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多>는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조기 강판을 걱정했지만 다행히 10편을 넘어 순항하고 있습니다. 소통을 위해 글도 딱딱하지 않은 대화 형식의 입말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제주의소리>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질문을 남기시면 정성껏 취재해 궁금증을 해소해 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소리多] (14) 오름 사면에 3000기에 달하는 분묘 장관...김녕의 역사와 문화 간직한 오름
최근 언론계 선배가 드론 촬영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름 전체가 무덤으로 뒤덮힌 그림이었죠. “제주에 이런 곳이 있었냐”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사진 속 오름은 제주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입산봉입니다. 해발 84.5m의 입산봉은 분화구를 품고 있습니다. 삿갓을 뒤집어 놓은 모습을 하고 있어 ‘삿갓오름’으로도 불립니다.
조선시대 입산봉은 적의 움직임을 파악해 알리던 입산봉대(笠山峰臺) 터로 사용돼 왔습니다. 세종 21년인 1439년 봉수대로 지정돼 왜구의 침범을 막는 통신망 역할을 했습니다.
입산봉을 시작으로 서산봉과 원당봉, 사라봉을 거쳐 관덕정이 위치한 제주 목관까지 봉화가 순차적으로 전달됐습니다.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급보를 전했다고 합니다.
특이하게 분화구에는 예부터 물이 솟았다고 합니다. 이 물을 귀하게 여겨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마을에서는 금훼수(禁毁水)라고 불렀습니다.
글을 뛰어나게 잘 짓는 문장(文章)의 기세가 강해 문장봉(文章峯)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를 이유로 누구도 밭을 경작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의 금경산(禁耕山)이라고도 했습니다.
실제 현장에 가보니 오름 정상 큰 소나무 옆에는 禁耕山(금경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수백년은 돼 보였습니다.
그 주변으로 오름 능선을 따라 무덤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산담과 콘크리트, 납골당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네모와 마름모 등 모양도 제각각이어서 무덤 천국으로도 불릴만합니다.
이처럼 여러 이야기를 간직하며 일반인의 출입조차 어려웠던 오름이 어찌 무덤으로 변했을까요? 시간을 100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1894년 재래의 문물제도를 근대식으로 고치는 갑오개혁이 시작되면서 봉화가 폐지됩니다. 400년간 이어진 봉수대가 사라지면서 현재는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후 입산금지령이 해제되면서 입산봉 정상에 처음 묘 1기가 들어섭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연이어 묘 자리를 마련하자 김녕리는 이곳을 공동묘지로 지정하게 됩니다.
100년 넘게 오름 곳곳에 무덤이 자리를 잡으면서 일주도로를 접하고 있는 북쪽 일부를 제외한 사면 전체에 3000여기에 가까운 무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김녕리 인구가 2850여명임을 감안하면 주민만큼 마을 조상들이 터를 잡고 있는 거죠. 도로를 사이로 망자의 안식처인 무덤이 마을을 품고 함께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눈에 띄는 부분은 분화구입니다. 오름 정상 굼부리에는 무덤으로 둘러싸인 농장이 있습니다. 김녕리 마을에 따르면 설촌 당시 입산봉 분화구에는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1850년 마을 해안에 고래가 떠밀러 오면서 관에서는 주민들에게 기름을 짜서 상납토록 목사령을 내렸습니다. 상납량 미달로 담당자가 옥살이를 하자 주민들은 벌금을 대납합니다.
현재는 개인이 이 땅을 모두 매입해 팔방형의 땅을 일구고 비닐하우스도 설치했습니다. 주민들에 따르면 1970년대 경운기를 처음 사용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입산봉은 풍수적으로도 망자들의 안식처로 평가되면서 지금도 묘지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반대로 화장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장을 하는 주민들도 많습니다.
뛰어난 풍경과 풍수를 벗 삼아 조상들이 대대로 후손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 제주의 아름다운 매장문화 중 하나로 지켜가는 노력도 필요해 보입니다.
참고로 <소리多>는 제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무덤에 대한 제보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10여년 전 해발 1600m 무덤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그보다 높은 곳이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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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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