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주년 8.15특집] 독립유공자 신청 17년만에 명예회복…8.15광복절에 정부포상 
 
“할아버지의 명예회복에 뛰어든 지 17년 만입니다. 아, 아니네요. 거슬러 올라가면 100년만이네요.”
 
진실규명을 위한 세대를 뛰어넘는 끈질긴 노력이 100년 만에 빛을 발했다. 독립운동을 주도했다가 실형을 선고받지만 4.3에 희생되면서 국가로부터 ‘사상 검증’이라는 혹독한 잣대의 피해를 받아온 독립운동가가 8.15광복절을 맞아 명예회복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제주의소리>가 지난 2007년부터 10여 년간 ‘3.1만세운동 주역’으로 꾸준히 조명해온 제주 함덕리 출신의 고(故) 한백흥(韓伯興, 1897~1948) 선생이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유공자 선정과 함께 정부 포상을 받게 됐다. 
 
한백흥 선생의 손자인 한형범(70. 전 제주도사회복지사협회장) 씨가 이같은 소식을 지난 10일 <제주의소리>에 전해왔다.  
   
4.3 당시였던 1948년 그 해 서로 다른 날에 토벌대에 의해 각각 희생되신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 나이를 합친 것 만큼 어느덧 초로(初老)에 접어든 한 씨. 깊게 패인 주름과 희끗한 그의 눈썹이 벅찬 감정에 잠시 떨렸다. 
 
“자손으로서의 평생 숙제가 비로소 풀렸습니다. 이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17년만이자, 할아버지(한백흥 선생)가 제주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지 100년만입니다. 진실과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100년 만에 빛을 보게 돼 벅찹니다.”
 
▲ 제주의 독립운동가 한백흥(오른쪽) 선생이 3.1만세운동을 이끈지 100년 만에 정부로터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았다. 왼쪽 사진은 그의 손자 한형범 씨. ⓒ제주의소리
지난 7월 30일, 한 씨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이날을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하게 됐다. 오랜 동안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에 노력해온 결과, 할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선정 소식을 전해들은 날이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정부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해 민족자존의 기치를 높이 세우신 ‘한백흥’ 선생의 독립운동 위업을 기려 ‘대통령표창’에 포상하기로 결정했다.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선생의 희생정신과 애국심은 대한민국 건국에 밑거름이 됐으며, 귀감으로서 후세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내용의 독립유공자 선정 안내 공문을 후손인 한 씨에게 발급해 알렸다.  
 
이와 관련 지난 8월 3일 <제주의소리>와 만난 그는 “할아버지께서 제주에서 3.1 만세운동에 투신했음에도 같이 활동했던 다른 분들과 달리, 그동안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자손으로서 면목이 없었다”고 토로한 후, “그분의 명예, 진실성, 공로를 되찾고 싶다는 각오로 그동안 몸으로 뛰었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뒤늦은 결과지만 무척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 한백흥 선생.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백흥 선생은 20대 청년시절 제주 조천 3.1만세운동을 적극 주도하고 가담한 함덕리의 대표적 인물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물꼬를 튼 만세운동은 전국 각지로 번져나갔다. 제주에서는 3월 21일 제주시 조천리를 시작으로 4일 간에 걸쳐 신촌·신흥·함덕 등지에서 주민 1500여명이 참여했다.
 
한백흥 선생은 당시 약관의 나이로 지역에서 항일 만세운동을 적극 주도했다. 이런 이유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4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조천항일기념관 전시관에 걸린 ‘조천 3.1만세운동의 주역 10명’ 사진 중에는 선생의 얼굴도 당당하게 포함돼 있다. 
 
해방 이후 초대 함덕리장을 맡을 만큼 지역사회에서 덕망이 높았던 선생이지만, 4.3의 광풍은 피해갈 수 없었다. 1948년 11월 함덕리 청년 6명을 총살하려던 토벌대 앞에 선생과 마을 유지 송정옥(宋貞玉) 씨가 나서서 ‘청년들의 신원을 우리가 보증할 테니 죽이지 말아달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토벌대는 두 사람을 포함해 8명을 결국 총으로 쏴 죽였다. 함덕 주민들은 한백흥, 송정옥 선생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억하고자 지난 2010년 함덕의원 앞에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 조천3.1만세운동 주역 10명 가운데 한 명으로 한백흥 씨(맨 오른쪽 아래)가 포함돼 있다. 제주시 조천읍 소재 제주항일기념관에는 이들 10명의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4.3 당시 억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한 몸 내던진 선생이었지만, 그동안 독립유공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손자였던 한형범 씨가 2002년부터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음에도 17년이 지나서야 어렵게 인정을 받았다. 마침 올해는 3.1만세운동이 벌어진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에 더욱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한 씨는 사촌형이자 현재 4.3유족회 제주시지부회장을 맡고 있는 한하용 씨와 함께 조부의 독립유공자 신청과 유공 경력 입증을 위해 그동안 백방으로 동분서주해왔다.  
 
