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92) 힘 자랑하다가 힘에 눌려서 죽는다

* 심 : 힘. 표준어에서 ‘심’으로 되기도 함 (입심, 뒷심)
* 자랑허당 : 자랑하다(가)
* 눌령 : 눌려서

제 아무리 장사라 해도 사람의 힘엔 한계가 있다. 항우의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도 진즉 기백을 나타낸 것이지 실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진을 멸망시킨 뒤, 서초 패왕이라 칭했으나 종국엔 한의 유방에게 패하자 자살했다.
  
한데도 그 힘을 과신한 나머지 나를 당할 자가 없다고 자만에 빠졌다가 큰 낭패를 부르는 수가 있다. 그러니 나만이 제일인 것처럼 완력을 행사하다가는 언제 그 힘에 의해 잘못되거나 최악의 경우 죽임을 당할 수 있은즉, 자중 자애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함이다. 

자만에 의한 자업자득을 경계할 때 쓰는 말이다.

유사한 속담이 있다.
 
‘버들장신 버들 물엉 죽나’ 
(버들 장수는 버들 물어 죽는다)

버드나무는 질이 아주 부드러워서 농촌에서 쳇바퀴와 키, 버들고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만들어 생계를 꾸리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업을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몸담은 생업에 한평생 파묻혀 삶을 살다 생을 마치는 일과 같다.

또 하나는 좀 으스스한 것.

‘칼쟁이 칼 맞앙 죽곡, 활쟁이 활 맞앙 죽나’ 
(칼장이 칼 맞아 죽고, 활장이 활 맞아 죽는다)

칼장이와 활장이는 칼잡이요 사수(射手)로 둘 다 무기를 휘두르는 무사(武士)다. 그런 자들은 그런 무기 사용에 능수능란해 결국 다루던 무기에 의해 죽게 된다는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기는 결국 살생에 쓰이므로, 결투장에서 희생당하게 돼 있지 않은가. 자업자득의 불가피성을 되새기게 한다.

이 속담을 뇌다 보니 굵직한 사건 둘이 떠오른다. 연상 작용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역도산(力道山)이란 인물.

그의 본명은 김신락이다. 1939년 도일(渡日)해 역도산이란 별명으로 씨름판에 뛰어들었다가 나중에 프로레슬러로 전향했다. 강인한 체력과 태권도를 특기로 1957년 세계 선수권자 루테스를 물리쳐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된다. 최고 역사(力士)가 된 것이다.

이후, 무려 19회에 걸쳐 선수권을 방어하면서 세계 프로레슬링 계를 제패한다. 덩달아 일본 굴지의 부호가 되면서 여러 개의 체육관과 흥행장을 설립했다. 1963년 봄, 귀국해서 서울에 스포츠센터를 건립한다고 약속했으나, 그 해 12월, 동경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일본 청년이 휘두른 칼에 찔려 불의의 최후를 맞이했다. 사인은 복막염이었다.
  
힘과 기(技)로 세상을 뒤흔들던 천하의 역도산도 결국에 ‘칼’이라는 흉기, 무력에 의해 쓰러지고 말았다. 

‘힘 자랑허당 힘에 눌려 죽나’, 마치 몇 년 전에 이미 예언이라도 해 놓은 것처럼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애석한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1979년 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와 그의 경호실장 차지철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

김재규는 민주화에 대한 희망과 꿈이 있었다고 알려졌으며, 박정희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총살 계획은 무려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궁정동 안가에서 만찬을 즐기던 대통령과 차지철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노래 반주에 맞춰 김재규가 총으로 차지철의 손을 맞췄으며, 다음엔 대통령의 가슴을 겨냥해 쐈다.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졌으며,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하는 계기다 됐음은 익히 다 아는 사실이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살해한 혐의로 군법회의에서 ‘내란 목적 살인’이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 심 자랑허당 심에 눌령 죽나

제 나이 한 10년이나 20년 끊어 바치더라도 좋으니까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놓자, 나는 대통령의 참모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고급관리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 충성하고 이 국민에게 충성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 결국 나의 명예고 지위고 목숨이고 또 대통령 각하와의 의리도, 이런 소의에 속한 것은 한꺼번에 다 끊어 바친다, 대의를 위해서 내 목숨 하나 버린다, 그래서 원천을 때려 버렸다.

김재규가 법정에서 남긴 최후 진술 가운데 일부분이다. 사진은 김성태 씨의 저서 '의사 김재규'(2012). 출처=교보문고 ⓒ제주의소리
[편집자 주]

박정희 대통령은 사건 직후,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이송 중 세상을 떠났다. 부하가 쏜 총에 맞아 죽은 그의 나이는 만 62세였다.

‘심 자랑허당 심에 눌령 쭉나.’ 

맞는 말인가. 역도산도 박정희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었다. 역도산은 자신이 쓰던 힘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도 자신이 쓰던 총에 의해 쓰러졌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시애사건을 보면서 가슴 쓸어내렸거니, 총을 쏜 자나 총에 맞은 자 둘 다 군인이었다. 간담이 서늘했지 않나.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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