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교육청, 고교 행정실 공무원 횡령 혐의 경찰 고발...결재 시스템 '무력'

제주지역 한 고등학교 행정직 공무원이 수억원대의 물품 대금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나 지역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말단 공무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피해 규모가 상당해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지난 19일 제주도내 모 고등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는 8급 공무원 A(39)씨를 공금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학교의 세출업무를 담당하면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조달청 등을 통해 지급해야 할 물품 대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도교육청이 자체 조사한 결과 A씨가 횡령한 금액은 4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선 학교에서 개인의 일탈 치고는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다.

교육청 안팎에는 A씨가 도박이나 가상화폐에 손을 댔다는 등의 소문이 있지만, 아직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도교육청은 A씨가 피해 금액 대부분을 변제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학교는 A씨가 업무에 복귀할 수 없다고 판단,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A씨를 휴가 처리했다. 경찰 조사에서 횡령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가장 무거운 징계인 '파면'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허술한 재정시스템의 단면이 드러난 것이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2~3중으로 구축했다고 자부한 학교 내부 재정시스템이 사실상 무너졌기 때문이다.

일선 학교의 물품 대금 지급 방법은 전자자금이체(EFT), e-전자금융시스템(e-교육금고), 그리고 고전적인 방법인 은행 무통장 입금 등 총 세 가지로 분류된다. 도교육청은 가급적 거래 내역이 명확하게 남는 전자자금이체와 e-교육금고 시스템을 사용토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A씨의 경우 조달 물품이 납품된 후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결재를 받고서 무통장 입금 방식으로 대금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구멍난 사업비를 또 다른 사업비로 돌려막은 사례도 적발됐다. 

도교육청과 제주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A씨는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 의 물품 대금을 50여 차례에 걸쳐 횡령했다.

이 과정에서 직속 결재라인인 행정실장과 교장 등은 수십 차례 관련 결재서류를 받아봤지만, 횡령 사실은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조사됐다. 회계규정상 한 달에 한 번씩 회계장부와 통장 잔고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게끔 돼있지만, 이 과정에서도 비위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정작 사건의 실체는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일선 학교 회계정리 기간 직전에 드러났다. 결국, 2중·3중으로 쳐놓은 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경찰 조사와는 별개로 도교육청은 A씨의 상급자에 대한 감사를 이어가고,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회계시스템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도록 만든 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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