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96) 성읍리 정의읍성 산물

해안마을 표선리에서 상부 8km 떨어진 곳에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인 성읍민속마을이 있는 성읍리. 500여년 동안 현청 소재지로 정의현(旌義縣)이 설치되어 정의골이라 불렀던 진사마을로서, 유서 깊은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덕분에 유형·무형의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과거 성읍리는 성 밖 천미천의 물을 주 식수원으로 사용했다. 현청이 있던 성안에는 솟는 산물인 생수가 없어 물이 귀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성 밖에 있는 시건이물이나 배천의소 등을 식수로 사용했다. 이런 이유로 정의현을 설치할 때 성 축성 시 우물이 필수적으로 고려됐다. 

현청의 식수 해결, 오랜 가뭄, 외적 침입 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여 성 밖에 있는 물을 쓰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백성들의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구휼한 관가물이라는 통(桶) 형식의 우물인 ‘원님물통(관갯물, 관가물)’을 만들었다. 이 물은 정의읍성의 남문 안쪽에 있는 인공우물로 1996년에 고증을 통해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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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봉천수를 자연스럽게 흘러오게 하여 모아서 사용했던 못(池)과는 달리, 원님물은 마실 물을 얻기 위해 땅을 파서 스며드는 지하수를 사용했다. 정교한 돌 쌓은 기법이 인상적인데, 한번 모인 물은 흘러나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또한 물은 자연 그대로 유지하고 오탁하지 않도록 돌로 주변을 편평하게 쌓고, 물이 나는 곳을 더욱 깊게 파내고 반으로 쪼갠 나무를 우물 정(井) 모양으로 박고 사각물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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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님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처럼 나무를 박아 놓은 이유는 물 안에 흙과 돌 등이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다. 이 기술은 맹암거를 깔고 주변의 물을 최대한 모으는 현재도 사용하는 지하수 기술인 집수암거와 같은 기법이다. 그리고 물이 나오는 부분을 자갈과 모래를 이용하여 여과층을 만들고, 물을 정수할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자갈과 모래층 사이에 숯 층을 만들어 물을 소독할 수 있도록 위생적으로 제작했다. 이는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정수기의 원리와 동일하다. 당시의 정수·물 처리 기술은 상당한 수준으로 지금의 정수기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문 쪽 둠부리 동네에 백성들이 식수로 사용하기 위한 우물도 만들었는데, 둔덕을 이룬 지대의 우물이라 해서 둠부리물통이라고 한다. 지금 이 우물통은 성읍농협 뒤편 길가에 있는데, 원래는 하나의 물통이었으나 길을 내면서 일부 매립하고 3개의 물통으로 쪼개져서 보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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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둠부리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물통 안에는 연꽃을 심어 물이 썩는 것을 방지한다. 이 물통은 새로 축조되었지만 과거에 만들어진 모습을 최대한 살렸으며, 들어가는 입구에 물허벅을 부려 놓을 수 있도록 물팡을 재현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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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둠부리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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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둠부리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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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둠부리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외에도 성읍 안에는 원님물 서쪽에 봉천수인 노더리방죽이란 못이 있는데, 이 물은 빨래하고 목욕하던 물로 우마에게 물을 먹였다. 현청에 일을 보러 온 사람들이 쉬었다 가던 곳으로, 성안 화재에 대비한 방화수 역할을 했던 물이기도 하다. 

방죽은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둑으로 둘러막은 못이나 웅덩이를 말하며 노더리는 나들이란 의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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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더리방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영주산을 위시로 하여 크고 작은 오름들이 마을을 둘러가면서 불쑥불쑥 호위병처럼 솟아 사방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것 같은 성읍. 

그 성안의 생명을 지킨 원님물은 선조들이 남긴 우수한 우물 축조 기술로 물을 정화한 재래식 정수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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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둠부리통에서 핀 연꽃.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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