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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6일 오후 제주시 아스타호텔 연회장에서 '제주4.3,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4.3유족회, '4.3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 심포지엄..."국제사회 연대 필요" 한 목소리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의 대학살을 사실상 진두지휘 한 미군정이 4.3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모아졌다.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미군의 책임을 묻는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6일 오후 2시 제주시 아스타호텔 3층 연회장에서 '제주4.3,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기조강연에는 20세기 '냉전체제와 미국'을 주제로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가 나섰다.

김종민 전 제주4.3위원회 전문위원을 좌장으로,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제주4.3과 미국-학살의 책임을 기억하기',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은 '피해자 중심의 진실규명 및 인권·평화 증진운동의 과정과 의미'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백가윤 제주다크투어 공동대표, 양성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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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제주의소리
◇ "특수집단 이해관계에 의해 조종 당해...끔찍한 비극 초래"

강우일 주교는 20세기에 접어들며 전쟁과 침략을 일삼아 온 미국의 역사를 되짚었다. 강 주교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형성된 과정은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 땅을 차지하는 방법으로 구축됐다. 북미대륙을 동쪽에서 서쪽까지 장악한 미국은 20세기 들어와서 국가의 경계선을 해외로 확장하기 위해 1900년 하와이를 합병하고, 쿠바와 필리핀까지도 영토를 확장하려고 타 국과의 전쟁을 불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05년 루즈벨트 대통령 당시에는 미국 육군 장관 태프트를 일본 도쿄에 파견해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일본이 인정하고,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제국의 지배권을 미국이 양해하는 상호 승인 내용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기도 했다. 미국은 이때부터 이미 동아시아에 미국의 문패를 달려고 하는 저의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그들은 점령군으로 제주에 왔다. 4.3의 비극은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일어났다. 미 군정은 제주북초등학교 인근에서 수 많은 제주도민이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독립을 이루자고 나서니까 소련 공산당이 배후에 있다고 판단해 공산진영의 영향력을 차단한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있었다"며 "제주도민은 일본의 적인 미국이 일본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국은 패권을 지키기 위해 제주땅에서 새로운 공산진영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오늘날까지 미국이 우리나라에 원조도 하고 좋은 일도 했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엄청나게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인 세력에 의해, 어느 특수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국가 전체가 조종되고 왜곡되고 잘못된 길로 인도되고, 그로 인해 끔찍한 비극을 초래했다"고 했다.

강 주교는 "4.3과 관련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서명운동을 통해 시작됐다"며 "이 작업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4.3은 국가가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 또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미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미국에 책임을 묻는 작업은 제주도민에겐 꼭 이뤄야 할 숙명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좀 더 오랜 기간을 두고라도 언젠가는 해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주교는 "우리가 좀 더 성급한 마음보다는, 하루 빨리 달성해 미국에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는 일에 조급하기 보다는, 좀 더 긴 눈으로 봐야 한다"며 "미국이 우선은 4.3에 대한 진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 4.3을 알리는 일을 겸해서 미국 정치·문화계에 많은 설득과 인내로 공동작업을 선행해야 제대로 된 사과가 나올거라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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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제주의소리
◇ "4.3 진두지휘한 미군정, 토벌대 민간인 학살 방조"

양정심 실장은 4.3의 발발과 미군정의 대응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설명했다.

양 실장은 "1948년 제주에서 일어난 봉기세력이 내세운 기치 중 하나는 5월 10일 단독선거를 저지하고 통일독립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5월 10일의 국회의원 선거는 남한만의 단독선거이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반대투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군정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고 전제했다. 미국의 이익에 충실한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고자 하는 목적을 성공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는 것이다.

