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93) 보름은 눈 뜨고, 보름은 눈 어둡다

* 트곡 : (눈) 뜨고
* 어둑나 : (눈) 어둡다

희한한 말이다. 아니, 어떻게 된 게 한 달이면 보름은 눈 떴다가 나머지 보름은 눈이 어둡단 말인가. 보름은 잘 보이고 또 보름은 잘 안 보인다는 게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이치에 닿지 않는, 얼토당토않은 거짓부리다. 자신은 글을 밤에만 배워서 한낮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말과 진배없다. 자기가 무식하단 말을 해놓고 쑥스러워 임시변통으로 땜질하고 넘어가려는 궤변이 아닌가.

고전소설 <별주부전>에서 토 선생(토끼)이 별주부(자라)의 꾐에 빠져 그 등에 타고 용궁에 갔다가 용왕에게 생간을 내 놓아라 하자 그럴싸하게 둘러댄 말이 떠오른다. 

“제 간은, 한 달이면 보름은 고봉준령에 내걸어 좋은 볕에 말리고, 보름은 다시 몸에 들여놓곤 하는데, 때마침 지금이 꺼내 놓아 볕을 쬐는 기간이라, 시간을 주시면 바로 나가 제 간을 도로 넣고 오겠나이다.”

이렇게 위기를 모면한다. 토끼가 재기를 발휘해 스스로 목숨을 구했는데. 이는 말도 안되는 궤변이다. 소설이니까 가능했다.

글눈 어두운 것을 우회적으로 에둘러 말한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궤변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속으려 해서 속는가. 말하는 솜씨가 사람을 속아 넘어가게 하니 속는 것이지. 그 현대판 이 보이스패싱 아닌가. 사람을 혼란에 빠뜨려 판단을 흐려 놓는 술책은 속지 않으려 해도 속는다. 사람을 그렇게 흔들어 놓는 그것, 궤변!

얼른 들으면 옳은 것 같지만, 실은 이치에 닿지도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 합리화시키려는 말이 궤변이다. 한마디로 허위적 변론을 일컫는다. 상대방을 속여 참을 거짓으로, 거짓을 참으로 잘못 생각게 하거나 또는 거짓인 줄 알면서도 상대방이 쉽게 반론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교묘한 수단 방법을 동원한다.

궤변은 처음부터 어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닌, 딴 목적을 위해서 나온다는 게 특징이다. 쉽게 말해, ‘이기적 말장난’이다.

가만히 ‘궤변(詭辯)’이란 한자를 풀이해 보면 그럴싸하다.

‘詭’는 말을 나타내는 言(언)과 위험하다는 危(위)를 합한 글자다. 詭에는 ‘속이다. 기만하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뿐 아니라, ‘어그러지다, 헐뜯다’는 뜻도 있다. 속임수가 있는 말은 위태롭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무조건 믿어선 안된다.

‘辯’은 두 명의 죄수[辛,신]가 자신의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며 말[言]하는 모습을 담은 글자다. 말로 일의 옳고 그름을 따져서 가리는 것을 말한다. 변(辯)에는 ‘말 잘한다’ 또는 ‘바로 잡는다’는 뜻이 있다.

궤변,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따져 보면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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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은 눈 트곡, 보름은 눈 어둑나.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왼쪽)와 김용태 사무총장(오른쪽)은 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김상곤 전 교육부총리 자녀의 담임교사가 '성적부정' 숙명여고 쌍둥이 딸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곧 밝혀지자 김용태 사무총장은 이날 "SNS상의 의혹을 사실 관계 확인 없이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혔다.

출처=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원어인 ‘Sophistik’은 그리스 궤변파에서 나왔다. 궤변학파는 본래 ‘지혜로운 사람’이란 뜻. 오늘날의 궤변하고는 달랐다. 그러던 게 후세에 이르러 논리적 규범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둘러댄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동양에서는 명가(名家)의 학자 공손룡(公孫龍)의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이 그 좋은 예다.

예화 1.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수많은 학파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명가(名家)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당시 교묘한 궤변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를테면, 여러 가지 색깔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뒤, 흰색은 색이 아니라고 하자,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들(명가 사람들)이 말했다. 

“자, 여러분의 말대로 흰색은 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흰 말은 말이라 할 수 없습니다.”
비슷한 부류의 궤변이 이어진다.

예화 2.
“네가 만약 살 운명이라면, 약 같은 걸 쓰지 않아도 살 것이고, 반대로 죽을 운명이라면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 해도 결국엔 죽게 된다. 그런데 너는 살 운명에 있느냐 족을 운명에 있느냐의 그 어느 쪽에 있다. 그러므로 어차피 살려고 버둥거릴 필요가 없고 약을 쓸 필요도 없다.”

예화 3.
어떤 사람이 남의 소를 훔쳐 갔다. 관가에서 그를 잡아다가 왜 남의 소를 훔쳐갔느냐고 신문(訊問)했다.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제가 길을 가는데, 길에 웬 쓸 만한 노끈이 흘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끈을 주워 가지고 집으로 간 것뿐입니다. 소는 잘 모릅니다”고 했다 한다.

길에 떨어진 노끈은 주웠는데, 노끈에 소가 매어져 있는 것은 몰랐다. 그러니 소를 훔치려 한 것이 아니고, 소는 못 본 것뿐이니 죄가 아니라 주장한 것이다.

예화 4.
참가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면, 참가하지 않는 세력이 참가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며, 무슨 일이든 경험이라 할 수 있다면, 경험하지 않는 경험에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누구나가 경험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역으로 귀중하다 할 수 있다.
그나마 옛날의 궤변론자들은 논리에 바탕을 둔 궤변을 펼쳤다. 그래서 궤변이 삶을 돌아보는 지혜를 일깨워 주기도 했는가 하면, 궤변의 논리적 모순을 깨뜨리기 위해 논리학이 발달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의 궤변은 논리가 없다. 교통사고를 저지른 노상의 당사자들처럼 큰 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펴며 시종 우기기만 한다. 그럴싸하게 꾸며서 멀쩡한 사람들을 나쁜 길로 이끈다.
 
‘보름은 눈 트곡, 보름은 눈 어둡나.’ 

보기에 따라선 소박한 거짓으로 들린다. 못 배우던 시절의 철없는 아이의 말장난쯤으로 봐 줄 만도하지 않은가. 문제는 남을 넘겨짚어 가며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저의에서 둘러대는 궤변이다. 순직한 사람은 올곧은 말을 하며 산다. 그런 신실한 사람이 얻는 고귀한 자산이 있다. 신뢰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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