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담장 위에 걸린 시계

시계꽃[時計 ―, passion-flower]

작년 한 해는,
이른 봄부터 초겨울까지 날마다 한 두 송이의 시계꽃이 피어나 마당안을 들어 설 때면 나를 반겼습니다.
그 반가운 얼굴을 대할 때면 나도 몰래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어쩌면 이렇게 신비스럽게도 생겼냐며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이런 나의 설레임을 알고나 있는지 시계꽃은 더듬이 손으로 허공을 휘휘저어 먹이를 사냥하고는 담장에 찰싹 붙어 다시 기어오르곤 했습니다.

   
 
 
겨울 어느 날,
줄기가 너무 뻗어 이웃집에 피해를 준다며 아버지께서 밑둥으로 몽창 잘라버렸습니다.
밑둥에서 시계꽃은 날마다 울었습니다.
초하까지 싹도 틔우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시계꽃은 어쩌면 수분부족 현상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순간접착제를 사다가 수분이 빠져나오는 곳에 발라줘라는 말을 했지만 차마 화학성분이라 주저했습니다.

   
 
 
시계꽃 싹이 틀 줄 알았는데 안 돋는다며 염려가 되는지 나의 어머니는 날마다 방을 드나들며 당신 딸의 눈치를 살핍니다.
6월이 되면서 드디어 싹이 돋았습니다.
과연 꽃을 피워줄까싶게 힘겹게 힘겹게 자라나더니 하순에 접어들며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고맙던지, 퇴근하면서 집안에 들어서는 것 조차 잊은 채 그 앞에서 한참을 쪼그리고 앉았다가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자라나는 시계꽃은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몽실몽실 한 두 송이를 피우던 작년과는 달리 참으로 많은 봉오리를 매달았습니다.

   
 
 
2004년 겨울, 웹상의 친구로부터 얻었습니다.
봄날이 되면서 빼꼼빼꼼 머리를 내밀던 시계꽃,

   
 
 
일년 내내 저를 즐겁게 해 주었었지요.
쑥쑥 뻗고 뻗으며 집으로 들어서는 마당 한 켠 담장을 점령했습니다.

   
 
 
얼어 죽을까 봐 바깥에 심지 못하고 안에서만 키우다가 3월이 되며 마당 귀퉁이 담벼락에 심었습니다.
채 추위가 가시지 않은 때였지만 그래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더니 금방 꽃을 피우기 시작했지요.

   
 
 
인터넷상으로만 봐 오던 시계꽃,
그 꽃이 우리집에 피었다는 건 정말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염려와 함께 봄을 넘기고 어느 날인가 옴찌락거리기 시작한 시계꽃의 싹.
담장을 거슬러 오르지 않고서도 꽃을 피웁니다.

   
 
 
비록 작년만큼 무성하지는 못할지라도 꽃봉오리는 수도 없이 달렸습니다.
그 봉오리들이 다 꽃을 피워준다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싹이 안 돋아나면 어쩌나,
행여 지나는 발길에 채일까,
그 싹틔움이 못내 반가웠던 어머니는 매일을 담장으로 줄기 끌어올리는데 소일하시고.
당신의 그 마음 못내 안타까워 꽃을 피웠나 봅니다.

   
 
 
시계꽃속은 독특한 꽃이 피며 덩굴손이 있는 약 400종(種)의 초본성 덩굴식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종들은 관상용으로 중요하게 쓰이며, 식용 열매를 얻기 위해 심는 종도 있다.

   
 
 
파시플로라 잉카르나타(P. incarnata)는 3~9m까지 기어오르고, 분홍색과 흰색의 꽃은 지름이 4~7.5㎝이며, 길이가 약 5㎝인 노란색의 식용 열매가 열린다.
이보다 키가 작은 파시플로라 루테아(P. lutea)는 꽃이 녹황색이며 열매는 자주색이다.

   
 
 
대장실과물시계꽃(P. quadrangularis)의 열매같이 향기가 많이 나는 시계꽃의 열매는 후식용 과일로 먹는다.
과물시계꽃(P. edulis)과 파시플로라 라우리폴리아(P. laurifolia)는 파시플로라 잉카르나타와 마찬가지로 열매를 얻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 열대지역에서 널리 심고 있다.
서인도 제도에서 자라는 파시플로라 말리포르미스(P. maliformis)의 열매는 크기가 대개 달걀보다 작지만, 대장실과시계꽃의 열매는 호리병박만큼 크고, 무게도 3~4㎏까지 나간다.

