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선웅 군, 손수레 끌던 할머니 돕다 불의의 사고...유가족 장기 기증 결정

어스름한 새벽녘, 이름 모를 할머니의 손수레를 끌어주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20살 청년. 못다 핀 청춘은 7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자신을 아낌 없이 내어 준 제주 청년 故 김선웅 군의 사연이 큰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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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선웅 군.
선웅 군은 지난 3일 오전 3시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제주시 정부종합청사 인근에서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 도로변에서 무거운 손수레를 끌던 할머니를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주던 중 벌어진 사고였다.

머리를 크게 다친 선웅 군은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지만, 이튿날 의료진에 의해 최종적으로 뇌사 판정을 받았다.

2남 1녀 중 늦둥이 막내아들로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아 온 선웅 군.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학과에서 공부하며 요리사의 꿈을 키우면서도 아버지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고된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은 사려 깊은 아들이었다. 

유가족은 평소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선웅 군의 뜻을 존중해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그렇게 선웅 군의 심장과 폐, 각막, 신장 등은 7명에게 새 생명과 새 빛을 선물했다.

"선웅이가 아직 건강하고 젊었으니까......원체 착하게 살던 놈이었으니까......남들에게 뭐라도 더 해주고 싶었을 거에요."

선웅 군의 아버지 김형보씨의 목소리는 아들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가늘게 떨렸다. 

장기 기증 결정의 배경에는 10여년 전 먼저 하늘나라로 간 선웅 군의 어머니의 유지가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뇌사 상태에서 3년간 병마와 싸워 온 선웅 군의 어머니는 선웅 군이 9살 때 세상을 떠났다. 이후 유가족들은 저마다 장기기증을 서약했고, 선웅 군 역시 그 뜻을 이어받았다.

장기 기증을 결정한 이후에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가족들은 장기 척출 수술이 이뤄지기까지 꼬박 사흘 밤을 지새워야 했다. 야속하게 제주를 덮친 태풍으로 인해 항공편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흘 간의 기다림 끝에 선웅 군의 뜻은 고통을 앓고 있는 누군가에게 무사히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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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선웅 군의 빈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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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선웅 군.
선웅 군의 삶의 발자취는 남겨진 이들을 통해 투영됐다. 제주시 부민장례식장에 마련된 선웅 군의 빈소에는 늦은 밤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교복을 곱게 차려 입은 청소년들, 대학 생활을 함께 해 온 동기들, 교회 가족들, 중고등학교 시절 은사들까지, 유가족이 당시 예상했던 것 보다 4~5배가 넘는 조문객들이 찾아왔다.

"우리에겐 그저 예쁘고 착하기만 한 막내 아들, 막내 동생이었죠. 저희는 가족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신 것을 보면 선웅이가 참 잘 살았구나, 짧았지만 저보다도 더 잘 산 것 같구나 싶더라고요."

선웅 군의 누나인 김보미씨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아들 같았던 막내동생을 추억했다.

병상에서 빈소까지 함께 자리를 지킨 선웅 군의 친구 송명준 군도 "힘들 때 부르면 바로 달려와주고 같이 있을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였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교회에서도 중학생 아이들을 가르치며 함께 어울리며 장난도 받아주는 그런 친구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선웅 군의 발인예배는 9일 오전 제주성안교회 이기풍기념홀에서 치러졌다. 이 자리에도 수 많은 지인들이 함께 자리해 선웅 군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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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전 7시 제주성안교회에서 올려진 故 김선웅 군의 발인예배. 많은 이들의 선웅 군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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