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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국가공권력 대신해 법정서 최종 의견 진술...수사검사 “너무 늦었지만 아픔 치유되길”
 
검찰이 사상 처음으로 법정에서 4.3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언급하며 희생자를 위로했다. 70년만에 이뤄진 재심재판 대해서도 역사에 남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제주지방검찰청은 양근방(86) 할아버지 등 4.3생존수형인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사건에 대한 17일 결심공판에서 이 같은 뜻을 전했다.
 
검찰은 이날 최종 의견 진술에서 “제주도 인구의 10%가 희생되는 엄청난 비극이 이념과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됐다”며 조천면 교래리, 애월면 하가리, 표선면 토산리를 언급했다.
 
제주에서는 1948년 4.3사건이 발발하면서 300여개 마을에서 2만여호가 불에 타는 등 집단 학살이 벌어졌다. 검찰이 언급한 마을은 피해가 컸던 마을 중 일부다.
 
당시 정부는 1948년 12월 14차례에 걸친 군법회의 재판에서 871명을 처벌했다. 이듬해 6~7월에도 14차례의 재판을 열어 1659명을 처벌하는 등 희생자만 2530명에 이른다.
 
정부는 군법회의를 진행하면서 공소장과 공판조서, 판결문 등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도민들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전국 형무소로 뿔뿔이 흩어졌다.
 
검찰은 “4.3으로 아물지 않는 아픔이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며 “너무 늦었지만 모든 분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재심 사건에 대해서는 “소송기록이 없는 재판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할 수 없었다. 헌법상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역사에 남기는 뜻있는 과정이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 검찰은 재심 첫 공판에서 변호인측이 공소기각을 부각시켰지만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재판을 진행해 공소사실을 특정 짓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공소사실 구성을 위해 국가기록원 등 10여개 기관의 관련 자료를 훑었다. 4.3평화재단을 통해 각종 서적과 논문, 사료도 수집하고 분석했다.
 
검찰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존(70년 전) 공소사실에 대한 유의미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며 “결과적으로 공소사실을 특정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토로했다.
 
검찰은 자체적으로 특정한 공소사실을 근거로 공소장 변경 신청에 나섰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이날 결심 공판에서 공소기각을 요청했다.
 
공소기각은 형사소송법 제327조(공소기각의 판결)에 따라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에 위반해 무효일 경우 유, 무죄 판결에 앞서 소송을 끝내는 절차다.
 
재판이 끝난 후 생존희생자측 변호인들은 “검찰의 공소사실 기각 요청은 당시 재판이 불법적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자 사실상 무죄를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4월19일 재심 신청이후 1년 8개월간 이어진 4.3재판은 모든 것이 최초였다. 재심 개시 결정이 이뤄지면서 법정에서의 진술과 절차를 모두 역사적 기록으로 남게 됐다. 
 
재판 기록의 없는 국내 법조계 초유의 재판이자 4.3의 아픔을 간직한 이번 재심 사건의 선고는 2019년 1월17일 오후 1시30분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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