 내도에 매우 고무돼 있는 길 지사에게 지역사회개발선진국 시찰단 일원으로 필리핀 시찰의 명령이 내려진 것은 1959년 1월초였다. 당시 일반주민은 물론이지만 공무원들도 해외여행은 매우 드문 일이어서 길 지사의 필리핀시찰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1월15일 경무대에 들어가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출장신고식을 마친 길 지사는 이 대통령에게 2개월전에 방문했던 영국 왕실관광단의 얘기를 끄집어내면서 "제주도의 관광개발을 위해서는 한라산 횡단도로와 일주도로의 확·포장이 시급하며 관광시설과 해수욕장 건설도 빨리 해야 될 것 같다"고 개진했다.

이 대통령은 길 지사의 건의를 받고 "부흥위원회에게 지시하여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제주도개발계획에서 관광산업과 특용작물생산계획을 장기계획에서 단기계획으로 변경하도록 지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때 길 지사는 이 대통령으로부터 지사 경질을 언질 받았으나 이 사실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나중 길 지사가 귀임할 무렵에 언론을 통해 새어 나왔다.

그 해 2월5일 길 지사는 제주도내 기관장들의 환송을 받으며 필리핀으로 떠났다. 무려 40여일간의 시찰을 마치고 3월13일 귀국한 길 지사는 여행도중에 쓴 「필리핀기행문」을 제주신보에 기고하는 등 외국의 문물과 관광실태를 소개하는 등 대단한 열의를 보였다.

그런데 길성운 지사가 외유 중에 4월께에 전라북도 도지사로 영전되고 후임에 강경옥, 홍창섭, 전인홍 등이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 지방신문인 「제민시보」에 보도됐다. 따라서 길 지사의 귀국은 귀국성과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려니와 그에 대한 거취문제도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3월17일에는 제주신보사 주최로 제주시내 중앙극장에서 「길성운 지사 귀환보고 강연회」가 열려 많은 시민들이 길 지사의 해외여행소감을 들었다.

길 지사 평북지사 발령에 섭섭…신임지사 전인홍 전 도의장 발령

 길 지사는 강연에 앞서 자신의 이동설이 분분하고 있는 데에 대해 언급하고 "신문에 나에 대한 이동설이 보도돼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든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진 뒤 "아마 이동하게 되면 전북이 아니라 경기도지사로 갈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은근히 이동설이 사실임을 시사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길 지사의 경질은 당초 알려졌던 4월초보다 늦어진 5월초에 단행됐다.
이에 앞서 제주도내에는 지사경질이 나돌면서 후임 지사에 관심이 모아졌다.

 후임 지사로는 초대 제주도의회 의장을 지낸 전인홍(全仁洪) 자유당도당 위원장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全 위원장은 제주도총무국장을 포함하여 20여년간의 공직생활로 행정경험이 풍부한데다 초기 제주도의회를 무난히 이끌었으며 정당 쪽에서도 지지기반이 확고하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주신보 부사장으로서 언론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의 지지를 얻고 있어 물망에 오른 인사 가운데 가장 유력시 되었다.
 
정부는 1959년 5월13일자로 강원·경북·전북·황해·평남 도지사를 포함하여 제주도지사 등 7명의 도지사를 한꺼번에 교체하는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정부는 길성운 지사를 평안남도 도지사로 이동발령하고 후임에는 예상대로 전인홍을 기용했다.

길 지사의 평남지사 발령은 이외였다. 길 지사는 필리핀 출국전 경무대의 경질시사가 있을 때 5년7개월간 제주도지사로 장기 재임한 점을 들어 상경 시켜 줄 것을 개인적으로 요청했으나 한직(閒職)이나 다름없는 평남지사로 발령되자 불만이 컸다.(그러나 길 지사가 제주도지사에서 평남지사로 옮긴 후 4.19학생의거가 일어나 대부분의 도지사들이 불명예 퇴진하거나 '3.15 부정선거'에 연루돼 영어(囹圄)의 몸이 됐지만 길 지사는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길 지사 환송인파 제주공항에 700명 몰려 사상 최대

길 지사는 정부발령이 발표되자 "오랫동안 정들었던 제주도를 떠나게 돼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약 6년간 큰 허물없이 도정을 맡을 수 있도록 도와준 도민들에게 감사 드린다. 제주도는 앞으로도 나에게는 내왕을 끊을 수 없는 제2의 고향이 될 것이며, 그리고 「소망의 섬」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나는 6개월전부터 이임준비를 해왔으며 오늘 발표한 이임소감은 필리핀 시찰전에 쓴 후 관사 책상설합 속에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면서 오래 전부터 자신의 이임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길 지사는 5월15일 아침 도청 앞에서 이임식을 가진 후 이례적으로 5월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도일주를 하면서 일선 읍·면사무소와 각 기관을 방문하면서 이임인사를 하는 등 6년동안 정들었던 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길 지사가 이임하는 5월21일 오후1시 제주비행장에는 차량만도 56대가 나오는 등 제주도내 기관·단체장과 지역유지 700여명이 길 지사를 환송했다. 또 이날 서울에서 도착한 비행기에는 지사 발령장을 받고 돌아오는 신임 전인홍 지사가 타고 있어 제주비행장에는 개설이래 최대의 인파가 몰렸다.

비행장에서 신임 지사를 만난 길 지사는 "충분히 얘기할 시간도 없이 떠나게 돼 미안하며, 취임을 축하한다"고 말하자 전인홍 지사는 "당신 뒤를 이어 잘 하겠으니 안심하고 떠나라"고 답했다.

좌천인사 명예회복위해 초대 참의원 선거 나섰으나 낙선

길 지사는 평남지사를 1년만에 그만 둔 후 1960년 7월29일에 실시된 초대 참의원선거에 민주당 공천을 받고 제주에서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길 지사는 5년7개월동안 재임했던 제주지사에 대한 미련과 당시 좌천인사에 대한 명예회복의 욕구가 컸던 것이다. 그때 길성운은 선거동약으로 △4월 혁명의 완수 △민권의 기초확립 △농어촌부흥 △축산 및 관광개발 등을 내세웠다.

  길성운은 그후 인하공대 상무이사겸 임시학장, 인천도시관광사장, 화신백화점 박흥식 사장이 경영하는 흥한재단 전무이사 등을 거쳐 1973년 한일개발주식회사 고문 등으로 제주에서 근무하다 미국으로 이민갔다.

(7대 길성운 지사 연재 마치고 다음부터는 8대 전인홍 지사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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