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106) 위 골고루, 아래 조금씩

* 우 : 위
* 골로로 : 골고루, 공평하게
* 알 : 아래
* 족족 : 조금씩, 조금씩 (적게라도 고르게)

“그거 말이여, 떡반 태우듯이 골로로 태와산다 이?”
(그것 말이지, 떡 반 태우듯이 골고루 나눠야 한다. 잘 알겠지?)
 
말은 하면서도 무엇이든 골고루 나누기란 쉽지 않다. 

똑같이 나눈다는 것, 특히 재물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으리라. 각자의 몫을 제대로 나누면 불평이 없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위와 아래 곧 웃어른들과 어린 아이들을 구별해서 나누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테다. 한데도 각기 그 돌아가는 몫이 고르지 못해 분배엔 늘 불평불만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걸 국가라는 차원에서 보면 소득 분배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분배가 빈부의 양극화의 원인을 제공하면서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게 된다.
  
분배는 합리적이라야 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사리(事理)를 분명히 밝히는 말이다. 위도 골고루, 아래 또한 조금씩이라도 골고루 가게 하라는 것, 그래야 분란이 일지 않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분배(分配)의 문제는 늘 경제적‧사회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분배란 생산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생산물을 나눠 갖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과수원에서 감귤을 가꿔 수확하고, 바다에서 조업해 물고기를 잡고,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고…. 사람들은 갖가지 생산 활동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낸 것들을 실생활에 소비하면서 삶을 영위해 나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만들어 낸 생산물들과 생산 활동을 통해서 얻은 소득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것, 바로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이르러 고민하게 된다. 그러니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었으면 그것을 쓰기 전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분배다. 이 또한 생산과 소비를 잇는 중요한 경제 활동의 일부라 그러하다.

분배가 불평등하면 사회적 갈등을 빚는다. 어떤 사람은 부자, 어떤 사람은 빈곤해지기 때문이다. 한 나라 안에 넓은 집과 비싼 자동차를, 그것도 몇 대씩 갖고 있는 부호들이 있는가 하면, 당장 끼니를 이을 식량과 따스한 방 한 칸이 없고 너덜대는 남루를 걸친 가난한 사람들이 혼재해 있다. 특히 도시서민들.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은 경제 활동 뒤 분배 받는 몫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다.

사람들마다 분배 받는 몫에 차이가 생겨난다. 생산 과정에서의 역할, 교육 받은 정도, 사회적 차별, 물려받은 재산의 차이, 타고난 능력과 기울인 노력의 차이….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소득과 재산의 차이가 너무 심하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 차이가 점점 커지면서 양극화 현상이 나온다. 이는 바로 빈부 격차를 의미한다. 빈부 격차가 지나치게 크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 격차를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돈 많은 사람들은 갖고 있는 돈을 이용해 재산을 불리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 교육 기회마저 잃게 된다. 더욱이 좋은 일자리를 찾을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만다.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재산 차이가 점점 커져 현격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양극화다. 심해지면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한 나머지 불만 속에 방황하게 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도저히 해결이 안되므로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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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심한 양극화, 개인의 노력만으로 도저히 해결이 안되므로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사진은 지난해 나온 자칭, 복지국가 안내서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 표지. [편집자] 출처=알라딘.

이 나라 젊은이들 계층에서 나온 신조어 ‘헬조선’이 바로, 이러한 빈부 격차라는 절박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말이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지옥(hell)과도 같다는 뼈저린 자조(自嘲)의 말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란 말은 옛 시절 얘기가 돼 버렸다. 흙수저로 태어나면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도, 인간관계, 꿈마저도 포기해야 한다는 희망 없는 젊은이들의 입에서 나온 울분과 냉소의 언어, 헬조선.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고 미래비전도 없는 이 사회가 ‘지옥 같은 사회’라는 발화(發話)가 아닌가.

5년 전 유행하던 이 헬조선이란 말이 다시 튀어나온 데는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가 한 강연에서 “젊은이들은 여기에 앉아서 취직 안된다고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신남방 국가를 보면 해피조선”이라 했다. 화로의 재에 묻혀 사그라지던 불씨를 되살려 놓은 것이다. 취업도, 헬조선도 진취적이지 못한 청년 탓으로 돌린 꼴이 됐다.

분노한 젊은이들이 나라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이 정부가 내건 ‘나라다운 나라’가 젊은이들이 ‘탈조선’하는 나라인가? 젊은이들이 아세안을 안 가면서 헬조선이란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그래서 그들이 입을 모은다. “니가 가라! 아세안”이라고. 

설화(舌禍)로 장본인은 직에서 사임했지만, 이 땅의 젊은이들 가슴 쓸어 내렸을 법하다.

소득을 재분배해야 한다. 이 나라가 안고 있는 분배의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한 양상으로 흐른다. 정책적 해법이 나와야 한다.

‘우 골로로, 알 족족.’
 
참 지혜로운 말이다. 한 시대를 앞서 예단한 탁견이 아닐 수 없다.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은 소득에 대한 공평한 분배를 원한다. 국민으로서 그걸 주장할 권리가 있다. 소득에 대한 분배는 ‘골고루 조금씩’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거늘.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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