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92) 신풍리 큰개산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는 ‘새롭고 풍요로운 마을을 지향한다’란 의미로 이름 지어졌다. 

신풍리 내(川)의 끄트머리에 있다고 하여 신천리, 하천리와 함께 ‘내끼(천미촌)’라고도 불렸다. 바다에서 용출되는 산물은 박해서 주로 천미천(川尾川)의 물에 의존하여 식수를 해결했다. 여기서 내(川)는 천미천(개로천, 介老川)을 말한다. 내끼는 ‘내깍’의 변음으로, 신풍리가 천미천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웃내끼(상천미)’라 불렀다. 

신풍리는 바닷가에서 설령 담수가 난다해도 솟는 양이 작거나 바닷물이 섞여있어 물맛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큰개에 큰개산물이란 산물이 솟고, 과거 정의현 세공선에 식수로 사용될 만큼 마을의 귀한 식수로 사용되었다. 

큰개는 마을의 중심이 되는 포구로 이 포구를 통해 출항하는 배는 파선되지 않는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과거 진상하는 10소장과 하목장에서 선택된 공마인 마소를 싣고 나가는 정의현 세공선의 출항지였다. 

큰개산물은 한자표기로 대포(大浦)라고 부르는 큰개에 있는 산물이다. 산에서 내린 물이 살아있는 물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 큰개산물.JPG
▲ 큰개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신풍리 해녀 탈의장 서측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는데, 흡사 시골 아낙의 소박한 모습처럼 솟아난다. 

용출된 물은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ㅗ’ 자형 자연수로를 따라 그 하부에는 둥글게 형성된 빌레(너럭바위의 제주어)에 물이 자연스럽게 갇혀 사용할 수 있는 빨래통을 갖고 있다. 산물 곁에는 한 사람이 목욕할 수 있는 목욕통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2.큰개산물 목욕통.JPG
▲ 큰개산물 목욕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3. 큰개산물 자연수로.JPG
▲ 큰개산물 자연수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산물 상부 해안경계지에는 ‘옛부터 여기에 마을이 있었고 이 산물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주거지의 경계에 심었던 대나무가 군락을 형성하여 자라고 있다. 이 산물은 썰물이 될 때 힘차게 솟구치는 특성을 갖고 있다.

4.산물입구 해안가 대나무 군락.JPG
▲ 산물입구 해안가 대나무 군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물에는 생명을 불어넣는 성스러운 힘이 있다는 믿음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마찬가지로 신풍리의 유일한 산물인 큰개산물도 세공선에 식수를 제공함으로써, 배는 강한 생명을 얻고 거친 파도에도 파선 없이 순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해안가에 물이 박했던 이 지역에 섬의 거친 파도를 뚫고 강한 기운을 갖는 산물이 유일하게 용출된다. 마을의 풍요로움을 약속하는 용솟음이기에 마을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산물을 신성하게 보전하는 것이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