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인회 제주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장기간 지속되는 제주의 폭염에 밤잠을 이루기 쉽지 않다.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지구(地球)의 대낮은 온실을 넘어 불가마로 변하고, 저녁이후 최저기온이 상승하면서 열대야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년 7말8초 기간에 대프리카(대구)보다 서울의 기온이 더 높았다. 서프리카 또는 서하라라고 빗대는 이유이다. 

왜 그랬을까? 많은 해답이 있겠지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서울은 뜨거운 낮을 지나 밤이 되면서 콘크리트 빌딩들이 열을 방출하고 있지만, 대구시는 1996년부터 20년 이상 3,4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더위를 식히는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와 같은 근본적인 방책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대도시의 열섬현상이나 제주의 폭염도 에어컨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8월 7일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진행된 '제주도교육청 조직진단 연구용역 현안보고' 과정에서 논란의 핵심이 된 것은 조직진단의 목적과 연구진이 제시한 '(가칭)지구(地區)'였다. 이 2가지 쟁점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나, 인과관계로 말하자면 조직진단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구 설치라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이번 제주도교육청 조직진단의 목적은 무엇인가? 가장 우선적으로는 급변하는 교육환경 속에서 ‘교육중심의 학교 실현’을 위해 교육활동 중심의 학교조직을 재구조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현장지원 중심의 교육행정조직을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조직진단은 2014년의 조직진단과 달리 학교현장을 방문하고 교장, 교감, 교사, 일반행정직 및 교육공무직원을 면담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학교구성원을 면담하고 TF팀과 논의하면서 연구진이 발견한 것은, 우리나라 현행 학교제도, 교육행정조직, 입시제도 등의 관료적, 중층적, 수직적 구조 하에서는 현 조직진단의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부분의 타 시·도에서도 동일하다. 이미 서울을 비롯한 타 시·도에서는 행정혁신시범교육지원청 등 자율적인 기구개편을 위해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으나 상위 법령의 통제로 인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제주도는 교육청 기구 및 정원의 특례 규정에 따라 자율적인 기구설치 권한이 부여되어 기본 여건이 매우 좋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연구진은 제주의 특성과 장점을 살리고 타 시·도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개혁을 시도해보고자 하였고, 이러한 방향이 제주교육청 조직진단의 목적인 ‘교육중심 학교시스템 구축’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요인이라고 보았다. 연구진은 학교의 자체적인 조직개선 노력, 단위학교로의 인력 증원, 본청의 슬림화와 교육지원청 기능의 확대, 그리고 지구 설치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였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교육지원청 기능의 확대보다는 지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교육지원청의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정답이 아닌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자치법 34조가 규정하는 교육지원청의 법적 정체성은 공·사립 유·초·중등학교의 운영과 관리를 ‘지도·감독’하는 하급교육행정기관이다. 2010년 지역교육청의 명칭이 교육지원청으로 바뀌면서 교육수요자 및 현장 지원 기능이 강화되었으나 이러한 상반된 역할의 정체성은 교육지원청과 단위학교에 혼동을 유발하고 있다. 

둘째, 현행 교육지원청은 관료조직의 특징이 강하다. 교육지원청은 학교 현장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울 때가 많으며, 본청과 단위학교 사이에서 중개소 역할만을 수행하는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비판받곤 한다. 

셋째, 조직 특성상, 교육지원청은 위임받은 사무를 실행해야 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지원활동 이외에 지원청 나름의 각종 특색사업을 시행하기도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공문을 생산하여 단위학교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원인자가 되기도 한다. 박삼철 외(2017)의 연구 분석처럼, 현재 교육지원청의 정체성과 기능으로는 교육활동 중심의 학교조직을 재구조화하는데 한계가 크다.

그러면 연구진이 제안한 지구(地區)는 교육지원청과 무엇이 다르고 향후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 

첫째, 가장 중요한 양자 간의 차이는, 지구는 교육행정 관료조직이 아니라 학교지원센터로서의 밀착형 서비스 기관이라는 것이다. 즉 지구는 공문을 생산하지 않는 명실공히 학교현장의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다. 

둘째, 지구는 한시적으로 조례상 교육지원청 ‘보조기관’의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2-3년 동안 지구를 시범운영 및 평가하면서, 동시에 제주특별법을 개정하는 절차를 거쳐 교육지원청을 폐지하자는 것이다. 지원청 폐지 이후, 제주 교육행정체제는 본청-교육지원청(지구가 포함된)-단위학교의 중층구조에서 본청(지구를 통할하는)-단위학교의 단층구조로 심플하게 된다. 이때가 되면 필요에 따라 본청을 슬림화하고 지구를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셋째, 지구는 교육지원청에 비하여 소규모의 전문적 지원조직으로 지역의 특성(특히 읍면)을 극대화하는 유연한 조직이다. 즉 지구는 교육지원청보다 지리적, 심리적으로 학교와 학생으로부터 가까이 있으면서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 얼마전 발의된 ‘제주도 교육균형발전 지원 조례 개정안’도 지구와 연계될 때 실효성은 상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를 설치하는데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법적으로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불가능하지도 않으며, 길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국내 유사사례가 있느냐는 것이다. 세종시교육청은 2018년 2월부터 북부교육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나아가 지구 설치 방안은 2000년대 중반 지역교육청을 교수학습지원센터로 전환하고자 했던 오래된 아이디어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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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회 제주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이번 조직진단의 결과로 73명의 인력이 증원되면 56%는 단위학교 행정실과 지구 그리고 지원청의 지구 관련 업무에 배속된다. 나아가 단위학교의 교무실과 행정실에서 일부 업무가 지구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된다. 따라서 단위학교에서는 인력증원의 간접효과가 나타나고 학교는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조직진단의 효과가 학생 성장과 교육중심의 학교를 구축하는 것으로 나타나길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상전문가에 따르면, 열대야의 일수가 10년마다 하루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오늘과 같은 열대야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열대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고 바람을 흐르게 하는 근본적인 방책을 찾아야 한다. 지구 설치와 관련하여 연구진은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 교육위원들과 열린 토론 또는 숙의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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