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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주관으로 열린 4.3 7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제주의소리
4.3 희생자 개개인에 대한 고유성을 되살리는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됐다. 행정체계를 바탕으로 이름이 나열된 현 시스템으로는 희생자의 개별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대안연구공동체가 공동으로 주관한 4.3 7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가 15일 오후 1시 제주칼호텔 2층 연회장에서 개최됐다.

'제주4.3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날 토론회에는 김민환 한신대학교 교수는 '피해자의 고유성과 기억주체의 개별성 및 집단성'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김 교수는 "제주4·3사건에서 피해자의 이름 하나하나를 되찾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8년경부터였다. 제주4.3연구소가 1989년에 펴낸 '이제사 말햄수다', '4.3은 말한다' 같은 책을 비롯해 70주년을 맞은 노늘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금도 그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제주도의회 출범 이후 자체적으로 이 '이름'들은 조금씩 공식화되기 시작했고, 1998년 '4.3특별법'의 통과와 2005년 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소가 증축·완공 이후 국가의 공인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런데, 고유성을 되찾은 이들의 이름을 한자리에 모아 놓으면 수가 너무 많아 다시 그 수에 압도되어 버리는 역설이 발생했다. 1만5천명 이상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 제주4.3평화공원의 위패봉안소에 희생자의 이름은 개별적으로 올라있지만, 그 위패들 속에서 개인의 고유성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름이 너무 많아 오히려 그 이름의 고유성이 훼손되는, 대량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비극이 제주4.3에도 그대로 적용됐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4.3평화공원 곳곳에는 여러 범주 피해자들의 이름이 개별적으로 각명된 곳이 존재한다. 위패봉안소의 위패처럼 이 이름들은 피해자의 고유성을 드러내기 위해 도입된 것들임에도 피해자들의 고유성을 인지하는데 어려움을 준다"며 "그들의 고유성을 드러내려면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특성을 함께 드러내야만 하지만, 제주4.3평화공원 내의 개별 이름들은 이러한 관계를 떠올릴 수 없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이름들은 국가의 행정체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주소체계에 따라 분류돼 존재하고 있어 최소한의 관계는 전제돼 있다. 위패의 배치나 각명이 제주도내의 본적에 의해 이뤄진 것은 그 나름대로 제주의 지역성을 염두에 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지역성은 공동체와 이어지지 않는다"고 봤다.

가나다 순으로 각명할 경우, 부부임데도 불구하고 가까이 각명되지 못하고 멀리 떨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가 피해자로서 위패봉안소에 봉안돼 있는 경우도 각각의 성(姓)이 다를 확률이 매우 높아 한 가족이지만 그것을 알 수 있는 표시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웃나라인 일본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의 경우만 하더라도 희생자들의 이름은 가족 혹은 친족들과 함께 있어 가족 혹은 친족공동체 전체가 입은 피해를 각명비 자체에서 상상할 수 있게끔 배치돼 있다.

김 교수는 "피해자들의 관계와 관련해서는 궁극적으로 그들 죽음의 ‘집합성’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한다. 이것은 그들 죽음의 역사적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과 관련이 있다"며 "희생자들이 죽음으로서 맺은 관계는 그 자체로 고유하다. 그것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를 기억하는 핵심적인 지점을 놓치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으로 4.3의 정명 작업 역시 진행돼야 함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집합적 고유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개인의 고유성에 도달할 수 있다"며 "이들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한 번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백비'는 여전히 비어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는 과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 과정의 반복이 없다면, 즉 단 하나의 '집합적 고유성'이 오랜 기간 지배하게 된다면 죽은 자 하나하나의 고유성은 잊혀질지도 모른다. 개별적 고유성을 자원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집합적 고유성을 구성해내는 이 과정이야말로 어쩌면 희생자를 개별적으로 기억하는 일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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