한 씨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4.3 희생자는 모두 폭도’라는 잘못된 생각이 널리 퍼질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문재인 정부까지 오면서 4.3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친일’ 오해 역시 이번 기회로 풀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밝혔다.
 
올해 초까지도 국가보훈처는 한백흥 선생이 1942년 ‘제주도물산주식회사’에 감사로 참여한 사실을 들어 새롭게 문제 삼았다. 당시 일제 조선총독부 관보 기록을 보면 제주도물산주식회사 임원 명단이 모두 일본인 이름으로 창씨 개명돼 있었기에, 일본군 식량을 조달하는 회사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물산주식회사 임원들은 모두 제주사람이었고 회사 설립자 강영효·김인길, 오현학원을 설립했던 대표 황순하 등 구성원과 해산물 매매·제조·가공이란 기능을 따져볼 때 일본자본에 맞선 토종·민족자본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것이 학자들의 시각이다. 
 
이 같은 내용은 한형범 씨가 백방으로 수소문 하면서 관련 자료와 증언을 모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한 씨는 제주도물산주식회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도내 사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을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김동전, 김찬흡, 박찬식, 현천관, 양정필, 진관훈 등 관련 학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소명서를 받았고, 그것이 할아버지가 17년만에 독립유공자로 선정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됐다.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은 소명서에서 “제주도물산주식회사는 이사, 감사 모두 제주도 출신으로 구성된 순수 제주도민 자본 기업”이라면서 “일제 통치에 협조하고 타협하던 친일 반민족 기업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고 밝혔다. 진관훈 박사 역시 “제주도물산주식회사는 지역 수산물이 단순 처리되고 헐값에 수용되는 폐단을 극복하고자 수산물을 가공·제조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소비자 주권을 가져다주는 대표적인 ‘민족산업·소비조합운동’의 일환”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한 씨는 “2002년부터 국가보훈처가 ‘할아버지의 공적이 없다’고 반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절망에 가까운 슬픔을 느꼈다”면서 “서울 출장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훈처에 들렸고, 보훈처 사무실이 세종시로 옮기고 나서도 부지런히 찾아갔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소회를 밝혔다. 
 
▲ 자신의 할아버지 한백흥 선생과 송정옥 선생 기념비에 선 한형범 씨. 이 기념비는 제주 함덕리 주민들이 두 사람의 의로운 희생을 기리기 위해 2010년 8월21일에 마을에 세웠다. ⓒ제주의소리
1948년생인 한 씨는 4.3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함께 떠나보낸 4.3희생자 유족이다. 그는 “국가보훈처의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억울하고 안타까웠지만 언젠가는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리라는 생각을 변치 않았다. 억울한 역사에 대항한 할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럽다”면서 “아들뿐만 아니라 손자·손녀들에게도 늘 할아버지 존함 석자를 이야기해왔다. 이제는 ‘우리도 독립유공자의 자손’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 집안에 박힌 묵은 아픔을 뽑아낸 느낌”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 한 씨는 지난 17년 간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은 공문서 뭉텅이를 꺼내보였다. 맨 위에는 당연히 독립유공자 선정, 대통령표창 포상 소식이 담긴 서류다. 국가보훈처의 공문서 맨 아래를 보니 ‘국가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생이 시작한 순간부터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명예와 4.3의 아픔을 간직한 과거, 17년이란 긴 시간 동안 믿음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기에 원하는 목표를 이룬 현재, 그리고 자신의 피가 흐르는 어린 후손에게 숭고한 독립 정신을 전해주는 미래까지. 한 사람의 70년 인생에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가 오롯이 담겨있다.
 
조만간 승격 조성될 제주국립묘지에 할아버지를 모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한 씨. 그는 “할아버지처럼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제주도에 적지 않게 남아있다. 그 분들의 원한이 더 이상 쌓이지 않도록 도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정부 역시 노력했으면 한다”고 당부의 말도 남겼다. 
 
한편, 정부는 오는 8월 15일 제73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김시범(金時範) 선생(1890.9.13~1948.11.25)에게 애족장을, 강태하(姜太河) 선생(1897.4.5.~1967.8.8), 신계선(愼啓善) 선생(1875.12.06~1950.6.14), 조무빈(趙武彬) 선생(1886.7.20~1952.10.4), 한백흥(韓伯興) 선생(1897.3.18~1950.10.1)에게 대통령 표창을 각각 추서했다.
 
▲ 한백흥 선생의 독립유공자 인정을 알리는 국가보훈처의 문서를 손자 한형범 씨가 들어보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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