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97) 돌고래는 원담에 든 새끼 생각하다가 죽는다

* 수웨기 : 바닷고기 이름. 남방돌고래
* 원담 : 바다에 돌담을 둘러싼 것. 조류에 의해 물이 싸 버리면 제 때에 빠져나가지 못해 갇힌 고기들을 잡는다.

새끼를 아끼고 지키는 마음은 바다에 사는 돌고래라고 예외가 아니다. 포획이 엄격히 금지돼 있지만, 남방돌고래는 예전부터 어부들이 탐내는 것인데, 낚시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게 거대하고 약삭빠른 녀석도 원담 안에 들어 있는 제 새끼를 지키려고 머뭇거리다가 사람에게 잡히고 말게 된다. 결국 새끼 생각을 하다 죽는다. 비극을 맞는 것이다.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것이 모성애다.

‘어멍은 배고팡 죽곡, 아인 배 터졍 죽나’도 같은 모성애를 담고 있는 말이다. 

흉년 들어 굶으면서 얼굴이 붓고 부황 들 정도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배고플라 먹을 무슨 나무열매 하나, 감저 하나만 보아도 어린 자식에게 우선 먹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배가 불러서 터질 정도가 되지만 그 어미는 굶어 죽는다 함이다.

‘부몬 거미 넋인다’도 한가지다.

거미란 놈은 알에서 수많은 새끼를 낳는다. 어미는 그 새끼들을 품고 꼼짝 않고 보살피다, 마침내 몸뚱이는 새끼들이 달라붙어 야금야금 갉아 먹고 만다. 어미 거미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이처럼 부모는 제 자식을 위해 죽자 사자 뒷바라지를 하다가 늘그막에는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함이 마치 거미의 넋과 흡사하지 않으냐는 얘기다. 가히 실감 나는 비유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졌다 하지만 삶의 이치란 크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근본에서, 본질에서 달라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암컷 생물이 자기 새끼를 아끼는 마음이 모성애다. 사람의 경우, 어미가 아들딸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 그것은 본능적인 기제다. 그러므로 제 자식을 지키는 마음은 대개의 경우, 초월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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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에 안긴 원숭이 새끼의 얼굴을 어미가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자동차 밑에 깔린 자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차를 들어 올린 한 여인(어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직후, 그 여인은 기절했으며 양 팔의 뼈가 탈골된 상태였다 한다. 이론적으로 인간의 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 힘은 어느 때나 발휘되지 않는다. 회복 후, 시험해 본 그녀의 힘은 자동차를 들기는커녕 흔들 수조차도 없는 아주 가녀린 몸이었다고 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가 시키는 것’이라 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유전자를 지키려 하는 유전자의 명령에서 일어나는 ‘힘’이라는 것이다.

유전자가 학습되는 것인지, 자연적‧생래적인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강하게 나타나는 것만은 확실하다.

‘동물의 왕국’이 제공한 장면이다.

아프리카 동물들이 건기에 강을 건너 이동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얼룩말들이 누들과 함께 큰 강을 건너고 있었다. 암컷 얼룩말과 아직 젖을 먹는 새끼들이 함께 나왔다. 강을 건너다 그만 헤어졌다. 그 어미 얼룩말, 강을 건너다 악어 세 마리에게 둘러싸여 거의 잡아먹힐 뻔했지만, 필사의 탈출을 강행해 피를 흘리면서도 간신히 살아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아무리 찾아도 새끼가 보이지 않는다. 새끼가 강을 건너며 하류로 100m가량 떠내려갔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는 어미는 악어가 있는 강으로 도로 뛰어들어 강변으로 가 두리번거리며 새끼를 찾는다. 참 감동적이었다.

사람이라도 자식을 찾기 위해 방금 전 포식자에게 습격당한 강을 다시 건너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 아닌가. 동물의 모성애는 제 목숨을 걸 만큼 처절하다.

흑두루미 또한 어느 동물 못지않다.

몸길이 1m 정도. 몸 전체가 짙은 회색. 자세히 보면 머리와 목은 흰색이고 눈 주위는 붉은 녀석이다.

그들은 가족 단위로 공동체를 유지한다. 새끼 두루미는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 어미의 첫 숨과 첫 눈 맞춤으로 가족공동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첫 해에 어미는 먹이 활동에서부터 장거리 비행에 이르기까지 새끼들이 갖춰야 할 세부지침을 세세히 전수한다. 생존수단의 학습이다.

그 지침은 바다, 산, 호수, 도시 등 지형지물의 위치부터 별자리까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이뤄진다 한다. 특히 후가‧시각 등으로 확보되는 비행 정보들을 지구 자력을 활용해 특별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포함한단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베푼다고 모성애가 아니다. 동물들이 이러 하니 작은 감동이 아니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어미가 자식이라고 무조건 ‘호야, 호야’ 해서는 안되는 것이 모성애일 것이다. 깔끔하고 냉정할 필요가 있다. 제 아이들에게 선악과 시비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 선행돼야 함은 말할 것이 없다. 과잉보호가 낳은 폐단이 한둘인가. 나쁜 행실을 그냥 두었다가 그게 화근이 되는 것을 우리는 많은 사건들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기 열거하기가 거북한 사람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이런저런 패륜의 짓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모성애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되, 무조건적인 사랑은 좋지 않다는 얘기다. 사랑스러운 아이일수록 혹독한 절도 속에 키워야 한다. 훈육(訓育)돼야 한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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