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제주 탑밴드 성황리 개최...참가 연령 확대, 장애·비장애인 하나된 문화 복지 무대 

“밴드(Band)들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 지금 같은 시대에 제주에서 다양한 음악을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여러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히려 탑밴드 공연을 보면서 내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8월 26일 ‘한국 헤비메탈의 현재이자 미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데뷔 13년차 헤비메탈 밴드 메써드(Method)의 리더 우종선 씨는 제주 청소년, 청년 밴드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쟁쟁한 대형 음악축제 무대에 올라 수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는 메써드. 그들이 제주학생문화원 대극장까지 찾아와 축하 공연을 하며 한참 어린 ‘음악 후배들’을 치켜세운 건 그저 초대받은 손님의 ‘서비스’일까? 올해 <제주 탑밴드>는 그 말이 결코 입에 발린 말이 아님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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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6일 제주시학생문화원에서 열린 2018 제주 탑밴드 참가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제주의소리

8월 26일 제주학생문화원 대극장에서 열린 <문화 복지 향상을 위한 제7회 청소년 밴드경연대회 2018 TOPBAND JEJU>(이하 제주 탑밴드)는 올해로 7년째 이어오는 행사다. 제주도 전역에 있는 중·고교, 혹은 청소년 밴드들이 일 년에 한 번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인다.

2012년 첫 선을 보인 제주 탑밴드는 청소년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밴드 경연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굳이 지난 참가자들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제주 탑밴드에 두세 번씩 도전 하는 새싹 음악인들을 통해 충분히 증명된다. 여기에 지역에 뿌리내린 청소년 밴드를 위한 경연대회를 쉽게 찾기 어렵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제주 탑밴드가 올해 큰 변곡점을 맞았다. 그동안 고등학생 이하 청소년만이 참가할 수 있던 제약을 풀면서 만 24세 이하 청년까지 문턱을 낮췄다. 여기에 팀 공연뿐이던 구성에 기타·드럼 독주 경연을 추가했다. 이 같은 변화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데 대중성과 음악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고민이다.

덕분에 19팀이라는 역대 가장 많은 밴드가 신청해 하루 전 예선전까지 치러야 했다. 그렇게 26일 본 무대에 선 밴드 12팀, 독주 9팀(드림 5·기타 4)은 제각기 다양한 개성과 매력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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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에 매진하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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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경연 참가팀에게 격려의 글을 남기는 코너. ⓒ제주의소리

밴드 경연 시작을 알린 표선고등학교 움파룸파(우호성, 이단비, 윤지민, 최가을, 조온유, 곽윤정, 박신아, 현은미)는 여성 보컬 2명을 앞세워 그들의 매력을 잘 살릴 수 있는 박정현의 <꿈에>, 심은경의 <나성에가면>을 선택했다. 높은 고음도 제법 소화하면서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연합밴드 피넛z(오민지, 안소은, 김재헌, 정승환) 역시 여성 보컬 2명을 내세웠는데 경연곡 2곡 모두 자작곡인 능력을 뽐냈다. 어항 속 금붕어의 시선으로 바라본 <금붕어>, 감성 짙은 이별 이야기 <너라서>이다.

용담1동 문화의 집 Free Style 20기(이성영, 김민수, 고은, 이하림, 김형준, 장지원, 이현수, 최주원)는 경연곡 두 개를 각각 남녀 보컬로 기용했다. 힘찬 메인 기타 연주와 관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아라동 문화의 집 재규어(최민서, 강권형, 김하늘, 김진솔, 부준원)는 남성 보컬의 가성을 바탕으로 음울하면서 낮게 깔리는 감성의 모던 록을 소화했다.  

제주대학교 동아리 엑센트의 소모임 블랙진(김은영, 강한종, 양진혁, 유한글, 오민아)은 단단한 중저음의 여성 보컬이 중심이었다.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Forever Young>을 록 버전으로 편곡하고 랩까지 소화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연합밴드 DEFINE(김하영, 김선재, 권영찬, 고동현, 정민권)은 관객을 주목시키는 여성 보컬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여기에 메인 기타가 이빨로 기타를 뜯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다른 멤버들도 자유분방하게 한껏 흥을 뽐냈다.

