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41) 회수동 도래물 산물

회수동은 예부터 사람들은 물에 대한 갈망으로 샘 주위에 마을을 형성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도래물’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토지조사를 하면서 회수천이 마을을 돌아 흐르기 때문에 ‘돌아서 흐르는 물’이란 뜻으로 회수(廻水)로 표기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이전에는 도문(道文)이라 했던 마을이다. 도래는 ‘도렷허다’의 옛말로 둥글게 둘러 있는 뚜렷한 모양을 뜻한다. 큰 행사 때 메밀로 만든 둥근 떡을 나누어 주었던 제주향토음식인 돌래떡도 도래와 같은 개념으로 볼 때, 물도 귀했고 마을의 하천인 회수천이 둥글게 마을을 휘감아 돌아 흐르는 건천이라 마을 이름을 회수라 불렀던 것으로 추측한다.

마을에는 조선시대 방어시설인 동해방호소가 있었기 때문에 도래물을 동해물이라고 하고 회수동을 동해촌이라 했다. 또한 마을에 흐르는 하천인 회수천은 ‘동해내’ 혹은 ‘도래물내’라고 하였다. 《탐라지》에서는 동해방호소 안의 샘이 바로 '동수물'로 군영의 생활용수로 이용되기도 했다. 논에도 관개하고 식수로도 사용한 회수동 사람들의 귀한 식수이면서 하원 서동네와 대포상동 주민 일부까지 이용했다. 

이 산물은 다른 이름으로 동이수, 동해물, 동시물, 동이소물, 영세미라고도 한다. 《원대정군지》에는 일명 ‘영천’이라 기록한다. 이 산물을 중심으로 동수동네가 형성했었는데 제주4․3으로 마을주민들은 회수와 대포로 이주하고 지금 옛 동수마을은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다. 동해방호소(東海防護所)는 원래 강정에 있던 가래방호소를 옮겨와 동수물을 중심으로 1510년에 설치됐다. 1678년 모슬진으로 옮겨지기까지 168년간 대정현 동부지역을 감시하는 방어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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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수물 표석.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동수’는 회수마을에서 볼 때 동쪽에서 물이 솟아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水)와 물을 더한 것은 물이 귀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귀한 물이라는 것을 강조한 취지다. 산물은 두 군데가 용출되는데, 수도가 가설되기 전까지는 동측에서 솟는 물은 수량이 많아 식수와 야채 등 음식물 세척용으로, 서측의 물은 빨래와 목욕 등 다용도로 물통을 구분하여 정비(1932년)하여 이용되다가 1965년에 회수, 대포 두 마을의 상수도 수원으로 개발되어 이용되었다.

물의 수요가 커짐에 따라 1970년 지하수를 개발하여 수원으로 대체되면서 물은 방치되었으며, 산물 전면에 중산간서로가 개설되고 확장되면서 물터가 축소되어 사라질 위기에 있었으나 마을을 지킨 귀한 물이기에 회수마을회에서는 2009년에 중산간서로594번 도로 우측에 동수물이라고 표석을 세우고 새롭게 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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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수물 동측.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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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수물 서측.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동수물 표석에는 “마을의 발원지이며 애환서린 삶의 현장이었으므로 미비하나 원형을 복원하여 영세 보전하고저 함이다”라고 적혀있다. 이 산물은 대포동에 속하나 관리는 회수동에서 하고 있는데 한 동안 개방하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근래에는 경계철망을 치고 잠금장치를 해 출입을 통제하고 폐쇄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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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쇄된 동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중산간서로584번길 마을을 지탱한 중산간서로584번길 서측변에 있는 동수물은 산물터 일부 돌담과 산물이 솟는 구멍 등이 원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정비된 잡풀과 쓰레기들로 볼품없는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다. 

마을의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일뤠(7일) 동안 파서 물을 얻었다는 일뤳섬물(일러샘, 일렛샘, 일뢰샘)이 마을에 있을 정도로, 물은 마을의 운명을 좌우했다. 마을의 발원지이며 애환서린 삶의 현장이라고 말하듯 작은 물, 돌 틈 구멍사이로 산물이 솟아나지만 농협창고가 들어서면서 메워져 사라져버린 일뤳섬물처럼 사라질까봐 걱정된다. 분명한 것은 회수동 산물은 마을을 지탱하기 위해 물에 대한 갈망을 해갈해준, 돌아서 흐르는 마을의 귀한 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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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치된 동수물 서측 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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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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