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업계에서는 감히 A교수에게 저항할 수 없어요. 제주는 말 할 것도 없고 국내에서도 A교수의 영향력은 상당했거든요. 전화 한 통화로 공모전 심사 결과까지 바꿀 정도였으니까요. 학생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죠. A교수에게 복종하거나, 디자인 업계를 떠나거나"
최근 '갑질 논란' 교수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는 제주대학교 모 학과 졸업생 B씨. 고교 재학 시절 해외여행 중 마주한 도시의 풍경에 반해 막연히 디자인 계통으로 진학했지만, 지금은 스무살 '청운의 꿈'과는 동떨어진 길을 걷고 있다.
A교수의 갑질을 견디다 못해 도망치듯 학과를 떠나야 했다는 그는 벌써 7~8년이 지난 일인데도 재학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렸다.
"누군가가 보면 굉장히 미련해 보일 것 같아요. 그걸 왜 참고 살았냐고. 그런데 그때는 정말 참아내지 못하면 낙오자·패배자가 될 줄 알았어요. 지금에 와서 보면 대단한 존재가 아닌 것 같은데, A교수는 당시엔 감히 거스를 수 없었던 '왕'과 같은 존재였어요"
<제주의소리>는 '미투(Me too) 열풍'이 세차게 불었던 지난 3월께 A교수의 갑질 의혹에 대한 정보를 처음 입수했다. 이후 두 달여에 걸쳐 약 10년 전부터 해당 학과에 재학했던 졸업생들을 수소문해 조각난 기억들을 모았다.
A교수로 인해 청년시절의 꿈을 접고 진로를 바꾼 이들도, A교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노력으로 디자인을 업(業)으로 삼게된 이들도, 심지어 A교수에게 혜택을 입은 이들조차 그의 '갑질'에 대해서는 공통된 기억을 갖고 있었다.
폭언과 성희롱, 사적 업무 지시, 공모작에 자녀 이름 끼워넣기 등의 사례가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최근 해당 학과 학생들이 수업거부와 기자회견 등 집단행동에 나서며 주목을 받았지만, 갑질은 과거에 더욱 심했다고 했다.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A교수의 자택. 짙은 회색 계열로 모던한 느낌을 주는 건물 입구엔 '창의성과 예술성이 인정된 건축물'이라는 설명과 함께 제주도 건축문화대상 상패가 부착돼 있다. 증언에 따르면 당시 재학생들은 신축 공사가 진행중이던 이 건물을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야 했다.
A교수와 가까운 학생들은 오히려 더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고 했다. '택배 받아놔라', '우편물 가져와라' 등 자잘한 일부터 설 명절 전날 '가족들이 온다'며 집안 청소를 시키거나, 가을철 집 뒤에 심어진 감나무에서 '감을 따오라'고 시키는 등 구체적인 사례들도 전해졌다.
방학 기간에도 A교수의 지시를 기다리느라 연구실에 상주하다시피 한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까딱 자리를 비웠다가는 금세 불호령이 떨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학생들이 공모전에서 입상하면 상금 일부를 떼간 의혹도 제기됐다.
졸업생 D씨는 "A교수는 학생들이 공모전에서 상금을 타면 자기 덕이라며 일부를 수금해 갔다.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작업실 학생들의 수상작은 거의 100% 가져갔고, 다른 작업실 학생의 수상에도 몇 십%를 떼서 가져가는 식이었다. 상금이 아니면 '나는 미성년자는 취급하지 않는다'며 (20년산 이상의)양주를 사오라는 등 그 요구가 구체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제주도나 각 행정시 등에서 수주한 사업도 학생들이 도맡다시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졸업생들의 입에서는 OO거리, OO학교 교문, OO체육관 등의 사업명이 술술 나왔다. 적게는 수 백만원에서 많게는 수 천만원짜리 사업이 끝나도 학생들에게는 수고비조로 10만원 가량 주어졌을 뿐이라고 했다. D씨는 "학생들에게는 그 자체가 나름의 스펙이 되기 때문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지만, 졸업하고 보니 큰 문제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졸업생은 "A교수는 학점이나 졸업을 무기로 학생들에게 겁을 주곤 했다. 예술계통의 폐해이긴 하지만, 해당 교수가 뚜렷한 이유 없이 컨펌을 해주지 않으면 학점도 받을 수 없고 졸업도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노골적인 사례가 줄어든 것으로 아는데, 과거에는 생트집이 잡혀 졸업하지 못한 선배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심지어 학교 시스템 상 자퇴를 하려해도 담당 교수인 A교수의 도장이 있어야 했기에 학교를 떠나려던 학생들은 그야말로 '학을 뗐다'는 후문이다.
A교수는 "나름의 목표를 이뤄가고 있다고 감히 자부했던 것과 달리, 시대가 변한 작금의 현실에는 제가 선택했던 교육 방식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면서 "결국 저의 불찰과 정제되지 못한 언행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은 학생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죄하는 심정으로 저의 입장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A교수는 "목표 지향적, 목표달성적 사고방식에만 집착하다 보니, 정제되지 않은 언어나 행동으로 인해 과정에서의 윤리에 어긋났던 것이라 생각되고, 제자들을 대하는 데에 있어 신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사소하다고만 여겨 개인적인 일들을 부탁하는 것이 권력 남용 및 소위 '갑질'로 인식됨을 빨리 인지하지 못한 점,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하고 행동했던 점 등 모든 불찰은 온전히 저의 탓"이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는 졸업생들이 제기한 구체적인 '갑질 논란' 사례에 대한 당사자의 해명을 직접 듣기위해 여러차례 A교수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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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기자
pio@jejuso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