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104) 남의 집 가승을 모르면 큰소리 못 친다

* 놈 : 남, 타인(他人)
* 연데 : 연대(年代), 가승(家乘), 족보

민족의 명절 설이 눈앞이다. 부모형제와 일가친척이 있는 고향 산천을 찾아 내려오는 귀성 인파로 전국이 넘실거리고 있다. 제주라고 예외이랴. 육지에 나가 사는 많은 후손들이 비행기 타고 혹은 배에 몸을 실어 속속 귀성해 온다. 평소완 달리 집안이 화기애애하다.
  
차례를 지내며 가문의 친족이 한 자리에 모이면, 이런저런 집안 얘기가 심심치 않게 화제에 오르게 마련이다. 자연, 남의 집안 말도 알맞게 섞여 입에 오르내린다. 제주 한잔에 거나해 신바람이 나면 이야기에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며. 

하지만 중요한 게 있다. 내 집안 말이든, 남의 집안에 대한 얘기든 집안이 내려 온 이력에 정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안 말을 허투루 말하는 것은 썩 예의롭지 못한 처신이 된다. 명심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남의 집 연대라 함은 다른 집안(가문)의 ‘가승(家乘)’을 의미한다. 옛날엔 한 마을 유지쯤 되면 그 마을은 말할 것 없고 이웃 마을 남의 가문의 족보까지 꿰차야 했다. 그 정도가 돼야 명색 마을 어른 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 남의 집 가통에 대해 알음알음 꿰뚫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주는 바닥이 좁아서 더욱 그랬을 법도하다. 어쨌거나 그만큼 세상물정에 밝고 이웃의 세상 살아온 내력을 소상히 알고 있어야 어디 가서 한소리해도 듣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을 테니 말이다. 그쯤 돼야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도 의젓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함이다. 고작 자기 집 가승이나 아는 정도로는 남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는 유식자 축에 끼지 못한다는 얘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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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보박물관에 전시 돼 있는 각 성씨별 족보. 출처=오마이뉴스.

어릴 적 기억 속으로 한 장면이 떠오른다.

동네에 조 씨라는 어르신이 있었다. 그분은 사돈의 팔촌만 돼도 제삿집을 빼놓지 않고 돌아다녔다. 끼니가 변변치 않던 시절, 제삿집에 가면 으레 곤밥에 생선국이며 고기 산적 두어 점에다 제주(祭酒) 몇 잔으로 입을 호사시킬 수 있으니 그런 기회를 놓치겠는가.

그분은 남이 못 가진 좋은 언변을 타고나, 맛깔스럽고 걸쭉한 입담으로 좌중을 좌지우지 끌고 다녔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말이 잠시 쉬었다가 파제 후 음복할 때면 다시 만발했다. “김해김씨 좌정승공파 몇 대 손” 하며 줄거리를 엮기 시작하면 무궁무진으로 끝 가는 데를 모를 지경이었다. 윗대에 무슨 벼슬하고, 그 아래로는 어떻고, 자손의 흥망 내력까지 꿰차지 않는 데가 없었다. 입 쩝쩝 다셔 가면서 한 번 귀 기울이면 모르는 새 빠져 들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듣던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흥미진진한 것 같았다. 형편이 아닌데도 첩을 거느리고 산 걸 보면 그쪽에도 말발이 먹혔던 건지, 어린 시절이라 거기까지는 잘 모른다.

반드시 유식한 건 아닌 것 같아 보였지만, 사람들을 말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남의 집안에 대해서도 구석구석 모르는 데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남의 집안 일 가운데도 특히 친척간의 관계를 족집게처럼 짚어 내는 것이다. 그게 말에 대한 준거 혹은 신뢰로 이어졌을 테다.

말이 나왔으니, ‘연데(年代)’에 대해 좀 풀어야 할 것 같다.

‘놈의 집 연델 몰르민…’, 여기서 말하는 연대란 곧 족보를 말한다.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도표 식으로 나타낸 한 종족의 계보다. 일명 보첩(譜牒), 세보(世譜), 세계(世系), 가승(家乘), 가첩(家牒), 가보(家譜), 성보(姓譜)라고도 한다.

국가의 사승(史乘)과 같은 것으로, 조상을 공경하고 종족의 단합하면서 후손으로 하여금 촌수의 멀고 가까움에 관계치 않고 화목의 가풍을 이루게 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존비, 항렬, 적서(嫡庶)의 구별을 명백히 하는 것으로 돼 있되, 건전한 가족관을 바탕으로 했다.

조선시대에 족보가 정착되고 이른바 ‘양반의 혈통증명서’로서 그 역할을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인 거의 전부가 소위 족보로 자신이 양반 자손임을 증명이 가능하다.. 성씨를 가진 양반은 조선후기 1%에 불과했으나, 거의 100%로 늘어난 것. 반대로 97%나 되던 평민들의 후손이 아예 없다.

단적으로 신라 김알지 후손임을 자처하는 양반이 400만 명, 전체 인구의 10%나 된다. 김알지의 번식 능력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판명됐다. 

북한에서는 봉건적 유물을 없앤다는 구실로 족보를 없애 버리고, 새로운 것도 제작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니 자기 조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 한다.

‘놈의 집 연델 몰르민 큰소릴 못 친다.’

족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말이지만,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내면에 숨은 뜻도 분명 있을 듯하다. 
  
동네방네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한마디 하려면 화제(話題)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종횡무진이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사람들은 설득력에서 공감한다. 공감이 이뤄져야 박수가 나오는 법이다. 더욱이 시골 마을에서 집안 얘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저러하게 엮인 사이라는 연대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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