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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은 간광 검은지름 봥 잡나

김길웅 kimku918@naver.com 2018년 11월 03일 토요일 13:50   0면
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91) 말은 간과 막창자 보고서 잡는다

* 간광 : 간(肝)과, 간하고
* 검은지름 : 막창자
* 봥 : 보고서, 보아

말고기는 일반적으로 꺼리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많이 먹는 편이다. 식용(食用)으로 쇠고기 못지않게 좋다. 여러 부위 중에서도 특히 간과 막창자가 가장 맛이 있다는 관념이 있다. 생간은 아삭아삭 마치 배를 씹는 것 같은 신선함이 있어 쇠간보다 한 급 위로 친다. 또 검은 빛이 나는 막창자를 삶아 먹으면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 맛깔이 그야말로 일미(逸味)다. 

말의 간과 막창자는 입 안에서 살살 녹아, 말을 잡는 것은 이 두 부위를 먹기 위함이라는 얘기다.

말의 간과 막창자는 말고기가 귀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이 선호했음은 물론이다. 간도 그렇지만 방언으로 검은지름(무슨 기름이라는 것처럼 들리는)이라 하는 막창자는 한마디로 입에 넣으면 그냥 녹을 뿐 아니라 그 맛이 입안 그득 푸지다.

그렇다고 ‘간과 검은지름 봥 잡는다’는 데는 좀 문제가 있다. 수긍이 가기는 하되, 이 두 부위뿐 아니라 ‘뼈’의 효험이 좋아 말을 잡는다는 속설 또한 만만치 않다. 말고기에는 많은 얘깃거리가 들어 있어 흥미롭다.

나라나 지역 또는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예로부터 말고기는 꽤 많이 먹는 고기에 들어간다. 가축을 길들이기 전에 원시인들이 말을 사냥한 것부터 고기를 먹기 위함이었지 올라타거나 일을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말 사냥의 유적이 남아 있는 게, 특히 높은 낭떠러지에서 무더기로 떨어뜨려 죽인 흔적이 많다.

말고기는 불포화지방산인 팔미톨레산이 다른 육류보다 2~3배가 많고, 단백질과 철분 함량이 풍부하다.

말은 군수물자 등으로 취급돼선지 그렇게 많이 먹히지는 않았다. 조선시대까지는 소는 농업용, 말은 군수물자로 중요한 몫을 했기 때문에 여염가에서 함부로 잡아먹지 못하게 공식적으로 도축 가능한 수량을 규제했다.

말 중에 늙어 노쇠한 폐마를 잡아먹거나 하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군수물자인 말을 먹는다는 것은 유목민처럼 말이 남아돌거나, 말이라도 먹지 않고는 굶어 죽게 될 정도로 막장일 때가 있기는 했다.

나폴레옹은 군대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패퇴할 때의 비참한 심경을 묘사할 때, 말을 잡아 화약으로 간을 해서 먹었다는 말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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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특히 제주도는 말고기로 유명하다. 육회, 불고기, 철판구이, 짬, 조림 등 쇠고기로 만드는 모든 요리가 말고기로 가능하다. 가장 좋은 게 익히지 않고 그냥 생으로 먹는 것.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맛 자체만 놓고 따지자면 굉장히 맛있는 게 말고기다. 쇠고기보다 부드럽고 지방이 적으면서 고소하다.

한국에서 특히 제주도는 말고기로 유명하다. 육회, 불고기, 철판구이, 짬, 조림 등 쇠고기로 만드는 모든 요리가 말고기로 가능하다. 가장 좋은 게 익히지 않고 그냥 생으로 먹는 것. 말의 지방은 융점이 쇠고기에 비해 낮아 입안에서도 충분히 녹아내려 육회 재료로 최상이다. 싱싱한 말고기 육회, 육사시미는 쇠고기의 그것에 견줄 바 아니다.
  
곰탕도 해 먹는데, 골질이 소나 돼지보다 훨씬 단단해 며칠을 끓여야 한다. 그래서인지 곰탕보다는 아예 엑기스(진액)로 만들어 먹는 쪽이 일반적이다. 

이 엑기스가 노인들 무릎관절에 좋다는 속설이 있다. 플라시보 효과인가.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나 마셔 본 사람들 대부분이 무릎이 한결 가벼워지고 통증이 줄었다며 좋아한다. 엑기스와 함께 많이 팔리는 게 뼈다귀다. 속담에서는 간과 검은지름 운운했지만 제주 어르신들은 ‘말은 뼈다귀를 우려먹기 위해 잡는다’고 할 정도다. 그 엑기스가 효과가 큰 것이라 입을 모은다.

사실, 말고기는 식용으로 좋다. 늙은 말의 고기도 송아지 고기만큼 부드럽고, 약간 단맛도 난다. 한데도 식용으로 광범위하게 쓰이지 않는 것은 뭔가 금기시하는 사회적‧문화적 요인이 크다. 그뿐 아니라 일단, 식용으로 대중화하기엔 비싼 가축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번식력도 좋은 편이 아니거니와 기르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결정적으로 다른 중요한 용도가 많아 잡아먹는 기회비용이 크다. 군용, 애완용, 경주용, 촬영용 등등.

절대 식용으로 대중화되지 않는 말이 있다. 경주마다. 승승장구하다 은퇴한 말. 이런 말은 종마로 이름을 날리며 종자보존이라는 효용과 명분에서 절대 도축하지 않으며, 퇴역한 이후 여생을 농장에서 편안히 보낸다. 말 팔자로 이만 하면 상팔자가 아닌가.

조선시대에는 제주 목마장에서 해마다 말고기 포를 떠서 말린 건육마(乾肉馬)를 임금에게 진상했었다. 실제로 연산군은 정기 보충을 위해 흰말고기 육회를 즐겼다 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말고기는 신경통관절염‧빈혈에 효험이 있고 척추질환에도 좋다”고 적혀 있고, 황필수의 의서 〈방약합편〉에도 “말고기는 몸을 차게 해 흥분을 잘하거나 혈압이 높은 사람에게 효능이 있다”고 했다.

‘몰은 간광 검은지름 봥 잡나’ 한 것은 비단 말을 잡는 일에 국한한 게 아닐 터. 어떤 일에나 그 일에는 핵심이 있어 그게 바로 요체(要諦)가 됨을 넌지시 일깨우고자 한 것이 아닐는지. 행간을 읽을 일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김길웅 시인. ⓒ제주의소리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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