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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돌문화공원(왼쪽)과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의 '민속' 기능 이관을 두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초점] 2013년 '민속 기능 이관' 결정에 박물관측 반발...돌문화공원 "합의 조속히 이행돼야"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수년 째 이어지는 제주도 문화 예술 조직 간 갈등이 있다. 바로 제주돌문화공원과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의 ‘민속’ 기능 이관 논란이다. 민속자연사박물관이 가진 민속 기능을 돌문화공원으로 옮기는데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도지사 결재까지 난 사안이기에 조속히 이행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쉽사리 봉합되지 않는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복잡하다.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 제주돌문화공원 설문대할망전시관의 역사

제주도는 2020년까지 돌문화공원에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설문대할망전시관을 짓고 있다. 돌문화공원 조성사업 2단계 2차 사업으로, 1999년 시작한 돌문화공원 조성사업의 대미를 장식하는 종착지다. 설문대할망전시관으로 돌문화공원이 비로소 완성된다는 의미다. 국비와 지방비가 50%씩 투입되며 총예산은 908억 6000만원, 총연면적은 2만4585㎡이다. 

애초 계획(기본계획)은 지하 4층, 지상 1층 규모로 전시관, 2000석 다목적 공연장, 1000석 컨벤션 시설을 구상했다. 전시관은 탐라신화·개국부터 제주 근대까지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내용으로 채우겠다는 구상이었다. 기획 단계부터 제주를 대표할 대규모 문화 예술 시설을 표방했다. 

하지만 추진 과정은 험난했다. 2011년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와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 투·융자심사까지 통과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제주도의회가 ‘공연장과 컨벤션 시설이 기존 도내 시설과 중복된다’, ‘경제적 타당성과 수익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유재산 관리계획 심의가 두 차례나 보류됐다. 여기에 제주도의 행정 처리 문제로 감사원 감사까지 받으면서 설계 용역 중단, 예산 삭감 등 부침을 겪었고, 2015년 12월에야 현재 계획이 확정됐다. 기본계획(1298억8700만원, 3만4042㎡)과 비교하면 각각 390억2700만원, 9457㎡가 줄어들었다. 

돌문화공원 측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은 지상 1층, 지하 2층 등 일부만 구색을 갖출 수 있는 수준이다. 나머지 공간에는 화장실, 에스컬레이터, 이동식 의자조차 설치할 수 없다. 공사는 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개관을 해도 문제”인 상황이다.

# 민속 기능 이관은 어디서 시작됐나?

민속자연사박물관의 민속 기능을 돌문화공원으로 이관하는 사안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2012년 10월부터다. 도의회의 문제 제기로 설문대할망전시관 계획에 대한 공유재산 관리계획 심의가 난항을 겪던 시기다. 문제 제기 가운데는 설문대할망전시관의 민속 전시 기능과 민속자연사박물관의 기능이 일부 중복된다는 지적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민속자연사박물관의 ‘민속-자연사’ 분리는 제1차 제주향토문화예술진흥 중·장기계획(2003~2011년) 때부터 일찌감치 반영돼 있었다.

제주도는 2013년 4월 16일 두 기관의 유사 기능을 통·폐합하기로 최종 결정한다. 도청 문화정책과 담당자부터 도지사까지 사인한 정책적 판단이다. 당시 결재 서류를 보면 “민속자연사박물관은 민속과 자연사를 분리한다. 민속분야는 설문대할망전시관이 완공되는 시점에 제주돌문화공원으로 이관 통합·전시 관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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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돌문화공원,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간의 '민속' 기능 이관에 대해 2013년 4월 16일 제주도에서 최종 정리한 내용. 제공=제주도. ⓒ제주의소리

민속자연사박물관에 대해서는 “접근성이 용이한 점을 활용해, 어린이체험박물관으로 기능을 전환한다”고 제시했다. 이것을 근거로 도의회는 2013년 6월 25일 본회의에서 설문대할망전시관의 공유재산 관리계획을 최종 승인한다. 이듬해 5월엔 민속 기능을 이전하는데 있어 경제적 타당성, 수익성 분석을 위한 용역까지 진행하며 절차를 밟아나갔다.

하지만 민속자연사박물관은 2014년 민속 기능 통·폐합 전담조직(Task Force Team)에 불참하는 등 정책 결정에 반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2014년 당시 민속자연사박물관이 제출한 내부 의견서에는 “민속 분야가 중복돼 돌문화공원으로 통합하는 것은, 정책 방침만 결정된 사항이다. 후속으로 조례 개정 같은 제도적 정비가 필요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업무 범위를 정한 이후에야 통합 논의를 해도 충분하다”면서 “우리는 제주의 대표적 종합박물관을 목표로 향후 리뉴얼 해 나갈 계획이다. 민속 분야를 분리해서는 종합박물관 역할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고까지 밝히고 있다. 사실상 민속기능 통폐합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이 같은 입장은 2018년 현재까지 변하지 않았다.