연합밴드 알리시아(김미진, 김도이, 박나현, 김현진, 김지영, 김수은, 정승빈, 손랑, 강지원)는 넬, 이하이, 볼빨간 사춘기라는 독특한 개성의 뮤지션 곡을 선택했다. 키보드 두 대를 운영하며 풍성한 사운드를 내려 애썼고, 볼빨간 사춘기의 <여행>에서는 여성 보컬을 한 명 추가하는 등 원곡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제주대학교 이끼(오수연, 송성관, 김근석, 이홍규, 김강민)는 보컬부터 기타, 키보드, 베이스, 드럼까지 전반적으로 무난한 사운드를 뽑아냈다.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며 비교적 매끄럽게 소화하는 여성 보컬도 눈에 띄었다.

제주대학교 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파적(원동현, 곽은혁, 오상원, 오준범, 강건규)은 멤버 모두가 무대를 즐기는 느낌으로 임했다. 서로 간의 탄탄한 호흡은 깔끔한 사운드를 만들었다. 관객 참여와 호응도 적극적으로 유도해 흥겨운 무대를 연출했다.

제주제일고등학교 First(김정웅, 김지오, 강요한, 고진성, 강지성, 이현민)는 유려한 느낌의 팝 <Shape of you>를 선 굵은 메탈 사운드로 편곡했다. 전반적으로 거칠지만 풋풋한 매력이었다.

연합밴드 Crysis(윤현식, 강도현, 김지훈, 고하원, 강지혁, 최자연)는 Megadeth, Lamb Of God 등 강력한 메탈 록 그룹의 곡을 선택했다. 첫 번째 연주곡에 이어, 다음 곡에 여성 보컬이 연주 시작과 함께 입장하는 이색 구성도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메인 기타의 속주가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주제일고등학교 HARIBO(고혁빈, 이동건, 박재동)는 멤버 수가 가장 적은 3인조팀이지만 꽉 차는 사운드를 뽑아내려고 힘썼다. 음울하지만 호소력 짙은 자작곡을 선보였고, 연주에 온전히 몰입한 메인 기타의 열정에도 이목이 쏠렸다. 특히 메인 기타를 맡은 박재동 군은 한라중학교 3학년으로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가운데 영예의 대상은 제주대학교 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파적이 차지했다. 파적은 ‘척 하면 척’이라고 부를 만큼 멤버들 간의 호흡이 단연 돋보였다. 곡의 흐름을 끊고 이어가는 '공백' 기법도 군더더기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동안의 노력과 집중을 가늠케 했다. 모던락 스타일을 갖췄지만 선곡(자작곡 <별속에서>, 듀스 <여름 안에서>)과 유쾌한 무대 매너, 나아가 복장까지 더해 청량한 트로피컬(Tropical) 느낌을 선사했다.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자신 만의 음악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 수상의 비결로 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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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 수상팀 파적과 허진영 제주의소리 공동대표(맨 왼쪽). ⓒ제주의소리

“밴드 한두 명이 연주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멤버 간 실력이 편차가 있어도 밴드 전체가 하나의 노래를 완성하기 위해 각자 파트 위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야만 완성된 음악을 관객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음악평론가 박은석 심사위원의 심사평에 잘 부합하는 셈이다.

최우수상은 제주제일고등학교 HARIBO, 우수상은 연합밴드 피넛z, 장려상은 연합밴드 Crysis가 차지했다. 빼어난 무대 매너를 선사한 베스트퍼포먼스상은 연합밴드 DEFINE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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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수상을 수상한 HARIBO와 허진영 제주의소리 공동대표(맨 왼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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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상을 수상한 피넛z와 허진영 제주의소리 공동대표(맨 왼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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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려상을 수상한 연합밴드 Crysis와 메써드 리더 우종선 씨(맨 왼쪽). ⓒ제주의소리

제주 탑밴드 초대 기타·드럼 솔로 경연 우승은 각각 현가한(서귀포고등학교), 김상수(오현고등학교) 군이 차지했다. 

