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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문재인 대통령 사과·유감 표명 ‘결단’이 필요한 이유 

2009년 12월17일. 의사봉도 없이 손바닥으로 내리친 개회 선언이었다. 일명 ‘손바닥 개회’. 제주해군기지 관련 의안 처리를 위한 당시 제8대 제주도의회 제267회 임시회가 여·야 의원들 간 고성과 몸싸움 속에 파행으로 치러졌다. 

제주해군기지 관련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과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동의안이 편법으로 날치기 처리된 날이었다. 의회민주주의가 실종된 날이었고, 제주도의회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날로 언론은 기록했다. 

강정마을로의 제주해군기지 유치 결정과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해군기지 관련의안의 날치기 강행 처리는 당시 김태환 도지사의 제주도정과 김용하 의장이 이끌던 도의회의 치졸한 조화(?)가 만들어낸 수치스런 역사로 남았다. 

이날 날치기 의회는 강정마을 지역구 출신이었던 당시 김용하 의장(대천·중문·예래동)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총대를 멘 구성지 부의장이 '손바닥 개회'를 선언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날치기’일수록 합법적이고 정당한 의사진행을 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더욱 의사봉에 집착하게 됨을 여실히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 수적 우위를 내세운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을 끌어내고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과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동의안’을 가결 처리했다. 탕! 탕! 탕! 

손바닥 개회선언 논란, 전자투표 대신 거수투표 논란, 한번 처리된 안건은 같은 회기 내 다시 제출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 위배 논란, 재석의원 숫자 논란….

꼭 그래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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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17일 제주도의회가 해군기지 절대보전지역 해제 동의안 날치기 처리를 강행하자 이에 항의하던 강정주민이 의회 앞에서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8년 8월2일. 김태석 제11대 제주도의회 의장이 도민들에게 공개 사과했다. 전임 8대 의정에서 처리한 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에 대해 “평화의섬 제주에 해군기지라는 시작점을 만들어 평화로운 강정에 형언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안겼다”고 머리를 숙였다.

김태석 의장은 이날 제363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폐회사를 통해 “여러 논의를 뒤로하고 동료의원들의 총의가 모여진 ‘제주해군기지 국제관함식 반대촉구 결의안’ 상정보류에 대해서도 동료의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상봉 의원(노형을, 더불어민주당)이 동료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고 대표 발의한 관함식 반대촉구 결의안이 지난 제362회 임시회 때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됐다. 

그러나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지난 달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제주를 방문한 이후 구렁이 담 넘듯 기류가 바뀌었다. 결국 지난 달 24일부터 시작된 제363회 임시회에서도 처리되지 않았다. 자동 폐기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김 의장은 전임 의정에서 처리한 제주해군기기 관련 ‘절대보전지역 변경동의안’ 및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 처리에 대해 도민과 강정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또한 관함식 반대촉구 결의안 상정보류에 대해선 동료의원들에 사과했다. 

김 의장은 2009년 도의회 결정이 현재 제주도민과 강정주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했다고 고백했다. 도민주권을 바탕으로 한 제11대 도의회는 도민의 아픔이 아닌 도민행복의 시작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도 했다. 

아쉽다. 그리고 의문이다. 약 10년 전 전임 의정이 날치기 처리한 과오에 대해선 도민과 강정주민에 사과했다. 그러나 정작 관함식 반대촉구 결의안을 폐기시킨 것에 대한 도민과 강정주민들을 향한 사과가 없었다. 정확한 워딩은 "동료의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였다. 그래서 ‘물타기’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관함식 반대촉구 결의안을 의장 직권으로 상정 보류한 비난의 화살을, 10년전 날치기 처리 사과로 비껴가려 한다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관함식 사과 역시 전임 의정의 해군기지 과오를 도민과 강정주민에 사과하는 것 못지않다. 도민의 선택으로 막 첫걸음을 뗀 11대 의회다. 의원 첫 전원 동의서명한 관함식 반대촉구 결의안을 상정 보류한 것은 동료의원에 대한 사과가 순서가 아니다. 도민과 강정주민들에 대한 사과가 먼저다. 김 의장은 그것을 놓쳤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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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석 도의회 의장이 지난 2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전임 제8대 도의회 당시 '날치기' 처리된 제주해군기지 절대보전지역 해제 동의안 처리 등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8년 7월28일 강정마을 주민투표.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강정커뮤니티센터에서 ‘대통령의 유감표명과 공동체회복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국제관함식 동의 여부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관함식이란 국가원수 등이 해군을 사열하는 의식을 말한다.

