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60) 청소년들에게 신화를 읽혀야 한다

필자는 제주신화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신화를 소재로 한 희곡도 몇 편 썼다. 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케케묵은 신화가 중요한 걸까? 

첫째, 신화는 제주인이나 제주섬의 원형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역사가 과거를 서술한다면 역사 시대 이전의 상황은 신화로 유추할 수 밖에 없다. 제주인의 기원은 시조 신화인 삼성 신화가 보여주고, 제주섬의 기원은 개벽(창조)신화인 천지왕 본풀이나 설문대할망 신화가 보여준다. 신화는 제주인이나 제주섬의 아키타입(arche type, 원형)을 보여준다. 신화가 우리의 원형적·시원적 삶의 모습을 알려준다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신화는 한 민족이나 공동체의 원형과 정체성을 확인해 준다.

둘째, 신화는 문학 예술의 원천이 된다.

서양 문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텍스트(원전)는 신화와 성서다. 서양 문학의 기원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는 신화를 기반으로 쓰였다. 전 세계 수십 억의 인류가 본 영화의 원작,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는 신화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문학의 가장 오래된 형태가 신화이다. drama(연극)의 어원이 드로메논(dromenon, 제사행위)인데,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제사장이 읊조린 사설이 시·서사시·희곡으로 분화됐고, 그 내용은 신의 이야기(신화)였다.

문학 뿐 아니라 모든 예술(연극, 음악, 미술, 무용 등)이 신화를 배경으로 많이 창작됐다. 쉽게 말하면 신화라는 원료를 가지고 예술 작품을 만든 거다. 

셋째, 신화는 문화콘텐츠산업의 재료가 된다.

문화콘텐츠산업은 문화의 내용을 산업에 응용하자는 것인데, 예를 들면 소주병에 강요배 화백이 그린 아리따운 자청비를 넣고 술 이름을 ‘자청비와 함께’라고 해 보자. 술꾼들은 자청비라는 ‘사랑의 여신’과 함께 대작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건배사로 “오늘 밤은 자청비와 함께!”라고 하면 얼마나 운치가 있고 주흥이 절로 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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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서 활동하는 여연, 신예경, 문희숙, 강순희 작가가 쓴 제주신화 책《조근조근 제주신화》.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사업가들이 신화를 활용할 줄 모른다. 아니 제주신화, 그 자체를 모르니까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최근에 교사 출신 신화연구자 김정숙 씨가 공동 저자로 《조근조근 제주신화》를 간행했다. 청소년 교육용으로 제주신화를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 그리스, 로마신화를 잘 알면서도 삼국유사나 제주신화를 모르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이 책의 출간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긴요한 것이다.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의 곳간인 제주신화를 청소년들에게 널리 읽혀서 장차 우리나라에서도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연대기>를 능가하는 문학 작품이 나와야 한다.

제주도에는 일만 팔천의 신(神)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일만 팔천개의 본풀이(신의 내력담)이 있다는 얘기고, 그만큼 신(신화)이 많다는 하나의 상징이다. 또한 그것은 제주도의 문화적, 문학적 자산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무궁무진하게 매장돼 있는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건 후손들에게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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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앞으로 제주신화 연구자들의 과제는 ‘제주신화의 현대적 해석’이다. 신화 읽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문자적 읽기, 곧 신화를 옛이야기로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화의 이야기 뒤에 숨어있는 상징과 비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일반 독자는 신화를 이야기로 읽으면 된다. 그러나 신화 연구자들은 ‘숨어있는 그림 찾기’, 상징과 비유를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제주신화의 현대적 해석이다.

소쉬르의 기호 이론을 빌려 말한다면 신화 이야기는 시니피앙(記標)이고, 상징과 비유는 시니피에(記意)에 해당한다. 시니피에를 찾아낸다면 이게 문학 예술의 원천이 되고 제주신화의 가치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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