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은 제주만의 역사가 아니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 놓인 혼돈의 시대, 그 어느 지역보다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이념의 욕망이 충돌하는 용광로였다. 제주도립미술관이 4.3 70주년을 맞아 준비한 특별전 <포스트 트라우마>를 주목하는 이유도 4.3과 동시대에 벌어진 동아시아 국가폭력을 함께 조명해서다. <제주의소리>는 이번 특별전에 출품한 작가 12명의 작품을 웹갤러리로 소개한다. 작품 사진과 소개글을 더하지만, 전시장을 찾아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직접 느껴보길 권한다. [편집자 주]

[포스트 트라우마] ④ 딘큐레(Dinh Q. Lê)

캘리포니아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사진을 배운 베트남 작가 딘큐레는 전쟁과 이민 문제에 관한 작품들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제작해 오고 있다. 특히 그는 국가·사회의 역사와 그 역사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통한 역사, 이 두 가지 층위를 엮어 역사의 이면과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 한 사건이 인식되고 기억되는 방식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딘큐레 빛과 믿음 드로잉 일부 2.JPG
▲ 딘큐레의 작품 <빛과 믿음 : 베트남 전쟁에 대한 회고와 스케치(Light & Belief : Sketches of Life from Vietnam War)>, 2012, 싱글 채널 비디오, 36′. 제공=제주도립미술관, ⓒ제주의소리
딘큐레 빛과 믿음 드로잉 일부 2.png
▲ 딘큐레의 작품 <빛과 믿음 : 베트남 전쟁에 대한 회고와 스케치(Light & Belief : Sketches of Life from Vietnam War)>, 2012, 싱글 채널 비디오, 36′. 제공=제주도립미술관, ⓒ제주의소리

베트남 전쟁 동안 참전화가들이 그린 드로잉에 영감을 받아, 딘큐레는 그 화가들을 방문해서 그들의 전시 경험에 대하여 인터뷰했다. 그 작품이 바로 <빛과 믿음>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들로부터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날들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평화롭고 즐거운 순간들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들이 그린 초상화가 군인들에게 위안을 주었음을 알게 된다. 

참전화가들이 그린 70점의 드로잉과 인터뷰 비디오는 베트남 사람들이 이전에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명한다. 애니메이션의 사용은 관련자들의 기억을 통하여 소통하면서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이로 인하여 이 작품은 동화와 같은 독특한 호소력을 갖게 된다.

딘큐레 암흑속의 전망 영상과 드로잉 3점.JPG
▲ 딘큐레의 작품 <암흑 속의 전망(Vision in Darkness)>, 2015, 싱글 채널 비디오, 27′ 50″. 제공=제주도립미술관, ⓒ제주의소리

<암흑 속의 전망>은 ‘빛과 믿음’의 두 번째 챕터로 보거나, 혹은 대항서사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한때 고위급 공산당원이었으나 어느 시점에서 체제에 대한 신념을 잃은 한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신념은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는 예술과 그림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딘큐레는 어떻게 '트랜 트렁 틴' 같은 화가들이 체제에 속하고 그 체제를 믿었던 다른 화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그들이 그 순간에 본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써 예술을 찾게 되었는지에 관심을 둔다.

딘큐레(Dinh Q. Le), 농부와 헬리콥터 The Farmers and The Helicopters, 2006, 3 채널 비디오 영상, 15분 (2).png
▲ 딘큐레의 작품 <농부와 헬리콥터 (Farmers&Helicopters)>, 2006, 3 채널 비디오 영상, 15′. 제공=제주도립미술관, ⓒ제주의소리

독학한 기술자인 Tran Quoc Hai와 농부인 Le Van Danh은 농사일과 구조작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스스로 헬리콥터를 제작하였다. 베트남 전쟁기간 미군의 헬리콥터 공격을 목격한 사람들은 여전히 헬리콥터에 강하게 반응한다. 

<농부와 헬리콥터>는 할리우드 영화 장면과 다큐멘터리 및 그 외의 장면들과 결합한 설치 작품이다. 베트남 전쟁을 상징하게 된 아이콘인 헬리콥터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클로즈업된다. 수공예로 만든 헬리콥터 그 자체의 압도적인 모습과 더불어 거의 들어보지 못한, 베트남 사람들이 겪은 전쟁 이야기와 헬리콥터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