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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 출처=오마이뉴스.

[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61) 시인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가리킨다

K팝과 합류의 대명사가 된 BTS(방탄소년단)가 아시아, 유럽, 미국 등 세계 무대에 진출해 국위를 선양하고 한국의 대중문화를 열방에 알린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거둔 성공이고 대단히 고무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대중문화는 유행과 같은 것이어서 기세가 한풀 꺾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진정 세계로부터 문화국가라는 칭송과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고품격의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등 순수예술을 창작해 세계인들에게 선보여야 한다.

진선미의 총화인 예술을 통해 세계인들을 감동시킬 때 우리는 문화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했다.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강한 나라보다 문화력이 높은 나라가 백범의 소원이었다. 

그런데 백범은 문화대국이 곧 부국이란 걸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명제 속에는 문화가 경제의 토대라는 함의가 내포돼 있다. 

예술은 빵을 만들 수 없다. 그러나 괴테의 말처럼 ‘예술은 빵을 만드는 사람을 만든다.’ 그래서 예술이 중요한 것이다. 시인은 사막의 오아시스가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저기에 오아시스가 있다!’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 그래서 이 황무지처럼 메마른 세상에 시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이 잘 사는 길이요, 가치 있게 사는 길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문화는 선별과 여과의 오랜 과정이요, 발효와 숙성의 긴 과정이어서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문화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은 더욱 그렇다.

이웃나라 일본이 노벨상 수상 작가를 여럿 배출하고 일본 문화가 서양에서 인정받은 건 메이지 유신(1867년) 이후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문화예술에 꾸준히 투자해 왔기 때문이다. (번역이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것도 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창의성이 뛰어난 한민족도 얼마든지 지구촌의 예술을 주도할 날이 오리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예술 교육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한국인의 예술관을 바꿔야 한다. 나는 이 나라에서 체육과 대중문화에 바치는 관심과 애정을 절반만 예술에 쏟아도 예술 진흥은 저절로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

체육과 대중문화를 경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키워나가 돼 예술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돼지 목에 진주, 개 발에 편자’라는 속언이 있다. 아무리 부자라도 예술에 무지하다면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게 서구 사회의 통념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예술은 무슨 사치품이나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프랑스의 카페에서, 영국의 펍에서, 독일의 호프집에서 거의 매일 문학 작품의 낭송과 낭독이 행해진다. ‘문화예술의 일상화’가 선진 사회의 참 모습일 것이다. (그들의 맑은 영혼과 정신세계가 나는 부럽다.)

몇 년 전, 한국의 시인들이 단체로 해외여행을 갔는데 호텔 옥상의 만국기가 내려지고 수 십 개의 태극기가 게양됐다. 어떤 시인이 한국의 대통령이나 귀빈이 이 호텔을 방문하느냐고 묻자, 지배인 왈 “우리 호텔에 이렇게 많은 시인들이 투숙한 건 처음입니다. 호텔 창업 이래 최고의 영광입니다”라고 답했다. 예술가에 대한 오마주(존경)가 이 정도는 돼야 문화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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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일본의 아파트촌에서는 한때 ‘작가 모셔오기’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에는 작가 아무개가 살고 있어...’ 이런 자랑을 하기 위해서란다. 사양(斜陽)이란 소설로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무덤엔 일년 내내 꽃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작가를 사랑한 일본 독자들의 헌화 덕분이다.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자기의 인생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불명의 영혼을 고이 간직한다는 뜻이 아닐까???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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