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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출간 첫 시집 《지평선》, 소명출판 한국어 번역 선봬..."혁명가적 의지 투영된 작품"

디아스포라(Diaspora)의 한(恨)을 품고 고향 제주를 떠나 일본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시인 김시종. 그의 첫 발걸음이 길고 긴 63년 만에 모국어로 나왔다. 

소명출판은 지난 6월 12일 재일제주인 김시종의 첫 시집 《지평선》을 한국어로 번역·출간했다. 번역은 곽형덕 KAIST 연구교수가 맡았다. 

《지평선》은 1955년 김시종 시인이 일본어로 일본에서 펴낸 책이다. 시인은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48년 4.3사건에 휘말려 이듬해인 1949년 현해탄을 몰래 건넜고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고 있다. 본인이 고향으로 여기는 제주도를 찾는 건 1998년에서야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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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전국문학인 제주포럼에 참석한 김시종 시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950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어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재일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오사카 이쿠노에서 생활하며 문화·교육 활동에 적극 참여해왔다. 

제40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1986), 오구마히데오상 특별상(1992), 제41회 다카미준상(2011) 등을 수상하는 등 일본 현지에서도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책은 1부 ‘밤을 간절히 바라는 자의 노래’, 2부 ‘가로막힌 사랑 속에서’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일본적 현실을 중시한 작품, 2부는 외국인이 일본에서 할 수 있는 보다 조선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출판사는 “이 시집이 출판된 1955년은 한반도의 분단이 되돌릴 수 없는 현실로 육박해 오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김시종 시인은 냉전과 분단을 거부하고 평화의 지평을 꿈꿨다. 《지평선》에는 한반도의 분단을 거부하고 일본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시인의 혁명가적 삶과 의지가 농밀하게 투영돼 있다”고 소개한다.

아버지와 자식을 갈라놓고
엄마와 나를 가른
나와 나를 가른
‘38선’이여
당신을 그저 종이 위의 선으로 되돌려주려 한다.
― 《지평선》, <당신은 이제 나를 지시할 수 없다> 가운데 일부
시인은 책 속 시론 ‘시는 현실 인식의 혁명’에서 “그러므로 시는 성실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측에 있어야 한다. 이를 저해하는 모든 것과 응당 마주봐야만 한다. 그러므로 시는 대저 언어만의 창작이라고 한정할 수 없다. 그렇게 살아가려 하는 의지력 속에야말로 그렇게 돼서는 안 되는 것을 향한 비평이 숨 쉬고 있다. 그 자체가 이미 시라 해도 되며 그 비평을 언어로 발화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기에 시는 좋든 싫든 현실인식의 혁명”이라고 시가 품은 에너지를 강조했다. 

출판사는 “4․3 70주년을 맞은 올해, 《지평선》은 완결된 과거가 아니라, 아직 진행형인 분단의 기억과 기원을 우리 앞에 다시 던지고 있다. 남북 간에 지금껏 꿈꿔보지 못했던 새로운 희망의 지평이 열리기를 바라며 시인은 반세기도 더 전에 이렇게 새겨놓았다”고 시인의 앞선 발자취에 의미를 부여했다.

소명출판, 243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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