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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양, 5월 12일까지 5인 협업전 <밧듸글라> 개최

문화공간 양은 4월 3일부터 5월 12일까지 제주4.3 70주년을 기리며 전시 <밧듸글라>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각기 다른 분야(시각예술·의상·전통침선·음악)의 청년 예술가 다섯 명이 4.3의 의미를 찾아보는 협업전이다. 그들의 표현 방식은 과거의 사건으로서의 4.3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서의 4.3을 고민했다.

남성복 브랜드 ‘대니브’ 운영 디자이너 박단우와 화가 정현영은 <곤을동 터>를 함께 제작했다. 박단우는 불 탄 곤을동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희망을 자켓으로, 정현영은 아픔 속에서 생명을 안고 있는 굳건한 땅과 위안의 바다를 치마로 만들었다.

재즈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허성우는 섯알오름 4.3 유적지를 답사한 후 전시 제목과 동일한 곡 <밧듸글라>를 작곡했다. 

시각예술가 권순왕은 박단우와 함께 4.3 관련 사진 112장으로 만든 <잔존의 소금 눈>과 <밧듸글라>의 악보와 밭에서 자라나는 풀을 판화로 찍어낸 <검은 깃발>을 선보인다. 권순왕은 두 작품 위에 소금을 덮고 바지를 설치했다. 이는 오늘도 희생자를 기다리며 덮여가는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일이라는 메시지다. 

재즈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허성우는 섯알오름 4.3 유적지를 답사한 후 전시 제목과 동일한 곡 <밧듸글라>를 작곡했다. 허성우의 <밧듸글라>는 권순왕·박단우 작품을 보면서 듣도록 설치됐다.

침선공예가 전영자의 마지막 제자 신소연은 정현영과 함께 섯알오름의 두 웅덩이를 <모슬포 학살터>라는 작품으로 구현했다. 옷고름 끝에 거울이 달려있고, 그 옆에는 도민 300명을 직접 보면서 그린 드로잉이 놓여져 있다. 전시 관람자가 거울을 보는 동안, 드로잉 작품이 함께 있는 구조는 4.3희생자가 바로 지금의 우리라는 작가 의도가 담겨있다.

<일상, 단절과 지속>은 박단우과 신소연의 협업 작품이다. 기억해야 할 희생자를 셔츠로, 아픔과 기억을 안고 지켜야할 일상을 멜 잡는 그물로 만들었다. 지켜낸 일상에서 만들어지는 미래를 끝마치지 않은 바느질로 표현했다. 

문화공간 양은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해 봄부터 작가들과 4.3 유적지를 답사하고 서로 논의하는 자리를 가져왔다. 작가들은 아픔이 깃든 땅에서 살아가는 도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프지만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질문했다”며 “아픔 속에서도 현재를 지켜내고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의지를 작품에 담았다. 즉 4.3의 의미를 우리의 삶과 터전을 지켜나가는 것으로 보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화공간 양은 전시와 연계해 오는 8월, 독일 베를린에서 4.3과 4.3미술을 소개하는 세미나를 개최한다.

다음은 <밧듸글라> 작품 사진과 작가들의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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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왕, 허성우의 작품. 제공=문화공간 양. ⓒ제주의소리

권순왕 <검은 깃발>
검은 깃발을 하얀 벽에 달았습니다. ‘밭에 가자’는 곡을 칼로 새기고 그때 밭자리에 자라는 들풀을 나무에 새겼습니다. 이 나무는 딱딱한 채 굳어있는 풀들이 새겨진 검은 깃발입니다.

허성우 <밧듸글라>, <핑크 아일랜드>
Pan+ism, 파니즘의 예술, 영원성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생성 소멸의 변화하는 시간 속에 거주하는 인간세계를 ‘판’의 예술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운동의 시작, 음악도 결국 청각적 이미지를 악보를 통해 재현 반복하고 직접적 표현으로 차이를 만들어가는 ‘판’의 예술이었다. 권순왕 작가와 이번 제주 4.3 70주년 협업을 통해 '판'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공통지점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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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단우, 정현영의 작품. 제공=문화공간 양. ⓒ제주의소리

박단우 <곤을동 터>
모두 타버린 잿빛 돌담자리를 초록 풀들이 돋아나 채우고 있었다. 과거의 아픔은 묻어두고 새로이 나아가라는 강요된 희망처럼 느껴져 야속한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 서로 보듬어 안으며 희망으로 나아가야 한다. 
곤을동 터의 돌담자리의 현재의 모습을 꾸밈없이 담담히 표현하고자 현대 재킷의 형태를 기본으로 잡고 타버린 흔적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밑단을 불에 태웠다. 사이사이 뚫고 나오는 칼라의 향연은 과거의 아픔을 간직한 채로 계속되어야 하는 희망 그리고 곤을동 터를 보듬어 안는 자연의 위로이며, 등 부분을 가득 채운 총 천연의 칼라들은 드러나지 않은 미래의 더 큰 희망들이다. 
화가의 협업을 통해 한 획 한 획 붓질하듯 바느질로 채워 넣었다.

정현영 <곤을동 터>
거칠고 검은 붓질에 배접으로 단단하게 모양 잡힌 허리띠는 사라진 마을 곤을동 집터의 남은 돌담을, 그리고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선 형태는 당시 흘렸던 생명을 표현한다. 옅은 감물과 먹물의 흘림으로 콜라주 된 얇은 한지 바탕에 얹힌 푸른 색면은 그 터를 풍성히 감싸 위로하는 바다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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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소영, 정현영의 작품. 제공=문화공간 양. ⓒ제주의소리

신소연 <모슬포 학살터>

웅덩이

받아들인다.
한 방울 흘려보내지 못하고
녹색 밭이 붉게 물들도록
그 밭을 일구던 
그 땅에 뛰어놀고 자란 
생명들의 피를 받아낸다.  
오직 생명을 주고 
오직 생명을 품어주었다
그곳에 우리는 있다. 

옷고름

알고 있습니다. 
70년 전 죽음의 이유가
당신의 옷깃 끝에 매달려 
70년이 지나 나를 비춥니다. 
나는 당신이고, 당신은 나입니다.

정현영 <모슬포 학살터>
웅덩이 겉을 이루는 반입체 설치는 감물과 먹물로 학살의 현장을 담았고 지금도 같은 모습으로 증언하는 터에 오랜 세월을 표현하고 그 위에 얹힌 붉은색과 녹빛 채색은 당시 흩뿌려졌던 생명과 새롭게 덮어가는 현재의 변화를 상징한다.
웅덩이 속으로 떨어지는 인간군상의 선형태의 콜라주 설치는 두 개의 웅덩이에서 발견된 시신 211구를 형상화 한 것이다. 현재의 일상을 살아가는 제주 일반 시민들을 드로잉한 후 단순화하여 제작했는데, 당시에도 지금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 닥칠 수 있는 비극에의 환기이다. 올리어진 색이 무채색에 가까이 투명해 지면서도 반짝이게 칠해진 것은 희미해져가는 과거의 사건이지만 빛을 받을 때 분명히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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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단우, 신소연의 작품. 제공=문화공간 양. ⓒ제주의소리

신소연 <일상, 단절과 지속>

그물드로잉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기억을 덕지덕지 묻힌 채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죽은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기억하는 우리가
살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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