이날 투표 결과 투표 참가자 449명 가운데 동의(찬성) 385표, 부동의(반대) 62표, 무효 2표로 집계됐다. 강정주민들의 관함식 개최 동의 의사가 압도적이었다. 

이로써 해군이 지난 1998년 건군 50주년부터 10년 마다 추진해온 국제관함식이 올 10월 건군 70주년을 맞아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게 됐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25일 강정마을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관함식 제주 개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갈등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주민 간에 심각한 찬반 갈등을 보였던 강정마을이다. 다시 해군의 국제 관함식 개최를 두고 ‘민민 갈등’ 양상이다. 마을회 전임 집행부가 참여하는 해군기지 반대주민회는 마을총회 결과와 상관없이 국제관함제의 강정 개최를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문제는 정부와 해군의 태도에도 있다. 

혹자는 ‘관함식 투표’는 안보 아마추어리즘이라 힐난한다. 외교·안보 정책 결정은 격조 높은 전략적 비전과 경륜을 갖추고, 지방정부나 지역주민이 아닌, 중앙정부와 전문가 그룹이 국내외 다양한 변수들을 신중히 분석해 최종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관함식 개최를 강정주민들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일면 옳은 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유치결정과 도의회 동의 날치기 처리 등 ‘절차적 정당성 결여’로 강행되어 온 해군기지다. 지난 10여년간 사과든 유감 표명이든 아직 정부와 해군의 공식적인 해명이 없는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의 관함식 강행 분위기에 누구보다 강정주민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안보 문제이니 강행하면 된다는 시각이 되레 아마추어리즘이다. 국책사업과 국가안보 등을 명분으로 강행하다 소모적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장기간 야기 시켜온 사례는 차고 넘친다. 관함식 개최가 당장 국가안보 사안도 아니다. 반대 주민들이 주장하는 대로 최소한 관함식 개최 전 대통령의 유감 표명 자리가 선행된 후, 관함식이든 축제든 열면 안됐던 것일까.   

특히 강정마을 주민들 간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지피면서까지 ‘관함식 개최 반대’ 마을총회 결정을 번복하도록 유도하고, 개최 동의 결정이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수용’ 입장을 밝히는 정부와 해군의 태도가 볼썽사납기 까지 하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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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31일 오후 2시 김영관센터 내 다목적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제관함식 개최지 발표 브리핑을 갖고 있는 윤정상 국제관함식기획단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3년 10월 3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린다. 4·3특별법에 의거해 구성된 4·3중앙위원회에서 10월15일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최종 확정하자마자 불과 보름여 만인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를 직접 방문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며 공식 사과했다. 

4.3유족들은 당시로부터 반세기 전 제주에서 자행된 국가권력의 폭력과 만행을 사과하러 온 노무현 대통령의 손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통한과 설움, 기쁨과 희망이 교차한 눈물이었다. 

노 대통령이 제주도민들에게 사과를 한 것은 불과 3분이었다. 반세기 넘게 유족과 도민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푸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심이 통했기에 3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역사는 은폐될 수 없다. 과오가 있었다면 국가도 국민에 사과해야 함을 이미 보여줬다. 더 이상 강정주민들과 도민들이 ‘꼭 그래야만 했을까’를 되묻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수없이 참고 참았던 울음을 아직도 토해내지 못하고 있는 강정 주민들이다. 찬반을 떠나 모두 피해자다. 

무엇보다 이번 국제관함식이 종전의 관함식처럼 ‘해군의 축제’가 아니라,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빚어진 강정주민의 고통과 분노를 치유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강정마을에 더 이상 정리되지 못한 아픔이 없어야 한다. ‘사과 수위’를 놓고 금기와 역설을 깨라. 강정마을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 / 김봉현 기자 ·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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