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36) 서귀포시 강정동 제일강정 용출수

‘더내, 가내(래)’라 했던 강정동은 맑고 깨끗한 물을 이용해 한 때 논농사 지어서 수확된 쌀을 임금님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강정 얘기는 곤밥(쌀밥)을 주면 울고 조밥을 주면 안 운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벼가 많이 생산되어 강정에서 재배된 쌀은 섬에서 가장 좋은 으뜸 되는 쌀로 이름날 정도다. 여기서 붙여진 ‘제일강정’이란 별칭도 풍부한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강정천과 악근천은 서귀포시민의 식수로 사용하는 상수원의 젖줄이면서 널리 알려진 피서지다. 서귀포 시민의 80퍼센트의 수도를 책임질 정도로 산물이 풍부하게 솟아난다. 

강정에는 3대 산물이 있는데, 강정천의 수원을 이루는 냇길이소, 악근천의 수원인 소왕물, 그리고 수도가 설치되기 전 주민들의 가장 많은 식수원이었던 큰강정물이다. 마을에 4가지 보물로 폭포, 암벽, 은어, 깨끗한 물이 있다고 자랑할 정도이다. 그래서 강정(江汀)이란 마을은 ‘물이 너무 많다’는 데서 ‘하천’이 아닌 ‘강’이란 지명을 쓸 정도로 생명을 지키는 참으로 귀한 산물들이 마을 곳곳 여기저기서 사시사철 솟아나고 있다.

강정동을 대표하는 산물은 강정초등학교 서남쪽에 있는 큰강정물이다. 이 산물은 ‘삼통아왜낭목’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삼통아왜낭목’은 수백 년 묵은 팽나무와 소나무들이 자라는 수림지대로 이 일대 수림의 주된 수종이 ‘아웨나무’였으며 ‘목’은 입구라는 뜻의 제주어다. 산물이 나는 이 지역을 ‘아웨나무입구’라고 했다. 예로부터 이곳에 육척 높이, 육척 넓이나 되는 돌담을 가지런히 동서방향으로 쌓아 놓고 마을 어른과 아이들이 이 잣담에 모여 앉아 옛 이야기도 들려주고 아웨나무 껍질로 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하고, 장기를 두며 서로 담소를 나누었던 소통의 장소였다. 마을사람들이 큰강정물에서 물을 뜨기 위해 오가면서 잠시 쉬어가는 쉼터로 마을의 대소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웃끼리 만나고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대화하던 마을의 의사소통의 중요한 터는 산물이란 생명수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만들어 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주4․3 이후로 옛 산물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고 산물터는 1997년에 시멘트로 개수되어 버렸다.

8IMG_9520수.JPG
▲ 큰강정물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큰강정물은 과수원 아래 길가에서 용출되고 있다. 지금 모습은 1997년에 정비된 것이다. 강정동에서는 식수로 사용했던 가시물, 웃통물, 알통물 보다 수질이 좋아 큰강정물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인 1965년까지 주민들의 주 식수원이었다. 이 산물은 용출량이 많아서 큰강정물이라 했으며, 여자들이 목욕도 하며 주로 이용했었다. 강우의 영향을 다소 받아 수량 변화가 심한 편으로 갈수기에는 수량이 다소 줄어들기는 하지만 사시사철 용출되는 특징이다. 큰강정물은 이름 그대로 수량이 풍부하여 식수나 빨래터 외에도 ‘청케, 북헌터, 구럼비’ 지경의 논농사를 할 수 있게 한 주공급원이었던 산물이다. 지금은 수량이 매우 작고 통 안에는 물이 정체된 것 같이 이끼들이 뭉쳐 있으나 앞 고랑인 골세에는 물이 세차게 흘려 내리고 있다.

9큰강정물수.jpg
▲ 큰강정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지금 골세를 중심으로 섯동네통물과 큰강정물을 2018년까지 재복원할 계획이다. 주민쉼터공간으로 활용하고 소하천의 다목적 이용과 생태환경 개선을 위하여 소하천정비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왕 복원한다면 고증에 의한 옛 모습으로 최대한 복원되었으면 한다.

10IMG_9523n.JPG
▲ 골세(소하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통물은 섯(서쪽)동네에 있기 때문에 ‘섯동네통물’이라고도 한다.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이 삼매봉 앞으로 섭섬과 문섬이 화(火)봉으로 비춘다고 하여 불을 이기기 위해서 뭇병디(물+넓은 벌판)못과 통물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산물은 구명물의 일종으로 큰비가 온 후 용출량을 넘쳐난다. 원래 통이 두 개로 물이 매우 차다. 웃통에서는 아녀자들이 전용으로 사용했으며 알통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구명(求命)은 ‘목숨믈 구하다’란 뜻으로, 장마나 폭우같이 비가 온 뒤 땅속에서 물이 솟을 때 제주에서는 구명이라 해서 말 그대로 물을 마실 수 있어 목숨을 구한 물이란 뜻으로 구명물이다. 이 물을 통에 모았기 때문에 통물이라 하며 강정통물83번길에 있고 개수되어 있으나 비가와도 예전만 못해 지금은 구명물 역할을 못하고 있다.

11IMG_9519n.JPG
▲ 섯동네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함백이물은 선사유적이 발견된 곳으로 주로 논농사에 이용된 물이다. 큰강정물에서 남서쪽 300m 떨어져 있으며 큰강정물과 함께 강정의 최대 곡창지대인 ‘정의논깍’으로 흘러 나간다. 4․3 이전까지만 해도 작은 촌락을 이뤄서 이 산물을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말질로204번 길가 시멘트 통에서 용출되어 돌로 만든 고랑을 통해 흘러가고 있지만 여전히 물 힘이 좋다.

12IMG_9536n.JPG
▲ 함백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가시물은 말질로161번 길에 있으며 아웨나무가 있는 길목에 있다고 해서 가시물 아웨낭목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1795년부터 ‘무근당’이라는 강정본향당이 모셔진 곳이기도 하다. 무근은 ‘오래된’이라는 제주어다. 이 산물은 강정마을이 설촌되면서부터 이용되어 온 자정수(子正水)로 예전에는 덧네동네의 식수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비닐하우스 등에서 농업용수로 이용한다. 산물은 강정수원지 확장공사로 수량이 많이 작아졌고 물통은 사라지고 돌담을 에워 싼 고랑에서 용출하여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고 있다.  

13IMG_9538수.JPG
▲ 가시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cats.jpg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