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일부터 3일까지 스페인 북부 도시 빌바오에서 국제사회적경제포럼(Global Social Economy Forum)이 열렸다. 전세계 84개 나라에서 지방자치단체장, 국제기구 대표, 사회적경제 활동가 등 약 1700여명이 참여한 자리다. 사회적경제 주체 간, 지방정부간 협력을 도모하는 회의이긴 하지만 빌바오라는 도시가 가지는 도시재생사업의 상징성을 간과할 수 없다. 빌바오는 세계 최대 노동자협동조합인 몬드라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사회적경제인들에게는 희망과 동경의 도시이다. 쇠락했던 철강업 도시가 도시재생으로 다시 살아난 희망의 도시 ‘빌바오’에서 느끼는 도시재생사업의 방향과 제주가 가야할 길에 대해 세 차례 기고문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 필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도시계획과 거버넌스-빌바오가 문화중심도시가 된 치밀한 전략
②도시와 사람과 공간-빌바오 도시재생이 바꿔 놓은 도시의 모습들
③도시재생과 지역경제-빌바오에 스며든 사회적 경제, 혹은 혁신의 길 

[기고-빌바오에서 제주를 묻다] 빌바오, 도시재생이 바꿔놓은 도시의 모습

빌바오를 다녀온 개인의 기억을 언급하는 일은 자칫 여행의 기억을 되새기는 수준 이상이 아닐 수 있어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한 주제에 대한 감흥을 추억의 이름 속으로 접어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빌바오의 재생사업을 언급하며 계속 머리 속에 남는 질문이 있다. 자동차, 자전거, 사람 중 어느 것이 우선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사람이 우선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매한 질문이고 당연한 답변일 게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제주도는 과연 그럴까. 

빌바오의 도시재생을 언급할 때 구겐하임이라는 랜드 마크는 물론 도시 전체의 재생전략이 더 크고 중요함을 언급했었다. 그 전략 속에서 빌바오는 앞의 질문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네르비온 강가에 숙소를 잡고 길을 나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일은 강변도로이자 주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왕복2차선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수변공간이 매우 넓고 쾌적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지만 도로구조가 우리와 달리 짜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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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벤션홀 주변의 한적한 길. 도로에 비해 매우 넓은 보도가 깔려있다. 사진=이재근  ⓒ제주의소리
빌바오시 시내 중심가의 도로.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대부분 없고 넓은 인도를 유지하고 있다.jpg
▲ 빌바오시 시내 중심가의 도로.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대부분 없고 넓은 인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이재근 ⓒ제주의소리

우선 왕복2차선의 자동차 도로, 그 옆에 다시 왕복2차선의 자전거 도로가 차도와 구분된다. 자전거도로의 왕복2차선 폭은 자동차도로의 편도1차선과 거의 동일하다. 다음은 인도였다. 웬걸, 보도의 넓이가 자동차도로와 자전거도로를 합친 넓이보다 넓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왕래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수변공간을 재정비하면서 사람 중심으로 만들고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들었음을 짐작케 했다. 

점점 도시를 찬찬히 쳐다보게 만든다. 어디를 가든 인도와 차도의 넓이를 비교한다. 분명 차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지만 차도는 언제나 인도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느낌이다. 이전의 빌바오 역시 산업지역으로 가득한 도시였고 사람의 접근이 어려웠다는 것이 기록 곳곳에서 나타난다. 네르비온 강 역시 조선산업으로 배들의 왕래가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다리 건설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하니 도시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짐작할 일이다. 분명한 것은 사람 중심은 아니었단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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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행자중심으로 만든 네르비온 강의 수변공간. 사진=이재근 ⓒ제주의소리

빌바오시를 관통하는 네르비온 강의 하구지역에 포르투갈레트(portugalete)시가 있다. 이 지역의 비스카야 다리(biscay bridge)는 명물로 손꼽힌다. 강의 양안에 마치 조선소의 크레인처럼  아주 높은 철탑이 세워져 있고 이곳을 건너기 위해 철탑에 곤돌라를 매달아 배 아닌 운반선이 양쪽을 왕래한다.  5~6대의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와 사람을 싣고 끊임없이 왕복운행 한다. 1893년에 세워진 이 다리는 높이 61m에 폭160m 철골조로 생긴 다리로 당시 조선소로 인해 배가 항상 지나야 하는 상황에서  배들이 방해받지 않고 강을 연결하기위한 고육지책으로 만든 셈이다. 에펠탑 설계자의 제자가 이 다리의 엔지니어라고 하니 ‘그 선생에 그 제자’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암튼 이 다리는 바스크 주의 유일한 세계유산이기도 하고 스페인에서 인정받은 첫 번째 유네스코 산업유산이 되었다. 지금은 지역의 명물이 되었지만 사람보다 산업중심의 사고가 팽배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빌바오시를 가로기르는 네르비온 강 하구에 설치된 비스카야다리. 배들의 운행에 지장이 없도록 철골조를 높이 세워 곤돌라를 운행하고 있다.jpg
▲ 빌바오시를 가로기르는 네르비온 강 하구에 설치된 비스카야다리. 배들의 운행에 지장이 없도록 철골조를 높이 세워 곤돌라를 운행하고 있다. 사진=이재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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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돌라에 매달려 강을 건너고 있는 케리어의 모습. 사진=이재근 ⓒ제주의소리