현가한 군은 참가자 가운데 유일하게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나왔다. 리드미컬한 마이클 잭슨의 <Love Never Felt So Good>를 선택해, 원곡의 느낌과 차분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세련되게 녹여냈다. 익살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긁는 퍼포먼스, 자판으로만 연주하는 테크닉, 2분 가량인 짧은 경연 시간 속에서 상이한 연주 스타일을 선보이고, 마이클 잭슨 특유의 발성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까지 펼치는 등 빼어난 실력으로 관객과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

김상수 군 역시 재즈 스타일 곡 반주에 맞춰 연주 자체를 즐기는 여유로움으로, 경연 종료와 함께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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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솔로 경연 우승자 현가한 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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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럼 솔로 경연 우승자 김상수 군. ⓒ제주의소리

올해 <제주 탑밴드>는 내적(음악)인 면에서 한 단계 도약했다면 외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노력이 돋보였다. 

MBC TV <나는 가수다>, KBS TV <불후의 명곡> 등 음악 경연 예능프로그램에서나 볼 법 한 ‘현장 관객 투표’ 시스템을 도입해 관객 호응을 시각적으로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지적·자폐성장애인 시설 ‘아가의 집’ 소속 밴드 ‘The s.o.m(The sea of music)’이 축하공연을 장식한 점을 주목할 만 하다. 고난이도는 아닐지라도 ‘The s.o.m’의 무대는 음악 앞에서 장애·비장애를 구분 짓는 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자라나는 청소년, 청년들에게 각인시켰다. 관객 역시 그들의 무대에 열정적으로 화답하며 하나 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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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의 집 밴드 'The s.o.m'의 공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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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들이 아가의 집 밴드 'The s.o.m' 공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처럼 인상 깊은 행사임에도 아쉬운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오후 2시 솔로 경연에 이어 오후 3시 밴드 경연을 소화하는 빠듯한 일정 때문인지, 참가 밴드 여럿이 사운드를 점검하지 못하는 기초적인 실수가 반복됐다. 덕분에 대기실에서는 무대에서 내려온 멤버들의 한탄이 연속해서 흘러나왔다. 밴드 각자의 준비와는 별도로 장비 상태를 제대로 점검할 수 있도록 일정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밴드 공연은 <제주의소리>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www.jejusori.net )를 통해 생중계 됐다. 당시 동영상이 페이스북에 그대로 남아있으니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솔로 경연은 생중계되지 않으면서 멋진 단독 연주들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됐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오렌지색 엠프 스피커를 로비에 설치해 포토존으로 활용했지만 포토존이라는 설명이 어디에도 없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설명뿐만 아니라 청소년, 청년 참가자들의 반응을 이끌어 낼 만 한 다양한 아이디어의 포토존이 필요해보인다. 계획했지만 이뤄지지 않은 악기 전시, 시연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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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정적인 메써드의 공연과 무대 바로 앞까지 모여 환호하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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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효하는 메써드의 무대. ⓒ제주의소리

‘스포츠 강국’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포츠 대회는 전국 고교 야구부들이 한판 승부를 벌이는 일명 '고시엔' 대회(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이다. 프로도 아닌 대회에 열도 국민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매 경기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전력 질주하는 까까머리 고등학생 야구 선수들의 모습이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 탑밴드에서 뜬금없이 이웃나라 고시엔을 꺼내는 이유는 바로 ‘전력 질주’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이루지 못한 탑밴드 입상을 위해 졸업 후 여름방학에 맞춰 고향을 찾아 재도전한 끝에 목표를 이룬 대학생, 모든 것을 쏟아내고 대기실로 돌아와 ‘재미있었다’며 환한 웃음 짓는 고등학생, 그 동안 밴드 무대가 설 기회가 마땅히 없었는데 참가 연령이 확대돼 정말 반갑다는 다른 대학생 참가자 등 제주 탑밴드에는 파릇파릇한 열정들이 녹아있다. 

“학창 시절, 경연을 준비하는 시간 속에서 여러분이 발견하는 ‘무언가’가 트로피 보다 더욱 값지다”는 박은석 심사위원의 말처럼 어느덧 10년을 바라보는 제주 탑밴드는 제주 청소년, 이제는 청년들의 열정과 함께 'TOP' 무대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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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 수상을 발표하는 순간 환호하는 파적 멤버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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