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과 감동은 정비례 관계일까? 감동의 제23회 제주국제관악제가 8일 시작했다. 필자는 관악제 조직위원을 맡고 있기에 최근 개막식 리허설을 참관하러 개막공연장인 제주국제컨벤션센터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독일 연주가 펠릭스 클리저의 리허설을 보았다. 

그는 팔이 없다. 양팔 모두 없다. 발가락으로 호른을 연주한다. 펠릭스 클리저의 연주를 보고 나서 한걸음에 연구실로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글로 무엇인가를 쏟아내야 할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감동이었다. 23회째의 국제관악제 경륜, 이제 우리 관악제는 청년이 됐다. 관악제라는 청년이 펠릭스 클리저를 만나 연출되지 않은 무한한 감동을 만들어냈다. 사지 멀쩡한 나는 왜 그만큼 못하는가의 차원이 아니다.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을 그렇게 아름답게 연주해낼 수 있을까 하는 감동까지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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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 없이 발로 연주하는 펠릭스 클리저. 제공=황경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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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락을 로터리 피스톤에 올려놓은 펠릭스 클리저. 제공=황경수. ⓒ제주의소리

제주국제관악제는 진화하고 있다. 한 사람의 걱정, 국제관악제 조직위의 노력으로 이끌어 오던 것이 이제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인이 돼 추진하는 모습으로 변모해간다. 예산을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지원해주는 모습이다. 이전에는 정부 사업에 공모하고, 제주도에 여러 개의 사업으로 신청하는 노력을 한 후에야 그에 맞게 운영할 수 있었다. 이제는 계획이 합리적이면 제주특별자치도가 지지해주는 형태로 진화 중이다.

제주시에서 관악제를 태동시켰던 25여년전, 당시 관악제를 담당했던 공무원 현을생(전 서귀포시장)이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진화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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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막식 리허설에서 인사말씀을 하시는 현을생 조직위원장. 제공=황경수. ⓒ제주의소리

시스템이 제주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든다. 개막식을 장식할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연주를 보려고 서울에서 오는 흐름이 개막식의 크기를 키웠다. 처음 개막식은 1700여석을 준비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하루 만에 예약 900석 이상이 몰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다른 지역에서 찾는 이들의 움직임이 컸다는 의견이다. 그래서 3000여석으로 확대했음에도 티켓을 구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제주에 좋은 공연이 있어도 예약 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망설여진다는 타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혹여 내려왔지만 예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가 없어서 관람하지 못하면 낭패기 때문이다. 이번 관악제는 일정을 미리 공개해 예약을 받았다. 그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그 동안 완성도 높은 공연들이 많았지만 제주도민과 관광객에게 호소하는 정도였다.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와서 공연보고 다시 돌아가는 ‘공연 여행’이 목적인 관광객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정도로 진화·발전했다. 

선우예권의 <랩소디 인 블루> 연주는 음악의 느낌, 감정 모두를 가져다 놓은 듯 했다. 섬세함, 강렬함, 관악과 함께 미끄러지는 재즈의 내음, 귀여움, 볼륨의 장대함, 끝없는 빠른 반복과 일치까지. 참 행복하게 한다는 느낌까지 남김없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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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소디인 블루> 첫 멜로디인 클라리넷의 연주를 듣고 있는 선우예권. 제공=황경수. ⓒ제주의소리

관악으로 제주의 맛과 우리 전통의 맛, 서양의 맛을 모두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음을 느꼈다. 제주연합윈드오케스트라가 경륜에 맞게 좀처럼 듣기 어려운 좋은 화음을 만들었다. 이동호 지휘자가 연주하는 연합윈드오케스트라는 첫 곡으로 <제주를 품은 한국민요>를 연주했다. 국악기가 있는지 열심히 찾았다. 찾지 못했다. 거의 완벽할 정도로 국악기의 소리와 색깔을 표현했다. 플루트, 클라리넷, 피콜로, 오보에, 뮤트를 사용한 트럼펫 등이 어우러지면서 한국 전통 국악의 맛을 물씬 느끼게 만들어줬다. 천천히 진행하는 트롬본의 선율에 목관파트의 경쾌하고 속도감 있는 멜로디, 아르페지오의 진행은 작곡가만이 가질 수 있는 편집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훔쳐보게 했다.

개막 공연을 장식할 제주도립 제주·서귀포합창단의 공연 <카르미나 부라나>는 제주의 더위를 멀리 보내버렸다. 그 시원함을 들으니 이제 가을이 온듯하다. 언제 들어도 박력 있게 앞으로 다가오는 시원함이 오늘도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제주의 관악이 이제는 완성의 꽃을 피우는 시기가 됐다는 생각까지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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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미나 부라나> 연주하는 제주연합윈드오케스트라. 제공=황경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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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수 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리허설을 보고 글을 쓰고자 한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리허설은 본 공연의 속살이다. 요즘에는 리허설 참관 프로그램도 있다. 그 만큼 사실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참관인들에게 줄 수 있다. 사진도 가까이 가서 찍을 수 있었다. 물론 저는 조직위원이고 글을 쓸 것이기 때문에 용인해준 측면도 있겠다. 이렇게 리허설을 보고 글을 준비하게 된 것은 9일 목요일부터라도 제주도민과 관광객들이 국제관악제를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해서다.
 
특히 필자가 강조하면서 알려드리고 싶은 것은 발로 연주하는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의 연주가 9일 목요일 저녁 문예회관에서 있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 황경수 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제주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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