빌바오시는 도시재생을 추진하면서 산업중심의 도시를 사람중심으로 일신했다. 재생지역 내 시설과 시설 사이에는 공원을 배치하고 공원주변의 주요 도로는 보행로로 계획했다. 이를 반복적으로 도심을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그제야 중심거리를 지날 때 매번 새롭게 공원이 나타나는 도시구조를 이해할 만하게 됐다. 공원을 잇는 길이 인도인 구조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사람중심으로 도시를 만든 빌바오시가 관심을 가진 요소 중 하나가 도시의 공공 디자인이다. 빌바오는 대표건축물인 구겐하임 미술관 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 퍼져있는 공공건축물의 디자인에 집중했다. 도시 전체가 아름다울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는 것은 현대의 도시가 추구해야할 덕목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공공디자이너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빌바오 지하철은 유럽 건축대상을 수상했다. 이 지하철은 철강이 많이 나는 빌바오의 특성을 살려 간결하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도시에 맞는 정체성을 살렸다는 평가다. 빌바오 위생성 건물도 빼놓을 수 없는 공공디자인 내용물이다. 빌바오의 위생성 건물은 언뜻 종이접기를 연상시킨다. 종이접기식의 입면은 시각적 효과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성도 추구하고 있단다. 도로로부터의 소음을 차단하고 열의 차단 효과를 가져온다는 설명이다.

빌바오시 위생성 건물. 종이접기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유명하다.jpg
▲ 빌바오시 위생성 건물. 종이접기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유명하다. 사진=이재근 ⓒ제주의소리

1909년 와인거래소로 개장했다가 다목적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뀐 아주쿠나 젠트로아(Azkuna Zentroa) 역시 주목받는 공공디자인의 모습을 띤다. 외관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내부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채우고 있다. 프랑스 건축가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에 의해 여가와 문화의 장소로 탈바꿈했으며 2001년 문화, 레저 및 스포츠센터로 문을 열고 현대적인 건물로 바뀌었다. 가운데 공간인 아트리움은 마치 공공 광장처럼 레저공간으로 사용된다.  내부 건물 아래에 세워진 43개의 기둥은 대리석, 청동, 테라코타, 나무 등 모두 다르게 구성됐으며 인류의 문화사를 여행할 수 있는 있도록 제안하고 있다.     

각 장소에는 라이브러리, 미디어라이브러리, 신기술 영역, 어린이 관련공간, 독서실 등으로 구성돼있다. 또 멀티플렉스 영화관, 강당, 전시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레스토랑, 카페테리아, 헬스클럽, 밑바닥이 보이는 수영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쿠나 젠트로아(Azkuna Zentroa)는 오래된 건물을 재생사업을 통해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공의 용도로 활용하는 예를 보여주며 오랜 시간동안 논란을 거쳐 용도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용도를 문화와 아트뿐 아니라 피트니스센터 영화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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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거래소에서 복합커뮤니티시설로 변신한 Azkuna Zentroa 건물 외관. 사진=이재근  ⓒ제주의소리
Azkuna Zentroa내부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43개의 기둥. 모양이 전부 다르다.jpg
▲ Azkuna Zentroa내부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43개의 기둥. 모양이 전부 다르다. 사진=이재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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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zkuna Zentroa내부의 건물과 아트리움. 사진=이재근 ⓒ제주의소리

빌바오는 도시재생을 추진하고자 하는 도시에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도시의 기능을 바꾸는 요소 중 중심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비단 빌바오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오랜 건물을 현대적으로 활용하거나 멋진 공공디자인적인 요소를 가미한 도시의 전략과 재생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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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의 예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빌바오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산업화된 도시를  도시재생을 통해  사람중심의 도시로 변화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빌바오가 진행 중인 도시재생의 길을 찾으러 이 도시를 찾고 문화라는 이름으로 사람중심의 사회로 자리 잡은 도시를 접하기 위해 바스크의 한 도시를 찾는다. 빌바오의 도시변화는 구겐하임과 함께 여전히 사람들을 유인한다. / 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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