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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고산초등학교 전 교직원이 14일 법정사 터를 찾아 법정사 항일운동을 배우는 현장 연수를 가졌다. ⓒ제주의소리

제주 고산초, '법정사 항일운동' 현장 연수 "종교운동? 제주서 가장 앞선 최대 항일운동"

3.1운동, 제주 조천만세운동 보다 먼저 항일 기치를 내세웠지만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법정사 항일운동.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법정사 항일운동의 뜻을 기억하고자 전 교직원이 역사의 흔적을 직접 찾아간 초등학교가 있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초등학교(교장 이금남) 전 교직원 10명은 14일 오후 ‘우리고장 역사알기 교사 연수’로 법정사지(址) 현장을 방문했다.

앞서 고산초는 독서 주간을 맞아 법정사 항일운동을 다룬 창작 동화 <법정사 동이>를 전교생이 읽고, 작가 초청 강연과 원화 전시를 갖는 등 법정사 역사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중문 출신으로 평소 법정사 항일운동에 관심을 가진 이금남 고산초 교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이날 교사 연수에는 한금순 제주대 외래교수가 동행했다. 한 교수는《한국 근대 제주불교사》(2013)를 집필하고 법정사 터를 발견하는 등 제주불교 역사를 연구·정리해온 학자다. 고산초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합해도 학생 수가 90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지만, 교장부터 막내 교사까지 전 직원이 참여해 역사 배우기에 나섰다는 건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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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사 터 가는 길. ⓒ제주의소리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8년 10월 7일 도순리를 중심으로 서귀포 주민 700여명과 법정사 주지 김연일 등 승려들이 ‘국권회복, 일본인 축출’을 주장하며 일으킨 항쟁이다. 3.1운동(1919년)보다 앞설 뿐만 아니라 당시 제주 지역 전체를 따져 봐도 일제에 맞선 가장 큰 항쟁이었다. 

법정사 승려들은 1914년부터 일본의 국권 침탈의 부당함을 신도들에게 설명했고, 거사 6개월여 전부터는 흡사 군대 같은 조직을 꾸렸다. 거사 당일 선봉대장 강창규의 지휘 아래 항일운동 참가자들은 전선과 전주를 절단했고 지나가던 일본인 일행을 몽둥이와 돌멩이로 습격했으며, 중문리 경찰관 주재소를 불태웠다. 

그러나 총으로 무장한 서귀포 경찰관 주재소 기마 순사대에 의해 진압되고, 일제는 66명을 검거해 46명에게 형을 선고했다. 김연일 주지는 징역 10년형을 받았고, 운동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옥사하거나 장애를 입은 경우도 있었다. 법정사도 일제에 의해 불타버리면서 같은 운명을 맞았다.

이날 연수는 법정사 터, 위령비, 항일운동 수형인 66명 그림이 모셔진 의열사 방문 순으로 진행됐다. 한 교수는 법정사 터를 발견할 당시, 워낙 수풀이 우거져 있어 몇 번을 지나쳐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법정사가 남아있을 당시만 해도, 스님들이 보초처럼 돌아가면서 절을 지켰고 제주시로 볼 일이 있을 때면 험한 산길을 헤치고 다녔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법정사 터는 '무오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라는 명칭으로 2003년 11월 12일 제주도 지정문화재 기념물(제61-1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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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사 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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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가지고 녹슨 솥이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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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지한 표정으로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해 설명을 듣고있는 고산초 교직원들. 맨 오른쪽이 이금남 교장. ⓒ제주의소리

서귀포시가 세운 위령비와 의열사에서는 안타까운 항일운동의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1918년 10월 7일 당시에 700여명이 운동에 참여했지만, 신원이 확인된 인원은 재판 기록에 적힌 66명 뿐이다. 그 마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경우는 66명 가운데 30% 정도에 불과해, 남은 인원에 대한 명예 회복과 후손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 교수는 “대한독립을 바라는 마음은 어디라도 하나였겠지만 조천만세운동과 비교할 때, 법정사 항일운동은 희생, 준비 과정 모두 더 큰 규모였다”며 “역사적인 사실을 따져봐도 법정사 항일운동은 제주도 차원에서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또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종교’ 중심으로 바라보는 경우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종교 운동이 아닌 도민들의 피땀이 더해진 엄연한 항일 운동이다. 법정사 항일운동의 최우선 목표는 국권회복이었다”면서 “일제도 법정사 항일운동의 규모를 축소했는데, 목적을 유사종교의 혹세무민 행위로 왜곡했다”고 투쟁의 의미를 짚었다. 

한 교수는 “법정사 항일운동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항일운동 참가자들의 대다수 후손이 너무나 힘들게 생활했다. 늦게나마 문재인 정부가 독립운동가 후손에 대한 처우 개선을 약속한 것이 다행”이라며 “제주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제주인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법정사 항일운동이다. 오늘 날 우리가 법정사 항일운동을 기억하며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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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금순 교수가 법정사 항일운동의 의미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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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사 위령비 인근에 설치된 법정사 항일운동 안내 비석. ⓒ제주의소리

이금남 교장은 “교사들이 역사의식을 갖춰야 자라나는 세대도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다. 앞으로도 법정사 항일운동 같이 의미 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 역사를 기억하겠다”고 현장학습의 취지를 설명했다.

다른 지역 출신으로 제주에서 근무 중인 오정화 고산초 교사는 “제주에 와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연 경관, 사람 정도인데, 이번 현장학습을 계기로 지금껏 몰랐던 제주 역사를 알게 돼 제주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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