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영리병원 허용 파장] 4차례 발언 무색, 시민사회 강력 반발..."정치적 책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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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1호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를 발표하는 원희룡 제주지사
원희룡 제주지사가 '민의의 전당' 등에서 수차례 밝힌 영리병원 불허 약속을 결국 뒤집었다.

6.13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도민만 보겠다"고 한 발언이 결과적으로 정치적 수사이자 허언이 되고 말았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숙의형 공론조사를 받아들인 원 지사가 선거가 끝나자 공론화조사위원회의 권고까지 물리침으로써 공론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원 지사는 5일 오후 2시 도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조건부로 개설을 허가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진료대상을 '외국인 의료관광객'으로 한정하고,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4개로 제한한 점을 '조건'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는 녹지국제병원 사업자인 중국 녹지그룹이 보건복지부에 사업승인을 요청할 때 스스로 내건 사항이었다. 엄밀히 말해, 조건이 아닌 셈이다. 

투자개방형 외국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은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12월18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업계획을 승인받았다.

녹지국제병원은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2만8163㎡에 778억원을 들여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건립됐다. 또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 진료과목에 의사(9명)·간호사(28명)·약사(1명), 의료기사(4명), 사무직원(92명) 등 134명을 채용했다.

녹지측은 지난해 8월28일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녹지국제병원)의 개설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3개월의 심의 끝에 '찬반' 결정 없이 위원별 의견을 정리해 원 지사에게 제출했다. 한마디로 원 지사에게 공을 넘긴 것이다.

뜸을 들이던 원 지사는 6.13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지난 3월8일 숙의형 공론조사를 받아들이며, '뜨거운 감자'인 영리병원 허가 여부를 지방선거 이후로 넘겼다.

당시 원 지사는 "도민사회의 건강한 공론 형성과 숙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앞선 모범사례를 만들어 갈 것으로 기대한다"며 "수년간 지속된 소모적 논란을 끝내고 제주공동체의 공익을 위한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원 지사의 말마따나 영리병원은 10년 넘게 제주사회에서 논란이 돼온 지역 최대 현안 중 하나였다.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원 지사는 6월15일 <제주의소리>와 인터뷰에서 "공론화 대상 1호로 논의에 붙여진 만큼 충분한 논의 속에서 숙성된 의견이나 결론이 도출되면 도민의 명령으로 받들겠다”고 약속했다.

공론화조사위원회는 지난 10월4일 공론조사 결과 반대가 58.9%로 찬성(38.9%)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자 '녹지국제병원 개설 불허'를 원 지사에게 공식 권고했다.

원 지사도 '약속'을 지키는 듯 했다. 

그는 10월8일 "녹지국제병원 공론조사는 이해관계자와 관점이 상충되는 사안에 대해 최종 결정하기 전에 이뤄진 숙의형 민주주의로, 제주도민의 민주주의 역량을 진전시키는 의미를 갖고 있다"며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를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11월15일 제주도의회 시정연설에선 한발 더 나아가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원 지사는 "녹지국제병원 불허 권고를 겸허히 수용하되, 지역주민, 이해관계자, 도의회 그리고 정부와 합리적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11월19일 도의회 도정질문에선 더불어민주당 도의원의 영리병원 개설 허가 요구에 대해 "공론화 청구 조례에 따라 공론조사가 청구됐고, 그 결론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며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랬던 원 지사가 불과 보름만에 180도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에대해 원 지사는 이미 정부가 사업계획을 승인했고,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한 외국기업 투자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판단, 외부 투자에 대한 행정의 신뢰가 깨질 경우 향후 제주도의 투자 유치에 득보다 실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새삼스런게 아니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녹지병원측이 개설 허가를 신청할 당시부터 이런 우려가 제기됐다.  

원 지사는 7월2일 민선 7기 제주지사에 취임하면서 "도민이 도정의 주인, 도정의 목적도 도민, 도정의 힘도 도민"이라며 "어떠한 권력과 이념도, 정치적 목적이나 이해관계도 도민 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도민을 앞세워 무소속 지사의 한계를 돌파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취임 5개월 만에 도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상황이 연출됐다.   

영리병원 허가 결정에 이른바 보수언론들은 환영일색이다. '교감'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부 언론은 며칠 전부터 허가 결정을 예상하기도 했다. 브리핑 이후엔 원 지사가 '결단'을 내렸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원 지사가 이들 언론에 기대었다면, 도민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얘기가 된다.  

공론조사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원 지사는 "도민들께는 정말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비난은 달게 받겠고,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시민사회 일부에서 원 지사에 대한 퇴진운동까지 예고한 상황에서 원 지사가 앞으로 어떤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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