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⑭ 
에스코바르(Loving Pablo),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2018. 
마약왕(The Drug King), 우민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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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영화 <에스코바르>의 한 장면, 오른쪽은 영화 <마약왕>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스티브 바이의 <The Blood & Tears>를 들으면 남아메리카의 정글이 떠오른다. 낯선 풍광은 낯선 비를 만든다. 이 노래가 실린 <The Ultra Zone>(1999)은 태평양 이남의 심장을 말하는 것 같다. 영화 에스코바르 원제가 ‘Loving Pablo’이듯 국경만 넘으면 사랑스럽다. 국경을 넘는 사람과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낯선 길만 나와도 좋았었지.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그림 <마지막 휴양지> 같은. 이제는 갈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가야만 하는 그곳. 그곳 호텔에서 한 보름 묵으며 창밖을 살핀다. 도주는 어처구니없이 끝나니까 팬티는 언제나 깨끗해야 해.

전역한지 20년 정도 흘렀는데 거울 볼 때마다 위장 크림을 바르던 시절이 떠오른다. 군대는 낯설었는데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 낯선 풍경은 관습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긍정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악몽을 꾼다. 김세홍 시인도 언젠가 술자리에 고백한 적이 있다. 쉰 넘긴 나이에도 미복귀의 악몽을 꾼다고. 어쩌면 예비역들은 아직 휴가 중인인 걸까. 그러니까 이 지구에 휴양을 온 휴가병(休暇兵)인 것. 

허밍만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있다. 접속사만으로 말이 이어질 수 있는 걸 증명해 보이는 시인이 있는 것처럼. 대륙마다 하나씩 심장이 있는 것 같다. 콜롬비아의 심장은 방아쇠 모양이다. 위장 크림이 떨어지면 신문지를 불태웠다. 이야기는 모두 ‘귀환병 이야기’라고 봐도 될 정도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파블로 에스코바르. 악당과 영웅의 공통점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다는 점이다. 이두삼 역시 그럴 확률이 높다. 그러니 왕이 되려고 하지. 접속사만으로 시를 쓴 시인은 송승환이다. 그의 시 <이화장>은 접속사만으로 이루어졌다. 왕의 별장은 늘 초라하다. 이두삼에게 남은 건 사냥용 총 몇 자루.

우리는 결국 숲으로 원대복귀한다. 우리는 숲에서 왔으니까. 거구의 에스코바르는 알몸인 채 숲으로 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돌아가려는 듯 뒤뚱뒤뚱 뛰었다. 이두삼도 대충 총 쏜다. 그것은 총질은 삿대질에 가까운 총질이었다. 수출역군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마약의 시대가 그렇게 어기적댔다. 총이 축 늘어진 것처럼 보였다. 환각.

에스테반은 태양 소년이다. 합작 영화는 합작이라는 지점에서 아름답다. 일본과 프랑스, 스페인과 볼리비아. 이종교배는 새로운 가장자리에서 시작된다. 낯선 숲의 나무 이야기는 개연성이 충분해도 낯설다. 적응하지 못한 기후는 빛난다. 가보지 못한 날씨는 더욱 매력적이다. 그것은 스티브 바이의 기타 연주처럼 근사하다. 목돈이 생기면 남아메리카에 가야지. 

육영수 여사 역할은 비르히니아 바예호라고 하려다 그만 둔다. 비르히니아 바예호는 배두나래두. 육영수 여사처럼 행복하게 해 줄게. 육영수 여사는 과연 행복했을까. 정말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는 본인이 판단할 문제이기에 내가 고민할 필요는 없고, 그녀는 행복한 척 보이려고 했던 것은 분명하다. 어느 누구라도 만약에 정말 행복했다면 그것은 환각이다.

‘영화적 인간’은 보통의 영화 리뷰와는 다르게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를 맡은 현택훈 시인은 지금까지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심야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며, 복권에 당첨되면 극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아직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기에 영화를 보기 위해 번호표를 뽑아 줄을 서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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