양 실장은 "5.10단선 저지투쟁을 목표로 내세운 4.3이 일어나자 미군정은 제주도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경찰과 경비대 병력을 준비했다. 미군정은 4월 5일 '제주도 비상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주민들에게 통행증제를 실시해 통행을 제한하는 등 즉각적인 대응에 들어갔다"며 "4월 초중순 무장대의 공세에 이어 4월말에 이르러 경찰과 미군정의 강력한 토벌전이 전개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미군정은 미국이 의도하는 대로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성공리에 끝내기 위해 4.3을 철저히 진합하고자 했지만 항쟁을 진압하는 데에 직접적인 개입을 드러내는 것을 피했다. 국제적인 주목 속에서 미국이 선거 장애물 때문에 당황하는 모습은 감춰져야 했기 때문"이라며 "미군정은 현장에 나서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면서 모든 작전계획을 세우고 진압은 경비대와 경찰을 통해 시행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주한미군사령부 작전참모부 소속 슈(Schewe) 중령이 작성해 작전참모 타이센(Tychsen) 대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는 1948년 4월 27일과 28일의 작전 결과 보고와 29일부터 5월 1일까지의 작전 계획이 담겨있다. 보고서에서 미군정은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횡포와 유격대의 조직, 공격 수위 등 당시의 제주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민정장관이었던 안재홍의 글에도 제주에 대한 미군정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드러난다. 해당 문서에서 안재홍은 "나는 미군정 장관인 딘을 따라 비행기편으로 제주도에 갔던 일이 있다. 그것은 4.3봉기 이래 날로 높아가는 제주도 인민항쟁을 진압하기 위해서였다...(중략) 당시 미 군사고문단장인 로버츠는 '미국은 제주도가 필요하지 제주도민은 필요치 않다. 제주도민을 다 죽이더라도 제주도는 확보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기록했다.

최고 지휘권을 부여받아 1948년 5월 제주를 방문해 6월말까지 제주도 사태를 조사한 브라운 대령의 보고서 역시 같은 맥락을 보이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제주도 주민들을 심문한 결과 남로당 조직에 관한 정보, 제주도민들의 남로당과의 연관성 여부, 남로당을 통한 공산당의 활동이 제주도에서 5.10선거 이전에 성공했던 요인, 제주도에 폭동의 재조직을 방지하기 위해 추천된 조치들' 등의 사안을 담고 있다. 

이 같은 기록들을 토대로 양 실장은 "제주에 대한 진압 작전의 지휘권은 미군에게 있었으며, 미군은 실제 강경 진압 작전을 벌였다. 제주 초토화 작전이 전개될 당시 제주에는 임시고문단원과 미군정 중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며 "미군정은 각종 보고서나 정보원, 현장 목격을 통해 제주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군경토벌대가 무차별로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양 실장은 "미군정은 이후에 벌어진 군경토벌대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을 방조했고, 토벌대의 과도한 잔혹성을 보고하면서도 이를 막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겉으로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한국인들의 야만적인 진압행위를 비판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도리어 이를 방조하거나 부추겼다"고 미국의 책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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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6일 오후 제주시 아스타호텔 연회장에서 '제주4.3,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 "미국 언론-시민사회와 네트워크 구축 필요...정부 차원 요구 이뤄져야"

토론자로 나선 백가윤 대표는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 문제를 국제사회에 제기하기 위한 제언을 건넸다.

백 대표는 "제주4.3은 7년7개월의 긴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인 만큼 사건의 복잡성과 복합성 때문에 한국 사람들에게도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한국 및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외국인들에게는 제주4.3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향후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설명하는 추가적인 자료가 영문으로 준비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제주4.3에 대한 미국 책임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언론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제주4.3과 관련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줄 미국 쪽 언론인과의 네트워크를 만들 필요가 있고, 파트너로 활용할 수 있는 미국 쪽 인권시민사회단체 및 한인 단체들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백 대표는 "전 세계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전환기적 정의를 위한 국제센터' 등과 같은 시민단체와 협력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도 향후 현지 로비 활동에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UN)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어필도 강조했다. 백 대표는 "제주4.3 문제를 유엔에 제기하기 위해서는 유엔 과거사 특별보고관에게 4.3관련 청원을 제출하거나 특별보고관의 방문을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유엔 과거사 특별보고관을 한국에 비공식 초청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이 초청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제주 4.3에 대한 미국 책임 문제도 적극적으로 유엔에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성주 사무처장도 "민간차원의 독자적인 활동 만으로는 미국 등 국제활동에 대한 한계가 분명한 만큼 정부, 국회, 제주도, 도의회 등과의 협력을 통한 새로운 활동 방식 전환이 필요하며, 대한민국 정부에서 미국 정부에 진상규명 및 사과를 요구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양 사무처장은 "특히 미국 현지 한인, NGO 그룹, 한국학 연구자들과의 네트워크 등을 통한 규모 있는 국제활동이 필요하다"며 "학술 활동과 관련해서도 당초 4.3 관련 국제적인 연구자 등과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며 현지 외국 언론과의 소통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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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6일 오후 제주시 아스타호텔 연회장에서 '제주4.3,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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