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민족예술, 민중예술은 무엇인가?

내게 있어 제주민예총은 짧은 시간 이었지만 아름다운 기억이었습니다. 6년여의 시간 동안 상근 정책실장을 맡으면서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즐거웠던 시간의 연속은 아니었습니다. 정책이란 용어 때문에 행동하나 말투 하나 신경 쓰이지 않는 게 없었습니다. 때론 나의 무지 때문에 누군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나의 고집스러움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나는 바른 의견, 제주민예총의 의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문화예술의 과제를 제대로 주장하고 있는가?

당시 매 순간들은 참 힘들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정치적 욕망으로, 개인적 권력 욕심으로, 조직이기주의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사회 현안들을 마주할 때마다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솔직히 무엇이 바른 길인지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른 길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의 끈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내 생각이 모자란 부분은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소통하면서 퍼즐조각 맞추듯 채우려고 노력했었습니다. 

몇 년 전에 ‘4·3예술과 제주민예총 20년’이란 제목으로 어딘가에 썼던 글이 떠오릅니다. 

‘제주민예총 정관은 4·3민중항쟁 정신을 예술 창작과 실천 속에서 보듬어 안아 역사의 연표 위에 자랑스럽게 기록되도록 할 것이며 제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섬 공동체를 보듬어 안기 위한 눈물 수건의 역사, 태손 땅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예술의 실천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 선언은 제주민예총의 중심 사업과 방식이 무엇인지를 함축한 선언문이다. 창립 선언을 하게 된 배경은 탐라로 대표되는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80년대를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 왔던 문화예술인들의 이상향을 담아내고자 했다. 지난 시기 문화예술 활동의 성과와 문제점까지를 모두 받아들이고자 고뇌한 흔적이 담겨 있다.’ 
제가 이렇게 쓴 적이 있네요.

지금도 이 문장 때문에 가슴이 떨리기도 합니다. 어설프게 살지는 말자고 다짐하는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기에 후배님들 또한 열심히 예술활동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후배님들에게 늘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언이 지금도 유효한가 회의가 들었습니다. 

어제 신문 기사를 보고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지사 후보들에게 문화부지사를 제안한 기사였지요.

얼마 전에 후배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밖으로 문화정책은 이렇다 주장하기에 앞서 우리 안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해답을 찾는데서 부터 문화정책은 시작한다."
지금 그때와 같은 질문을 할까 합니다. 문화부지사, 다 좋은데 설명해야 할 게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정치 공간에서 정책을 주장하기에 앞서 안으로부터 정책을 고민한 적이 있는가? 문화부지사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누구와 소통은 했는가? 누구를 위한 부지사인가? 제주민예총 창립선언문에 제시했던 그 취지와 정신은 여전히 유효한가? 조직이기주의는 없는가? 문화권력의 사적소유는 아닌가? 무엇보다 건강한 제주문화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누구와 함께 고민하고 있는가? 

선거는 중요합니다. 정책제안도 중요합니다. 급변하는 제주의 사회환경에서 문화는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부지사를 원하진 않습니다. 여성부지사, 4·3부지사, 농민 부지사, 관광부지사, 청년부지사를 만들어야 하나요. 제주특별법의 헌법적 지위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정해야 하나요.

문화부지사를 제시하려면 예술인,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 무엇보다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작은 의견이라도 듣고 정책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거기간입니다. 그래서 위인설관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기우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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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윤 전 제주민예총 정책실장.
얼마 전 공공기관의 문화관련 건물 매입 과정처럼 구체적인 계획도 부족하고, 예술인뿐만 아니라 주민 공감도 부족하고, 절차적인 문제에서 형식에 치우치고, 소통도 없는 사업이 타당하다고 동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주도민의 문화적 충만과 지역예술인들의 어려움을 대변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창립 선언문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창립선언문을 만든 선배님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창립 선언문을 금과옥조로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후배들 가슴에 상처는 주지 말았으면 합니다. 김석윤 전 제주민예총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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