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18) 오목소녀(Omok Girl), 백승화,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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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목소녀> 포스터. 출처=네이버.

엑스트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소리를 내는 것은 비명이나 함성 정도. 그리고 엑스트라는 티 나게 움직이면 안 된다. 원래 그곳에 붙박여 있던 것인 양 자연스럽게 화면에 녹아나야 한다. 그것이 엑스트라의 연기라면 연기다. 우리가 장삼이사로 살아가듯.

만약 주인공 뒤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엑스트라라면 어디서나 볼 법한 장면으로 배경이 되어야 한다. 이 영화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남자가 혼자 라켓으로 셔틀콕을 팅팅 튕기며 놀고 있다. 모습은 배드민턴을 생전 처음 처 보는 사람인 것만 같다. 역시나 서툴러 셔틀콕이 자꾸만 풀숲 사이로 떨어진다. 남자는 엉거주춤 그걸 줍는다. 그런 모습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게다가 카메라는 그 배드민턴 치는 남자를 줌인한다. 이것은 감독의 가치관 반영이다.

단역이 영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역할을 수행하려면 조연급은 되어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위기의 장면에서 단역이 등으로 스위치를 누른다. “정숙하라”는 주인공의 대사에 손을 들어 “저요?”라고 말한 그 단역의 배역 이름은 ‘정숙’이다. 이야기에 아무 상관없는데 말을 했다. 감독은 그런 단역에게 말을 건다.

카메오는 또 어떤가. 카메오는 의외의 출연으로 웃음을 주거나 놀라움을 주는 존재다. 그리고 등장했더라도 못 알아채는 것이 다반사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엑스트라들이 다 카메오 같다. 아마도 대부분 영화 제작 스태프인 것 같다.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려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카메오로 등장한 브로콜리너마저의 덕원은 거의 조연이나 마찬가지다. 대사가 많다. “하는 일이 잘 안 풀리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엇보다 바둑도 아닌 오목 전국대회가 있을까. 비인기종목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나온다. 인물 이름이 거의 다 비현실적이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이름이 실제 있는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 아닌가. 이런 정서에 공감한다면 감독의 전작 <걷기왕>을 추천한다. 죽어라 뛰어도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에.

‘영화적 인간’은 보통의 영화 리뷰와는 다르게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를 맡은 현택훈 시인은 지금까지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심야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며, 복권에 당첨되면 극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아직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기에 영화를 보기 위해 번호표를 뽑아 줄을 서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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