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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뮤지컬 '만덕' 무대 인사 모습. ⓒ제주의소리

[리뷰] 제주시 창작뮤지컬 <만덕>

지난 1월에 처음 선보인 제주시 창작뮤지컬 <만덕>이 9개월 만에 다시 무대에 섰다. <만덕>은 당시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여러모로 꾸준히 화제를 불러 모은 작품이다.

서귀포시 창작 오페레타 <이중섭>, 도립무용단 창작 무용극 <자청비> 등 몇 년 사이 행정의 창작 공연 시도는 대부분 기반이 되는 인력 풀(Pool)을 감안해서 제작되기 마련이다. <이중섭>은 합창단과 관악단, <자청비>는 무용단이 있다. 

뮤지컬은 도내 극단 공연도, 초청 공연도 비교적 많지 않은 장르다. 뒷받침할 도립극단은 계획 상으로만 존재하고 창단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물론 창작 뮤지컬이 없던 건 아니다. 2017년 1월 제주도가 예산을 투입한 <호오이스토리>가 있지만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을 남기며 2년이 되도록 갈라쇼 몇 번 이외에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만덕> 계획이 알려졌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높았던 이유도, 이런 제한적인 제주 예술 여건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욱이 서울 공연까지 무산되면서 ‘육지 기획사 돈만 퍼주고 저러다 흐지부지 된다’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제주시는 의외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행정 책임자인 시장이 바뀌는 큰 변화에도 <만덕>의 동력은 멈추지 않았고 ▲10월 추가 공연 ▲일정 확대(3일 5회→4일 7회) ▲비교적 높은 관람료 책정(5만원, 3만원) ▲제주배우 추가 캐스팅 ▲뮤지컬 아카데미 개설 등 오히려 확장하는 모양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번째 <만덕>은 큰 틀에서 지난 공연과 비슷했지만, 세세한 구성에서 고민이 묻어나는 변화들이 눈에 띄면서 전체적으로 깔끔해졌다는 인상을 줬다. 

1월 공연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상당부분 개선됐다. 1막 말미부터 문희경 씨가 등장한 지난 구성은 아역 배우 최민정 양과 오소연 씨가 1막을 맡는 것으로 수정됐다. 문희경 씨는 2막부터 피날레까지 소화했다. 

무대 천장에서 내리고 올라가는 세트 장치는 지난 번 배우가 연기하는 순간에도 작동하며 흐름을 깨뜨렸는데, 이번에는 최대한 조명을 끈 상황에서만 움직이게 바뀌었다. 2막에서 상인들의 단합에 백성들이 고통 받는 장면과 곧 이어 기상이변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장면이 비슷한 건, 후자에 비극성을 더하는 등 비중을 달리했다.

만덕의 객주터가 불타 없어지는 장면은 세트를 들어 올리는 것 뿐 만 아니라 더 생생한 미디어 파사드 방식으로 실감나는 화재를 구현했다. 남경주(대행수 역)가 길게 목청을 뽑아내는 장면은 전에 없었지만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감초 역할을 했다.

다만, 초연보다 2막에서 노래 두 곡이 추가됐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공연이 중간 이상 지나면 노래의 반복으로 처음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비슷한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기시감을 주는 것도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역동적인 1막과 진중한 2막을 비교할 때, 2막이 주목도가 떨어지는 인상을 준다. 분량을 조절하거나 각색·연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18세기 조선에서는 불리지 않았을 단어(중국) 사용, MR이 나오지 말아야 할 순간에 나온 실수, 관객 시선이 분산될 만큼 초반부 아역 배우를 비추는 무대 안 왼쪽 조명이 지나치게 노출된 점 등은 옥의 티 정도로 기억된다.

배우들 역시 변화를 마주했는데 특히 문희경 씨는 개인 레슨까지 받아가며 절치부심한 끝에 한층 적응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오소연 씨는 1막 클라이막스를 무난히 소화하며 본인에게 주어진 부담을 멋지게 이겨냈다. 

<만덕>에 대한 작품 평가는 충분히 엇갈릴 수 있고, 도립극단도 2년은 족히 있어야 가시화 되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지속성’이라는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건 공연 예술에 대한 행정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는, 지역 예술계에 새끼발가락 하나 정도를 담그는 문화부 기자 입장에서도 참 반가운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이 점점 빛이 날 수 있다는 건 옆 동네 오페레타 <이중섭>이 입증했다. <만덕> 역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지면을 통해 행정 실무 담당자 제주시 문화예술과 김명주 씨를 비롯한 공직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만덕>에서 심방 역을 연기한 제주 출신 배우 김난희 씨는 앞선 인터뷰에서 “비록 공연이 조금 작아지더라도 <만덕>이 흐지부지 없어지지 않길 바란다. <만덕>이 배우를 꿈꾸는 새싹들이 딛고 일어서는 발판으로 남길 바란다”고 당부한 바 있다.

2시간 넘는 뮤지컬을 제주 배우들로 만드는 상상, 나아가 연출·음악·안무·구성까지 제주 자원이 소화하는 상상을 해본다. ‘제주 것’이 반드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든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다만 그렇게 한 단계씩 제주의 예술 역량이 상승할 수 있다면 <만덕>은 의미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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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뮤지컬 '만덕' 무대 인사 모습. ⓒ제주의소리

그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마지막 공연 9일 오후 3시, 7시를 기억해 제주아트센터로 찾아가자. 제주도민이면 40% 할인된 가격으로 티켓을 살 수 있다. 

만약 공연을 보러 간다면, 막이 오르는 순간까지 전부 입장하지 않아 진행에 다소 차질을 빚은 8일을 반면교사 삼아 일찍 착석하는 매너를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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