   
 
 
꽃의 형태는 바닥이 얕은 접시 모양부터 긴 원통 또는 트럼펫처럼 생긴 관 모양까지 다양하다.
가장자리에는 꽃잎과 꽃받침잎이 5장씩 있는데, 어떤 것이 꽃잎이고 어떤 것이 꽃받침잎인지 구분할 수 없다.

   
 
 
꽃통 밖으로 뻗어나온 꽃부리는 실 또는 막 모양의 돌기처럼 생겼는데, 이것이 꽃에서 가장 특색있고 아름다운 부분이다.
꽃통의 안쪽 밑에서부터 나온 자루의 중간 쯤에 5개의 수술이 바퀴살처럼 달려 있다. 수술 위에 씨방이 있으며, 씨방 위에 3개의 넓게 벌어진 암술대가 있다.
각 암술대 끝에는 단추 모양의 암술머리가 달려 있는데, 약간 머리가 큰 못처럼 생겼다. 씨방은 1개의 방으로 되어 있으며, 그 속에 많은 씨가 3무리로 나 있다.
열매는 장과(漿果) 또는 삭과(果)로 익는다.

   
 
 
시계꽃은 종종 '예수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을 상징하는 식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꽃에 붙여진 'passion'이란 단어도 이 말에서 유래했다.
즉 꽃부리는 가시관을 가리키고, 암술대는 십자가에 박힌 못을, 수술은 5군데의 상처를 뜻한다.
또한 각각 5장의 꽃받침잎과 꽃잎은 예수의 12제자 중 예수를 배반한 유다와 그를 알지 못한다고 3번 부인한 베드로를 제외한 10명의 사도를 가리킨다.

   
 
 
둥그런 꽃에 달려 있는 암·수술자루가 시계바늘처럼 보여 시계꽃이라고 부른다.
한국에는 1958년에 과물시계꽃이 처음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자라던 시계꽃(P. caerulea)을 온실에서 많이 키우고 있다.
참외처럼 생긴 초록색 열매는 익을수록 노란색을 띠다가 점점 주황색으로 변한다.
이밖에 홍화시계풀(P. coccinea)도 온실에 심고 있다.
때로는 시계꽃 대신에 시계풀 또는 시계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꽃말은 '믿음, 성스러운 사랑'을 뜻합니다.
요건, 작년에 우리집 마당안을 들어서는 담장을 점령하던 시계꽃의 모습.

   
 
 

5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profile photo
고봉선 2006-08-03 22:46:34    
제가 꺾꽂이로 분양시킬 자신은 없고, 메일 주십시오.
원할 때 삽수를 따다 드릴 터이니 성공시키길 바라구요.
hyhhhyh@hanmail.net
58.***.***.2
profile photo
송현우 (nang****) 2006-08-01 21:47:52
시계꽃이란 꽃도 있었군요.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글,잘 읽었습니다.
늘 건필하시길...(죄송합니다.사과드립니다. 사실 오타의 소리와 동명이인입니다)
218.***.***.117
profile photo
고봉선 2006-08-02 09:49:43    
화백님께선 동명이인이라 하실지라도 저에겐 主와客 서로의 활동영역이 다른 두 분의 네티즌일 뿐입니다. 가상의 네티즌이 있는 세상이란, 제주의 소리 이곳이 능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아직은 미숙한 솜씨를 손에 쥐고 드나드는 이곳인지라 화백님처럼 열정 가득한 분의 흔적이 또 하나의 네티즌 오타의 소리로 다가 와 부족한 저의 글에 대꾸 해 주셨다는 사실이 오히려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59.***.***.41
profile photo
한란 2006-08-02 21:55:35    
고봉선님. 기사를 읽으며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를 읽은 기분을 느꼈답니다.
시계꽃, 분양 받을 수 있는지요? 저는 꽃을 잘 가꾸는, 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61.***.***.215
profile photo
고봉선 2006-08-03 02:36:07    
부족한 글, 동화의 기분을 느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실질적으로 이 시계꽃의 열매를 본 적은 없습니다 그저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 게다가 이 글의 설명에선 씨앗이 나오는데 줏어들은 이야기로는 씨앗이 없다 알고 있고요. 아니, 어쩌면 씨앗이 없는게 아니라 씨앗으로는 분양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그렇게 돌리고 있는지도 모르지요.삽수를 따서 꺾꽂이로만 가능하다 알고 있는데 해보진 않았구요. 가능한쪽으로 돌려봅시다.
61.***.***.46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