# 평행선 달리는 두 기관...제주도-의회 책임있는 자세 필요

돌문화공원은 2013년 4월 16일 통·폐합 결정이 서류로 명백히 남아있는 만큼, 민속자연사박물관의 민속 기능을 이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유물, 조직, 예산 모두를 포함한다. 이관을 조건으로 설문대할망전시관 공유재산 관리계획 심의가 통과됐고, 다시 그것을 바탕으로 사업 계획이 정부로부터 수정·확정된 만큼 이관을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설문대할망전시관 사업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름 아니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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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돌문화공원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999년 故 신철수 군수와의 약속으로 19년 째 돌문화공원에만 매달려온 백운철 돌문화공원 민관합동추진기획단장은 “만약 민속 기능 이관이 약속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업 시작 당시 행정과 맺은 협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마지막 수단으로 행정소송까지 불사할 생각이다. 설문대할망전시관 기본 계획도 (이미)누더기가 됐다. 이 사업은 내 개인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제주의 민속,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제주도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민속자연사박물관 측은 2013년 기능 통·폐합 결정은 인정하면서도, 민속 기능을 내주는 건 34년 박물관 역사를 사실상 말살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사실상 제주도의 정책 결정에 반기를 든 모양새다. 특히 통·폐합이 결정된 당시, 박물관 내부에서는 ‘항명’이나 다름없는 극심한 갈등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물관 측은 대안으로 2013년까지 모은 민속 보관품 8600여점 가운데 전시장 유물, 기증품, 고서, 미술품을 제외한 3000여점만 보내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전시에 필요한 다른 물건이 있으면 대여하는 방식으로 협조하겠다고 한다.

민속자연사박물관에 26년간 몸담은 정세호 관장은 “개인적으로 돌문화공원에 민속 전시 기능이 생기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민속자연사박물관)를 죽이면서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각자 역할, 기능, 조건이 다른 만큼 서로 특색을 살려서 유지할 순 없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통·폐합 서류에 당시 관장이 사인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지금이라도 충분한 공론화로 따져봐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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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전경. 출처=한국관광공사.

통상 행정 절차는 법적 근거와 기록을 중요한 원칙으로 여긴다. 이번 사안도 2013년 4월 16일 분명한 정책 결정이 내려진 만큼, 선택의 폭은 그리 많지 않아보인다. 제주도 관계자는 "엄격히 따져볼 때 상위 부서(제주도청)의 결정을 하위 부서(민속자연사박물관)가 따르지 않는 것이기에 징계를 내려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 년 째 평행선을 달리는 이 문제가 매끄럽게 해결되기 위해서는 ‘원인’ 제공자 격인 제주도와 도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의 심사까지 통과한 설문대할망전시관 계획에 대해 ‘경제성’, ‘효율성’ 을 내세워 제동을 건 것은 당시 제9대 제주도의회였다. 설문대할망전시관 기본계획 용역 내 경제성 분석을 보면 ‘편익-비용비율(B/C)’이 기준 이상(1.291)이 나왔고 종합적으로 사업타당성을 인정받았음에도, 도의회는 재무성 분석이 떨어진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켜 논란을 필요 이상으로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확장이나 제주시 야외공연장 등이 추진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설문대할망전시관의 컨벤션과 공연장 기능이 기존 시설과 겹친다고 문제 제기한 도의원들의 인식은 아쉬운 대목이다. 

제주도 역시 마찬가지. 도의회 의견으로 바뀐 사업 계획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승인받아야 하지만, 그 절차를 무시한 채 일처리를 하면서 감사원 주의 처분까지 받았다. 이는 설문대할망전시관 사업이 지체되는 동시에, 결과적으로 대폭 축소되는데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민속자연사박물관 기능 통폐합을 꺼낸 것도 도의회가 ‘컨벤션, 공연장 기능을 빼라’고 요구하자 그것을 대체하기 위한 땜질식 결정에 가깝다. 애초 설문대할망전시관 기본계획에는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민속 기능을 이관받는다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사원도 이런 점을 지적했다. 2012년 10월 24일 공유재산 관리계획 심의위원회에서 설문대할망전시관 문제가 제기되고, 2013년 4월 16일 통폐합이 결정되기 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도의회의 근시안적인 문제 제기로 잉태된 두 기관 간 갈등이 6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셈이다. 의회 눈치를 보느라 조직 통폐합이라는 민감한 사항을 무턱대고 서두른 제주도 때문에 소모적(?) 논쟁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반쪽짜리 사업을 떠안게 된 돌문화공원, 조직의 존폐가 걱정된다는 민속자연사박물관. 두 기관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도의회와 제주도가 지금이라도 나서야 하는 이유다. 예컨대 돌문화공원에는 원래 추구했던 기본계획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주도, 도의회가 지원할 방법을 찾거나, 민속자연사박물관은 민속 기능 이관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을 확실히 상쇄시킬 만 한 대안을 제시하는 식이다. 

무엇보다 산하기관이 반발하는 흔치않은 상황에 직면한 제주도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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