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은 제주만의 역사가 아니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 놓인 혼돈의 시대, 그 어느 지역보다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이념의 욕망이 충돌하는 용광로였다. 제주도립미술관이 4.3 70주년을 맞아 준비한 특별전 <포스트 트라우마>를 주목하는 이유도 4.3과 동시대에 벌어진 동아시아 국가폭력을 함께 조명해서다. <제주의소리>는 이번 특별전에 출품한 작가 12명의 작품을 웹갤러리로 소개한다. 작품 사진과 소개글을 더하지만, 전시장을 찾아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직접 느껴보길 권한다. [편집자 주]

[포스트 트라우마] ⑥ 야마시로 치카코(山城知佳子)

15531e303da02a4af6ec25ff15043ed6.jpg
▲ 야미시로 치카코의 작품 <흙의 사람(土の人)>, 3채널 비디오, 23′, 2016. 제공=제주도립미술관. ⓒ제주의소리

작가노트
<흙의 사람(土の人)>은 사람들이 우연히 그들의 고국에 태어나는 방식, 어떻게 그 장소의 기억과 역사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지를 이동하는 철새가 하늘에서 배설물을 떨어뜨리는 장면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씨앗을 담고 있는 새의 배설물은 땅에 착륙한다. 그 씨앗은 ‘시’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 스스로 암송을 시작한다.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흙의 사람들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서서히 깨어난다. (그 소리는 어쩌면 과거로부터 도착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처럼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느낀다. 동시에 그 시를 노래함으로써 앞으로 살아야 할 삶을 공유하고 미래와 연결한다. 씨앗을 미래로 전하는 것은 내가 이 이야기에서 묘사하고 싶었던 주요 이미지 중 하나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 흙의 사람이 과거나 보이지 않게 되어있는 역사로부터의 기억을 인지하는 과정도 묘사되었다. 이것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소리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박수소리는 순간적으로 손을 떠나서 우리의 귀에 닿아 소리로 인식하도록 하는 공기의 진동을 일으킨다. 그 소리는 어느 시간 동안 공기 중에 떠 있으면서 손에서 귀로 이동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과거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리들, 혹은 어떤 사건의 결과로 만들어져 누군가가 인식해주기를 기다리는 진동들이 이 세상에 남아있다고 느낀다. 나는 가끔 그런 반향을 느끼며, 떠도는 소리를 표현하는 것은 신비한 경험이었다. 비디오에서의 사진 같이 선명한 이미지들은 마치 화신이 된 것처럼 구체적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흙의 사람>은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의 진동 같은 찰나의 순간에 꿈속에서 본 듯한 형체로 존재했던 사람들의 ‘흔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유래한 이야기인 ‘흙의 사람’은 우리 자신 같은 평범한 개인들의 친숙한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슬픔과 아픔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과 똑같이 느끼기는 몹시 어렵다. 그러나 나는 크게 뜬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과거로부터 흘러왔는지, 그 사회가 어떤 구조와 조직을 가졌는지, 그리고 지금 그대로 내버려 두면 미래에 어떤 희생을 강요받게 될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의 방식으로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작품들, 청중들 사이에서 대화하도록 격려하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창작하고 싶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